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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현향토사

2. 선무공신합천이공묘비명병서(宣武功臣陜川李公墓碑銘幷書)   공(公)의 휘(諱)는 안국(安國)이요, 자(字)는 윤집(允執)이요, 성은 이씨(李氏)이니 세계(世系)가 경주(慶州)에서 나왔고 별호는 수암(洙巖)이니 신라 좌리공신 알평(謁平) 후손이다.   중조(中祖) 휘 개(開)는 강양군을 봉했으니 강양은 지금의 합천이니 고려조에 문충공(文忠公)의 시호를 주었다. 아들 인영(仁榮)은 삼중대광 문하평장사이다. 여러대를 전하여 중비(仲庇)는 전서로 강양군을 추봉하고 익(益)은 금자광록대부상서우복야습봉강양군이요 사대손 계령(桂齡)은 광록대부보문각대제학이요 아들 천수(天秀)는 추봉은청광록대부문하시중이요 아들 요(瑤)는 벼슬이 삼중대광중봉강양군이니 공민왕조(恭愍王朝)에 안능참봉과 봉익판서를 제수하고 여러번 고을을 맡았으니 공양왕조(恭讓王朝)에 안동부사로 사직하고 모친상을 당하여 삼년동안 시묘를 살았으니 이조에 와서 정부의 명령으로 합천 영창리에 정문을 세웠다.

  아들 중경(仲卿)은 자헌대부 행 이조참판이요, 우리 태종대왕이 동갑계를 만들고 시를 지어서 말씀하시되 한나라가 스물여덟 큰 공신을 봉건하니 왕업을 초창한 당년에 이 사람의 힘을 입었도다. 지금 우리 동갑계가 스물 한 사람이니 삼각산이 무너져도 정의를 잊지 말자 하셨다. 아들 효재(孝哉)는 현감이요, 증조는 안양(安陽)이요, 조부는 옥규(玉規)이니 벼슬이 통정대부요, 부친은 태공(泰公)이니 벼슬이 없고 모친은 밀양박씨 사인 일석(逸碩)의 따님이니 융경 임신년 모월모일에 공을 낳으시니 어려서부터 성품이 정직하여 여러 어린이와 같이 골목에서 장난함에 비록 초개같은 적은 물건이라도 집에 돌아올 때는 반드시 각인에게 나누어 주니, 보는 사람들이 이상히 여기더니 장대함에 효도와 우애를 집에서 행하고 학문이 세상에 이름났다. 얼굴이 풍부하고 위의를 엄중하더니 20세에 무방(武榜)에 올라 익년에 수문장에 천거되었더니 용사의 난리(龍蛇之亂)의 노량진에 달려가서 싸움에 반드시 왜적의 끊은 귀를 들어니 충무공이 상산 조자룡(趙子龍)에 비유하더니 난리가 평정된 뒤에 선무록권(宣武錄券)을 하사하시니 사적이 동성지(東城誌)에 기재되었으나 추천하는 사람이 없어서 하등관에 있다가 고향에 돌아와서 별세하니 향년이 겨우 35세이니 병오년 사월 십오일이였다. 묘는 마월동 장군암 밑 을좌(乙坐 ; 남쪽에서 조금 동쪽에 가까운 방향을 등진 좌향)이니 비위는 단인(端人) 진양정씨 수운(壽雲)의 따님이다. 이남을 생육하니 장남 인원(仁元)은 사천 이태상(李泰上)의 따님에게 장가들고 차남 신원(信元)은 진양 강사연(姜士連)의 따님에게 장가들고 평산(平山) 신이학(申以鶴)이 공의 사위이다. 인원의 아들 동영(東英)은 무과요, 동보(東葆)와 동진(東秦)도 무과이다. 동영은 남평 문중립(文仲立)의 따님을 취하였고 동보는 진양 정쾌석(鄭快錫)의 따님을 취하였고 동진은 밀양 박두호(朴斗鎬)의 따님을 취하였고 신원의 아들 동형(東衡)과 동훈(東薰)은 무후하고 동영은 밀양 박기영(朴紀永)의 따님에게 장가들었다. 증손과 현손 이하는 많아서 기록하지 않는다. 어느날에 공의 구세손 한주(漢珠)와 십일세손 환택(煥澤)이 공의 행장(行狀)을 받들고 한번와서 나에게 묘갈명을 청알하며 말하되 우리 조부의 실력을 아직까지 비각에 빠진 것은 자손들의 허물이니 원컨대 어른이 특히 한말씀을 주어서 백세에 징거하시면 그 덕이 어떠하오리까. 내가 무식하므로 사양하되 굳게 간청함을 말지아니하기로 드디어 그 행장을 근원삼아 명을하니 명에 말하되 용맹있는 이공이 세계가 강양에 나왔다. 평장공이 세잎을 일찍하고 동갑계가 향기를 흘렸도다. 기구(箕裘)를 대대로 지키니 공이 실상 그 후손인데 호반 용맹이 높으시고 뛰어나고 활쏘는 재주가 머리에 거하였다. 이름이 계적(桂籍)에 올랐으니 빛나는 경사가 문중에 모였도다. 예년의 현익(玄黓)년에 왜적이 난리를 일으켰다. 충무공의 수군이 노량진에 진을 쳤다. 공이 이때 분개하여 달려가서 응양군을 보조했다. 싸우면 문득 귀를 빔(헌괵獻馘)은 공의 위에 남이 없네. 물러와서 자랑하지 아니하니 많은 명의가 입을 모았네 장성이 문득 떨어지니 상급이 공로를 갑지 못하였네 선무녹권 받았으되 하등관에 침묵했네. 사람들이 모두 공을 애석케 여기되 공은 항상 편안했네. 돌아와서 고향(桑梓)에 두었으니 세월이 빨랐도다. 아! 간성(干城)의 자질로 마침 농촌집에서 세상을 마쳤는가.   곤돈(困敦) 곡우절에 공암 허찬(許讚) 지음   단기사천이백팔십삼년 경인년 사월 일에 세움   감독에 후손 홍식, 환수, 환재, 지섭, 상문   (합천이씨 목사공파(입사천 시조 통정대부 휘 옥규)세보에 기록된 내용을 발췌함)

★ 무방(武榜) 무과 합격자의 성명을 써서 거는 방목을 말함. ★ 기구(箕裘) 대대로 전해오는 세업. ★ 계적(桂籍) 조정에서 실시한 과거에 합격한 자의 이름을 기록한 책을 말함. ★ 현익(玄黓) 임진년의 임자(壬字)의 호칭으로 임진왜란을 뜻함. ★ 헌괵(獻馘) 전쟁에서 적군을 생포하여 포로가 되어 항복하지 아니하는 자를 왼쪽 귀를 잘라서 대장에게 드리는 것을 말함. ★ 장성거운(將星遽隕) 충무공의 전사를 뜻함. ★ 상재(桑梓) 뽕나무와 가래나무로 이는 선조들이 직접 심었기 때문에 후손들이 상재를 보면 선조들을 추모한다는 뜻임. 고향을 일컬어 상재지향(桑梓之鄕)이라고 하는데 시경(詩經)에서 나온 말이다. ★ 간성(干城) 전쟁에 쓰는 화살을 막아내는 방패와 도적을 방비하는 성곽을 말하는 것으로 국가방위를 맡고 있는 장군을 뜻하는 말이며 시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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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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