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용현향토사



용현향토사

12. 기타유적지(其他遺蹟地)   1) 당병소(唐兵沼)   연호마을 청골앞에 있는 이 소(沼)는 와룡산(798.6m) 계곡에서 시원(始源)한 죽천천(竹川川)의 하류인 야산 단애(斷崖) 바로 밑에 있었으나 지금은 하천정비로 모두 농지로 변했다.   󰡐소(沼)󰡑하면 일반적으로 땅바닥이 둘러 빠지고 물이 깊게 괸 곳이어서 숱한 전설을 지니고 있다. 이<당병소>도 예외는 아니어서 세암폭포의 이무기 꼬리가 이 당병소에 보인다느니 옛날에는 명주 실꾸리 다섯개를 풀어 넣어도 닿지 않는다느니, 또 소에 살던 이무기가 어느날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 갔기 때문에 소가 메워졌다는 등의 전설이 전해진다. 그런데 이 <당병소>란 지명은 당(唐)나라 군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왜 <당병소>라 했을까하는 점이다. 임진(壬辰), 정유재란(丁酉再亂)때 사천지방(泗川地方)은 숱한 전적지(戰蹟址)가 있는데, 이 <당병소>를 비롯하여 <당병무덤>, <兵屯>, <왯골>, <왯등>, <핏다리> 따위의 지명(地名)이 그것이다.   무술년(戊戌年 ; 1598) 9월 하순부터 반격에 나선 명(明)나라 중로제독(中路提督) 동일원(董一元)은 진주남강을 건너 망진채(望晉寨), 영춘채(永春寨), 곤양성(昆陽城)과 사천성(泗川城)을 차례로 탈환하고 선진성(船津城)으로 급거 진격하였는데, 이때 선진성(船津城)에는 왜장 도진의홍(島津義弘)이 이끄는 왜군 7~8천명이 배수진(背水陳)을 치고 있었다. 10월 초하루 새벽을 기해 총공격을 개시한 명군(明軍)은 피아간(彼我間)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그런데 명군(明軍) 진중(陳中)에서 불의의 폭약궤가 폭발하여 화염(火焰)이 충천하고, 인마(人馬)가 서로 밟아 광란상태는 일파만파(一波萬波)로 번져 전열(戰列)를 수습하기가 곤란하게 되었다. 적은 이 틈을 이용하여 역습으로 나왔으니 명군(明軍)은 부득이 싸우지도 못하고 후퇴하게 되었으며 지세에 어두운 명나라 군사는 이 소(沼)에서 많이 빠져 죽은데서 붙여진 이름이 명병소(明兵沼)가 아닌 당병소(唐兵沼)인 것이다.   현재 이 유적은 그 형적(形跡)이 사라졌으나 임진란(壬辰亂) 당시 전적지(戰蹟地)임을 후세(後世)에 알리기 위해 1986년 5월 사천문화원(泗川文化院)에서 간략하게 비문을 새겨 단애 아래 표석을 세웠다.

인력으로 모내기하는 풍경은 산업의 발달로 모습을 감추고 지금은 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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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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