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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현향토사

3. 성인례의 진사술 가. 머릿말   대개 인간(人間)의 일생(一生)은 태여나서 죽을 때까지를 이르는데 이 일생동안에 반드시 겪어야하는 의식(儀式)을 일생의례(一生儀禮)라고 하고 이와 비슷한 학술용어(學術用語)로 통과의례(通過儀禮)라고도 한다.   출생(出生), 성년(成年), 결혼(結婚), 회갑(回甲), 사망(死亡) 등 그때 그때 중요(重要)한 시기(時期)에 행(行)하는 의례로서 일종(一種)의 종교의례(宗敎儀禮)이다.   통과의례(通過儀禮)는 그 의례에 임(臨)하는 사람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가정(家庭)과 사회(社會), 국가(國家) 등과도 깊은 연관(聯關)을 맺고 있는바 그것은 한 인간(人間)의 사회적(社會的) 신분(身分) 상승(上昇)인 동시에 ‘보다 휼륭한 사회인(社會人)으로의 길’인 것이다. 이 통과의례의 설명에 대하여 민속(民俗)에 관한 서적(書籍)이나 발표논문(發表論文), 민속조사보고서(民俗調査報告書), 향토자료(鄕土資料), 그 외 지방 고유(固有)의 풍속(風俗)을 실은 시군(市郡) 및 도지(道誌) 등 여러가지 자료(資料)를 탐색(探索)하였으나 성년식(成年式)에 해당하는 관례(冠禮)에 대하여 왕실(王室)이나 양반계층(兩班階層)에서 행(行)하여지던 의식(儀式) 내용(內容)을 설명하고 있거나 문공가례(文公家禮), 사례편람(四禮便覽)을 대충 옮겨 적은 것에 불과(不過)하여 옛날 어릴 때 보았던 기억(記憶)을 되살려 서민들 특히, 농사를 거들던 소년들의 성인식(成人式)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진사술에 대하여 정리(整理)를 해보면서 사라져 가는 민속(民俗)을 한번쯤 뒤돌아 보고 포근하였던 고향(故鄕)의 정취(情趣)를 느껴보고 싶다.

나. 용어(用語)의 정의      ‘진사술’이라는 용어에 대하여 다소 생소(生疎)한 느낌을 받을 것이나 필자가 태어나고 소년시절을 보냈던 용현지역에서는 통용(通用)하던 용어이나 일부지역에서는 ‘택거리’라고도 한다.   경상대학교 박성석교수의 ‘우리의 민속문화’( 1999. 8. 5. 경상대학교출판부) 72, 73쪽의 성인의례(成人儀禮)의 내용을 인용(引用)하면,      “성인의례는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성인이 된 구실을 능히 할 수 있는 것을 격려하고 사회인으로서의 책무를 일깨워 주며 성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일깨워주는 의식이다. 어린아이 시절 남녀의 성이 불분명한 시기를 벗어나 완전한 남녀로 구분되고 사회적으로는 가족의 일원에서 사회의 구성원으로 재생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민속으로서의 성인의식은 전라도의 모정(茅亭)이나 경상도의 농청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모정이나 농청은 다같이 여름철 마을의 젊은 일꾼들이 모이는 두레 집단의 집합 장소를 말하는데 이 곳에서 마을 공동 작업을 계획하고 노동후의 휴식을 취하기도 하였다.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두레 집단에 참여하고 모정에 출입할 자격을 부여받기 위해서는 그 부모가(머슴의 경우 주인이) 두레 집단에 간단한 안주와 술을 대접하면서 이른바 신고식을 치르면 이 아이는 성인으로 인정되어 어른들 축에 어울리게 되고 어른 몫의 품앗이꾼으로 인정을 받았다. 지역에 따라서는 마을입구나 모정 근처의 ‘들돌’을 들어보게 해서 아이가 그것을 들어올리면 마을 젊은이들이 그들 집단에 합류시켜 주기도 했는데 이 때도 그 부모는 마을 젊은이들에게 음식을 대접하였다. (이하생략)”      그리고 사천시 송포동 모충사 주지 이백산 편저 ‘남양의 역사와 문화이야기’(1996. 5. 1. 남양향토사연구회) 262쪽에      “택거리;(명)남자 16세가 되면 동리의 어른들과 품앗이를 할 수 있도록 어른들게 내는 술과 음식. 일명 진사술 (양반가의 관례와 같은 것)”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앞의 박성석 교수의 글에서는 진사술(혹은 택거리)이라는 명칭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 내용이 진사술을 내는 내용과 같고 이백산스님은 위 책 사투리 모음에서 택거리의 용어 풀이를 하였다. 그러나 다른 자료(資料)에서는 더 이상의 설명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진사술이라고 명칭을 붙힌 이유는 고려, 조선시대의 진사과(進士科;製述科)에 합격한 사람에게 주던 칭호인 진사(進士)가 벼슬이 없던 사람이 벼슬을 할 수 있는 초급(初級) 관문(關門)이므로 품앗이에 참여(參與)할 수 없고 노임(勞賃)도 반결(半結;結錢을 반으로 치는 것)로 치던 사람을 온결로 쳐 주는 것은 정식(正式)으로 농사꾼이 되었다고 인정(認定)하는 것 즉, 한 단계 진급(進級)하였다고 인정한 점과 조선후기에 진사라는 명칭이 선비 존칭(尊稱)으로 보편성(普遍性)을 띠자 생원(生員)도 진사(進士) 칭호를 사용한데 대한 서민(庶民)들의 야유적(揶楡的)인 감정(感情)이 내포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다. 진사술의 내용(內容)  1) 내력(來歷)   진사술을 낼 대상자들이 대부분 농사를 거들던 때에는 해마다 성행(盛行)하였으나 중.고등학교 진학이 많아짐에 따라 농사일을 거드는 청년의 수(數)가 줄어들기 시작하므로서 1966년까지 진사술을 내는 풍속(風俗)이 있었으나 그 이후에는 맥이 끊어졌다.     2) 대상자의 년령(年齡)   일정(一定)한 년령(年齡)으로 정하여 진 것은 아니지만 대개 17세가 되는 해에 진사술을 내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계시지 않거나 계시더라도 몸이 불편(不便)하여 그 세대(世帶)에 노동력(勞動力)이 없으면 17세가 되기 전(前)이라도 품앗이를 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진사술을 내는 것을 허용(許容)하였다.     3) 시기(時期)   대개 모내기가 끝나고 본격적(本格的)으로 논매기가 시작되기 직전 무렵에 맑은 날을 택한다.     4) 음식준비   그 해에 진사술을 낼 한또래의 청년들 집집에서 서로 의논(議論)하여 술과 안주를 준비하는데 한해에 네댓명이 진사술을 내므로 집집마다 농주(農酒) 한두동이와 안주로는 각종 나물, 고추지짐이, 잔생선튀김, 마른칼치찜 등이며 그 외 음식으로 국수, 호박잎을 밑에 받혀 찐 가루떡 등으로 많은 손을 들이지 않고 쉽게 장만할 수 있는 먹거리를 준비하였으며 접시 등의 그릇이 모자라면 잎이 넙적한 감잎, 호박잎, 가지잎 등을 대신(代身) 사용(使用)하기도 하였다.     5) 장소(場所)   지금은 경지정리(耕地整理)를 하였으므로 옛날의 지형(地形)을 찾을 수 없으나 동네 앞으로 용너미에서 발원(發源)하여 강지바다로 흐르는 송지천 냇고랑 가에는 옛날부터 삼(대마)을 삶는 삼솥이 걸려 있었는데 이 삼솥 옆으로 방천(防川)을 따라 버드나무가 쭉 늘어서 있어 여름에는 그늘이 많았다. 냇고랑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버드나무 그늘 아래의 자갈밭에서 어른들은 물론이거니와 어린 아이들까지 남녀노소(男女老少) 구분(區分)없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서 이 행사(行事)에 참여하였다.     6) 진행(進行)   마을 사람들이 거의 다 모였으면 마을의 제일 연장자(年長者)나, 연장자가 유고(有故)가 있을시는 마을 일을 책임(責任)지고 있는 리장(里長)이 금년에는 누구누구가 진사술을 내었고 내년에는 누구누구가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금년에 진사술을 내는 당사자들에게 덕담(德談)을 해준다.   그리고 난 다음 그 해 진사술을 내는 청년들이 동네 어른들에게 술을 진지하여 한 순배 돌리고 나면 술과 음식을 먹으면서 농사일이나 동네의 대소사를 의논(議論)하기도 하고 (특히 노임(勞賃)이나 논매기의 품앗이 일정(日程) 정하기) 커가는 청년들의 앞날이 창창(蒼蒼)하기를 기원하면서 축제(祝祭) 분위기로 하루를 즐긴다.     7) 대우(待遇)   진사술을 내기 전에는 모든 농사 일이나 품앗이, 마을에서 공동으로 하는일, 각종 부역(賦役)등을 반결로 쳤으나 진사술을 낸 후로는 마을의 모든 일에 한사람의 떳떳한 장정(壯丁)으로서의 능력(能力)을 인정하여 온결로 쳐주는 것은 물론, 마을 대소사(大小事)의 참여(參與)와 아울러 의사 결정(決定)에도 의견(意見)을 개진(開陳)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그리고 농사뿐만 아니라 평상시(平常時)에도 하나의 완성(完成)한 인격체(人格體)로 인정(認定)하여 어른들도 어린아이 취급하듯이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라. 맺는말   관례(冠禮)는 사례(四禮)의 하나로서 남자가 출생하여 성인(成人)이 되면 올리는 의례인데 중류 이상의 지식 계급에서 행하던 관례(冠禮)는 15~20세가 되는 해의 길일(吉日)을 택하여 일가 친척과 빈객(賓客)을 초청(招請)하여 일정(一定)한 절차(節次)의 의식을 올리므로서 참여자가 국한(局限)되어 있었지만 서민(庶民)이 행하던 진사술 접대는 온 마을의 대동단합(大同團合)을 꾀함은 물론 삼강오륜(三綱五倫)을 학문상으로 배우지 못했지만 인간의 도리(道理)를 다해야 함을 일깨우는 한편, 마을 전체 구성원(構成員)이 한 집안처럼 끈끈한 정(情)으로 연결되어 자라나는 젊은이들의 잘잘못에 대하여는 네자식 내자식을 가리지 않고 칭찬하기도 하고 꾸짖기도 하는 미풍(美風)을 남기어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원천(源泉)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완전한 인격체(人格體)로 인정하는 의례인 진사술에 대하여 민초(民草)들의 숨결이 스며있고 원초적(原初的)인 삶의 표현인 이런 토속적(土俗的)인 의례(儀禮)를 연구 개발하고 보존(保存)할 수 있는 방안(方案)을 모색(摸索)하고 또한 널리 보급(普及)될 수 있었으면하는 바램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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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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