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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현향토사

4. 바둑   흔히 바둑을 신선놀음이라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손발을 걷어붙이고 뙤약볕에 나가 노동을 하는데 시원한 나무 그늘 밑에 앉거나 우상각, 정자에서 모시옷에 마포바지를 입고 부채를 들고 조용조용 히고 검은돌을 두는 것이 신선들의 유희생활과 같았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는지 모르겠다.   당 현종때 조문 사절단으로 좌참대선부 형도(邢璹)를 따라온 양계응(楊季膺)은 신라 사람들과 바둑을 두었는데 이기는 사람이 없었으며 신라의 박구(朴球)는 당나라에 들어가 황제의 바둑비서인 기대도(棋待謟)가 되었는데 너무너무 바둑을 잘두어 그가 돌아올 때 장교(張喬)가 시를 지어 안타까워 하였다.      해동수적수(海東誰敵手)   귀거도응고(歸去道應孤)   궐하전신세(闕下傳新勢)   선중복구도(船中覆舊圖)      바다 건너 저 나라에 그대 젓 뉘 있으리   본국이라 기쁘지만 바두구는 외로우리   임금님 모신 자리에 새로운 형세 전할 것이   뱃전에서 판을 대하여도 옛기보를 엎어 놓으리

  조선시대에 안평대군(安平大君)과 흥선대원군도 바둑을 좋아하여 전국의 명수들을 모아 바둑을 두었기 때문에 각지의 명수들이 운현궁으로 몰려들었다.   옛날 하(夏)나라 걸왕이 석주에게 명령하여 만들었다고 하는 이 바둑을 주역의 원리를 응용한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요(堯)임금과 순(舜)임금도 아들들의 지혜를 시험하기 위해 이 바둑을 응용하였다고 하니 바둑이야말로 인생의 흥망성쇠를 알리는 철학이요 문학이기 때문이다.   바둑을 두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생각과 도량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바둑을 인격 수양의 한 방편으로 응용하였고 거기에서 성공한 사람은 기성(棋聖)이라 그 인격을 높여주고 있는 것이다.   실로 바둑에는 철학이 있다. 289의 길로 나 있는 바둑판(17×17=289)이나 361로 끝나는 바둑판(19×19=361)을 막론하고 어떻게 그 길을 막힘없이 한 부하도 죽이지 않고 통과할 것인가. 이것은 마치 전쟁에 나아가는 장군처럼 온갖 지혜와 용맹을 길러야 하기 때문에 인생 철학의 한 단면이 되는 것이다.   둘째 바둑은 뼈저린 승패를 체험하는 예술작품이다. 죽지 않으면 죽음보다도 더 큰 고통을 겪으며 자기 집을 지켜야 하는 의인의 외로움 속에서 이기면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끼고 지면 표현 할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일회 1수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는 도전속에 제2 제3의 승리를 기약하고 있기 때문에 칠전팔도(七顚八倒)의 구도인들이 낙심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정진하는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놀고먹는 가운데 유희하는 놀음으로만 생각할게 아니라 인생의 지혜를 개발하고 용맹의 도구로서 인식하여 새로운 인생의 바른길을 개척하도록 노력한다면 신선 놀음속에 지혜 또한 넘쳐 흐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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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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