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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현향토사

1. 출산의례   새 생명이 탄생한다는 것은 신성한 일이다. 따라서 출산에 대한 민간풍속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의식이 강하게 나타난다. 출산은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말하지만 우리 민족은 태아도 하나의 생명을 인정해 산전(産前), 산후(産後)를 망라해서 출산의례(出産儀禮)로 보아 왔다. 서양의 경우 아이가 태어나 1년이 지나야 비로소 한 살로 쳤지만 우리 민족은 태아도 인격체로 보고 태아에게 나이를 주어 태어나자마자 한 살이 되는 것만 봐도 출산의례의 중요성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출산에 대한 민속은 기자속(祈子俗), 산전속(産前俗), 산후속(産後俗)으로 나누는게 일반적인 일이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첫돌까지를 포함시켜 설명하고자 한다.      1) 기자속(祈子俗)      지금도 남아선호(男兒選好)사상이 강하게 남아 있지만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팽배했던 유교사회에서는 대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하면 죄를 짓는 일이 되었다. 아기를 갖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代)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해도 며느리를 쫓아내거나 첩(妾)을 들이는 구실이 됐다. 그 모든 것은 여자의 책임이었는데 이 자체가 남존여비 사상의 대표적인 것이라 하겠다. 이 때문에 우리의 여인네들은 자식을 갖기 위해 처절할 정도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생산을 못하는 경우는 남편과 아내중 누군가에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만큼 씨받이와 같은 특별한 방법이 활용됐지만, 아들을 낳지 못하는 부인은 칠거지악(七去之惡)이란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뜻을 이루고자 했다. 후손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자가 잉태를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신령한 힘을 가진 대상에 치성(致誠)을 드리는 행위를 기자속(祈子俗)이라 한다.   아이를 얻기 위해 치성을 드리는 일도 단순한 것이 아니어서 치성을 드리는 사람, 시간, 장소, 기간, 그리고 치성의 대상과 방법, 잉태를 한 이후 딸을 아들로 바꾸는 전녀위남(轉女爲男)의 풍속 등 다양한 민속이 전래돼 왔다. 치성을 드리는 사람은 아기를 갖고자 하는 당사자가 제일 많고 할머니나 외할머니, 부부가 함께일 수도 있고 무당이나 마을에서 산파 역할을 하는 나이 많은 노파를 내세우기도 한다. 또 시간은 대개가 자정부터 새벽까지의 밤중을 이용하는데 때로는 낮을 치성시간으로 정하는 경우도 있다. 장소는 바위, 계곡, 절, 암자, 신당(神堂), 강, 마당, 방, 마루, 장독간 등 신성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을 정도로 다양하다.   치성의 대상도 치성의 장소만큼이나 많은데 궁극적인 대상은 아이의 출생과 성장, 길흉화복(吉凶禍福), 수명을 좌우한다고 믿는 출산의 신, 즉 삼신(産神이라고도 함)이다. 치성을 드리는 방법은 제물을 차려 놓고 손을 비비거나 절을 하며 소원을 아뢰게 된다. 제물은 쌀과 같은 곡식, 밤.대추 등의 과일, 미역.명태 따위의 수산물, 정화수 등이 널리 이용되는데 이들은 모두 질이 좋은 것으로 정성들여 바쳐야 한다. 때로는 이 제물을 살 때 사람의 기(氣)가 옮길까 봐 수건으로 입을 가리거나 물건값을 깎아서는 안된다는 습속(習俗)이 전해져 오기도 한다.   치성을 드리는 일은 신령스런 힘을 빌리기 위한 것이지만 잉태를 위한 여러가지 주술(呪術)도 동원됐다. 이는 아이를 갖고자 하는 본인에 해당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이를 낳은 산모의 속옷을 훔쳐와 입는데 속옷은 아이를 낳을 때 피가 묻는 것이 더 효과가 있다는 풍설이나 뽕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호박을 따다가 삶아 먹으면 아이를 가진다는 속설도 아이를 갖기 위한 속신의 하나이다. 수탉의 생식기를 먹고 숫병아리가 될 달걀을 골라 달수대로 삶아 먹는 습속이나 소의 낭심을 구워 먹는 일, 아기 낳은 여인의 월경포로 베잠방이를 해 입고 맏상제의 상복 일부를 몰래 떼어와 몸에 지니거나, 상여에 두른 붉은베로 옷을 해 입으면 귀한 자식을 얻는다는 풍속도 있으며, 주인 몰래 남의 산소 벌초를 해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정월 대보름날 부잣집 마루 밑에 부부가 숨어 들어가 교합(交合)을 하면 보름달의 주력(呪力)과 부잣집의 주력이 스며들어 귀한 아들은 밴다는 부부교합의 습속이 전래되고 있다.   부부교합의 주술(呪術)은 이 말고도 또 있다. 입춘(立春)과 우수(雨水), 즉 생기가 되살아나는 절기(節氣)날 부부가 술을 한잔씩 마시고 교합을 하면 효험이 있는데 이 때 여자의 머리를 동쪽으로 두는게 좋다. 이는 태양, 즉 양력(揚力)의 힘을 빌리는 뜻이다. 교합이 끝나면 여자는 왼쪽 발을 움직여서는 안되고 왼쪽으로 몸을 돌린 채 자야한다. 생남(生男)의 자궁은 왼쪽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2) 산전속(産前俗)   여자가 잉태를 하게되면 그 자체가 집안의 경사스런 일이 된다. 그러나 본인에게는 먹는 일, 행동하는 데도 많은 제약이 뒤따른다. 태아가 아무 탈없이 태어날 수 있도록 임산부는 마음가짐, 몸가짐에 각별히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음식물과 행동이 부정하거나 속될 때는 주력(呪力)으로 뱃속의 태아가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인데 이를 두고 사람들은 ‘부정 타는 일’이라고 한다.   산전(産前) 금기(禁忌) 음식물은 대강 다음과 같다.   · 오리고기=손가락과 발가락이 붙은 아이를 낳거나 육손이를 낳는다.   · 닭고기=아이의 피부가 닭살과 같이 된다.   · 상어고기=아이의 피부가 거칠다.   · 가오리=역시 피부가 거친 아이를 낳는다.   · 토끼고기=언청이나 눈이 붉은 아이를 낳는다.   · 문어=기형아를 낳거나 머리카락이 없는 아이를 낳는다.   · 복어,까마귀=태어난 아이의 피부가 검다.   앞의 예는 음식물의 형태가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술적인 금기식품이다. 반면 부정을 탄다는 생각에서 혐오식품을 금기시하면서 정갈하고 정성이 깃들인 음식을 먹어야 했다. 부정타는 음식 중에는 상가나 제사음식은 물론 잔치.돌.생일음식, 개고기, 죽은 짐승의 고기, 사냥해서 잡은 고기, 비명에 죽은 고기, 썩은 과실 등이 있다.   임신부는 음식을 함부로 먹지 않는 것 못지 않게 행동을 하는데도 조심해야 했다. 중요한 금기 행동의 예는 다음과 같다.   · 집수리를 하면 기형아 불구자를 낳는다. 특히 변소를 옮겨서는 안되고 가족의 산소도 이장(移葬)을 않는다.   · 임신부가 아무데서나 소변을 보면 아이가 비정상적이 된다.   · 임신부가 담을 넘으면 도둑을 낳는다.   · 잉태중에 부부싸움을 하면 아이의 성격이 거칠어진다.   · 길을 질러가면 아이의 성질이 급해진다.   · 높은 곳에 오르면 아이가 거꾸로 나온다.   · 지게 작대기로 불을 때지 않는다.   · 솥과 디딜방아를 넘지 않는다.   · 절굿대를 깔고 앉거나 문턱을 밟지 않는다.   · 장독에 배가 닿아서는 안되고 산월(産月)에 방이나 부엌을 고쳐서도 안된다.   · 나막신이나 짚신을 태우지 않는다.   · 빗자루를 깔고 앉거나 말이나 소의 고삐를 넘지 않는다.

  3) 출산속(出産俗)   임산부가 만삭이 되어 산일(産日)이 가까워지면 출산 준비를 서두르게 된다. 여자가 아이 낳는 일을 두고 ‘사잣밥을 지어 놓고 낳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생사(生死)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이 출산이였다. 요즘같이 의술이 발달한 때에는 약간의 고통만으로 순산(順産)이 가능하지만 순전히 경험과 민간신앙에 의존하던 옛날에는 난산(難産) 끝에 산모가 죽게되는 일이 허다했다. 이 때문에 ‘작게 낳아 크게 키운다’는 속설이 있어 왔고 이를 위해 배를 조여 매거나 약간은 힘겨운 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임산부가 산기(産氣)를 느끼게 되면 마당과 대문간에 깨끗한 황토를 고루 펴어서 깐다. 이는 잡귀가 붉은빛을 싫어한다는 속설에 따라 잡귀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다. 초산(初産)일 경우 친정에 가서 친정어머니로부터 아이를 받는 일이 많은데 이는 출산의 공포를 해소하는데는 시어머니보다는 친정어머니기 더 큰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가 아기 받는 일에 미숙하면 마을에서 경험이 많은 할머니나 산파(産婆)가 받았다. 산실(産室)에는 짚이나 돗자리를 깔아 준비하고 임신부는 날달걀에 참기름을 타서 마시거나 마른 감꼭지를 삶아 마시는 경우도 있었다. 날달걀과 참기름이 미끄럽기 때문에 아이가 쉽게 태어날 것이라는 믿음과 감이 빠진 감꼭지는 아이가 힘들지 않게 빠져 나올 것이라는 주술에 기인된 것이다. 드리고 집안의 문은 모두 열어 놓고 빨래줄을 풀어 두며 쥐구멍도 막지 않는데다 아궁이에 키질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솥뚜껑으로 굴뚝에 바람을 부쳐 넣는다. 모두가 통하게 함으로써 아이도 쉽게 낳을 것이라 여겼고 빨래줄과 같은 매듭을 푸는 것도 아이가 출산을 하는데 꼬이지 말라는 뜻이다. 출산의 고통은 여자들만이 겪는 불공평한 일이다. 분만(分娩)의 순간을 ‘천정과 방바닥이 맞닿는 순간’이라고 표현하고 있듯이 초산의 임신부는 실신을 하기도 한다. 다행히 순산을 하게 되면 고통이 희열로 이어지지만 잘못되어 난산 끝에 목숨을 잃는 일도 많았다.   순산을 비는 풍속으로 산모가 진통이 시작되면 흰밥과 미역국을 미리 지어 방 네 귀퉁이에 쟁반을 받쳐 삼신할미께 바치는 풍속도 있다. 삼신할미는 산신(産神)으로 출산을 다스리는 신이다. 산실에서는 빗자루를 사용하지 않고 걸레를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빗자루는 쓸어 버리는 속성 때문에 출생하는 아이의 복이 나가거나 수명이 짧아진다고 믿었다.   산고(産苦) 끝에 아이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삼가르는 일. 삼이란 태(胎)의 우리말로 탯줄 자르는 일을 말한다. 옛날에는 태(胎)를 무척 소중하게 생각했다. 사람 신체의 일부분으로 여겨 신성시 했고 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태어난 아이의 생명은 물론 길흉화복(吉凶禍福)에 큰 관계가 있다고 여겼다. 세종(世宗)과 단종(端宗)의 태실지(胎室地)를 찾기 위해 전국의 유명한 풍수가 동원되어 곤명면에 자리를 잡은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물론 왕(王)이라는 특수 신분 때문이기도 하지만 태(胎)의 처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일이다.   삼가르는 방법은 탯줄을 아기의 무릅까지 맞추어 잡고 배쪽으로 세 번 훑어 실로 묶고, 탯줄쪽으로 세 번 훑어 역시 실로 묶어 그 가운데를 자르는데 이로 잘라야 수명이 길다고 한다. 자르고 난 후에 침을 뱉어서는 안되는데 그 역시 수명이 짧아진다는 속신(俗信) 때문이다. 또한 대칼이나 낫, 억새풀을 쓰기도 하지만 남아가 아닌 여아일 때는 가위로 자르기도 한다. 태의 처리는 왕겨에 묻어 두었다가 사흘만에 불에 태워 강에 버리거나 짚단에 싸 두었다가 첫이레가 지난 후에 태워서 묻거나 강에 뿌린다. 태를 태우는 장소에 따라 다음 아이가 빨리 잉태하고 늦게 잉태하는데 결정적인 관계가 있다고 믿어 왔는데 빨리 잉태하고 싶을 때는 가까운 뜰 아래서, 터울을 길게 하고 싶을 때는 집밖에서 태우면 된다는게 속신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먼저 삼신상을 차린다. 쌀, 미역, 타래실, 돈, 찬물을 차린 상을 북쪽이나 서쪽으로 놓는다. 지역에 따라서는 쌀 대신 밥을, 미역 대신 미역국을 올린다. 찬물을 큰 그릇에 가득 담아 올리는 것을 두고 최근의 학자들은 매우 과학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산모가 있는 방은 군불을 때 덥기 때문에 건조하게 마련인데 이 찬물이 지금의 가습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삼신상은 칠칠일(49일)동안 차리기도 하고 삼칠일(21일), 한칠일(7일)만 차리는 집도 있다. 또 바깥에는 금기줄(건구줄이라고도 한다)을 친다. 이 금기줄은 해산일을 앞두고 아기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왼새끼를 꼰 것으로 이는 상당이 의미있는 상징물로 꼽힌다. 아무나 들어오면 부정탄다는 표시의 금기줄은 갓 태어난 아이는 면역이 약하기 때문에 아무나 들어와 질병을 옮길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지혜의 소산물이다. 금기줄에는 남아와 여아의 구분이 있는데 남아는 고추, 숯, 미역, 청솔가지를 꽂고, 여아는 숯, 미역, 청솔가지, 창호지, 목화 등을 꽂았다.

  4) 산후속(産後俗)   산후속(産後俗)이라 함은 신생아가 태어난 후 3일째 부터를 말한다. 예전에는 출생후 사흘이 지나야 목욕을 시켰고 다음에 배내옷, 뱃속저고리 따위로 부르는 옷을 입혔다. 길고 품이 넓어서 양쪽 섶이 포개지는 이 옷은 깃과 단추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타래실이나 일곱 오라기의 실로 묶는데 이것은 명이 길어지라는 뜻이다. 부드러운 천으로 반드시 손바느질로 만들며 이 타래실은 고이 간직해 두었다가 아이가 성장해 과거보러 갈 때 몸에 지니거나 송사(訟事) 때 지니면 과거급제와 승소한다는 속설이 전해져 온다.   산모는 하얀 쌀밥과 미역국을 산후 첫음식으로 먹는다. 산모에게 먹일 미역은 부러지게 꺾지 않는다. 둥글게 휘거나 그냥 그대로 들고 오는데 옛날의 미역은 석자가 넘어 운반하기가 여간 성가시지 않았지만 꺾으면 태어난 아기에게 불길하다는 속설이 있었다. 산모가 아이를 출산한 후 처음으로 먹는 음식을 ‘첫국 첫밥’이라고 하는데 다른 반찬은 일절 없고 쌀밥과 미역국 뿐이다. 물론 산모가 이를 먹기 전에 삼신할미에게도 쌀밥과 국을 먼저 차려 드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제사 때가 아니면 구경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산모에게 쌀밥을 주는 것은 영양적인 측면도 생각했겠지만 청정(淸淨)의 의미도 무시할 수 없다. 삼신할미에게 아이의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뜻으로 밥과 국을 드리는 일은 한이레(7일), 두이레(14일), 세이레(21일) 되는 날마다 되풀이 하는데 세이레가 지나면 이웃 사람들의 출입을 허용한다. 따라서 세이레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날이다. 세이레가 지나면 더 이상 외부의 영향으로 아이가 잘못되는 일은 없다고 믿었다. 이는 매우 과학적인 근거와 신앙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적어도 세이레가 지나면 면역이 생겨 웬만한 외부영향을 받지 않을 뿐더러 단군신앙의 의미도 담겨져 있다. 환웅(桓雄)이 곰과 호랑이에게 백일기(白日忌)를 명한 후 곰이 세이레인 21일 만에 사람으로 변했다고 했는데 여기에 근거하여 아이가 태어나 세이레가 되면, 곰이 세이레만에 능히 사람이 됐듯이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는 뜻에서 세이레를 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또 하나는 백일동안 마늘과 쑥만 먹고 햇빛을 보지 말라고 했던 단군신화에서는 100이라는 숫자가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이는 아이의 백일잔치로 연결되고 있다.

  5) 백일속(百日俗)      옛날에는 영아(嬰兒) 사망이 많았기 때문에 아이가 태어나 백일(百日)이 되는 날을 뜻깊게 생각했다. 따라서 세이레까지의 정성은 산모와 신생아를 보호하는 의미를 가진다면 백일은 비로소 아이를 위한 축하행사로 볼 수가 있다. 또 백일이라는 의미는 상당히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 예컨데 사계절의 기후변화가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의학지식이 부족했던 시절에서는 아이가 병에 걸리거나 죽는 일이 환절기에 가장 많았다. 따라서 3개월이 지나면 다른 계절로 바뀌기 때문에 계절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무 탈없이 자란 아이를 축복해 주는 의미에서 백일잔치의 뜻을 찾을 수도 있다. 백일이 되면 아이의 발육도 눈에 띄게 달라진다. 목을 가누고 소리내 웃으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눈길을 보내는 등의 재롱을 부릴줄도 알게 된다. 백일전까지는 흰옷만 입혔으나 이 때부터는 빛깔있는 옷도 입히고 업어 주기도 하다. 또 이날이 되면 배냇머리를 깎아 주는데 처음 머리는 고모(姑母)가 몰래 깎아주면 좋다고 한다.   백일날에는 쌀밥과 마역국을 삼신할미에게 드리고 치성(致誠)을 드린 다음 이것을 산모가 먹는다. 백일잔치 음식은 주로 떡인데 백설기와 수수팥떡, 인절미 등으로 백설기는 장수와 정결, 신성함을 뜻하고, 수수팥떡은 부정을 막고 부정살을 제거한다는 주술적인 의미가 강하며, 인절미는 단단하라는 뜻이다.   백일 풍속으로 흰떡 백개를 만들어 길에 나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기도 한다. 이는 명(命)을 산다(買)는 뜻으로 명이 길어지라고 하는 것이다. 또 이웃에서 가져온 실을 목에 걸어 주기도 하는데 이는 늘어진 실 만큼 오래 살라는 기원이고 이날 외할머니가 포대기를 가져와서 선물하는 것이 통상적인 예이다.

  6) 첫 생일속(生日俗)      아이가 태어나 첫 생일을 맞는 것도 하나의 경사였다. 이는 보통의 생일을 기념하는 의미보다 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생일이라 하지 않고 돌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다. 의료기술이 부족하고 절기(節氣)마다 현저한 기온변화에 따라 영아(嬰兒) 사망률이 높았던 시절에 돌을 맞는다는 것은 성장의 초기에 흔하게 나타나는 위험한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는 사실을 축하하는 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백일잔치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성대하게 베풀어지고 가난 때문에 백일잔치는 하지 못해도 돌잔치는 반드시 치르는 게 전래 풍속이다.   또 돌을 맞게 되면 아이의 발육도 현저하게 달라져 자기 의사에 따라 행동하게 되고 걸음마도 가능해지는 등 ‘사람 구실’을 하게 되는데 대한 가족들의 경축 의미도 곁들여 있다. ‘돌잡이가 돌떡을 돌린다’는 옛말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돌이 되면 아이에게 화려한 옷을 입히는데 이것을 돌복이라 한다. 돌복은 남아(男兒)의 경우 보라색 또는 회색바지, 색동저고리, 색동두루마기, 금박이나 은박을 찍은 남색 조끼, 색동 마고자, 복건(輻巾), 염낭을 갖추고 여아(女兒)는 색동저고리, 빨간색치마, 금박이나 은박을 찍은 조바위, 타래 버선과 염낭을 갖추는데 가정 형편에 따라 화려함이 달라 궁색한 가정에서는 단순히 깨끗한 옷을 입히기도 한다. 돌잡이에게 빼놓지 않고 해주는 것이 돌띠와 돌주머니, 돌띠는 수명장수(壽命長壽)를 기원하는 뜻에서 길게 만들어 한 바퀴 돌려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으며, 돌주머니(염낭)는 복록(福祿)을 기원하는 뜻으로 비단 헝겊에 주머니 입구를 주름잡아 색실로 끈을 달고 앞면에는 모란, 국화 따위의 수를 놓고 뒷면에는 수(壽), 복(福) 따위를 새긴다. 돌주머니 끈에는 아주 작게 만든 타래 버선, 은도끼, 은나비, 은북, 은으로 만든 물고기, 은장도, 은자물통 등의 장식물을 달아 주는데 이는 수명장수와 복록, 사귀(邪鬼)의 접근을 막는 주술적인 의미가 깃들여 있다. 돌을 축하하러 온 사람들은 돌주머니에 돈이나 반지등을 넣어 준다.   돌상은 떡과 과일이 주(主)가 되는데 떡은 백설기와 붉은 팥고물을 묻힌 수수경단, 찰떡, 송편, 무지개떡, 개피떡 등 다양하다. 돌잔치의 가장 중요한 대목은 돌잡히기이다. 돌상 앞에서 돌장이가 갖고 싶은 물건을 잡는 것을 보고 그 아이의 장래를 점치는 행사로 시쉬(試晬), 시주(試周), 시아(試兒)라고도 하며 돌잔치의 가장 흥미있는 순서이다.   아이가 잡는 물건에 따라 장래를 점치는데 속신(俗信)은 다음과 같다.   · 활-화살: 무인(武人)이 된다.   · 국수-실: 수명이 길다.   · 대추: 자손이 번창한다.   · 책-붓과 같은 문방구: 문인(文人)이 된다.   · 쌀-돈: 부자가 된다.   · 떡: 미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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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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