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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지

• 전주이씨(全州李氏) 양녕대군파(讓寧大君派), 순성군파(順城君派) (복상)   시조 휘 한(翰)은 덕망이 높고 문장이 탁월하여 신라 문성왕(文聖王 : 839~857) 때의 사공(司空) 벼슬을 지냈으며, 그 후 대대로 신라조에 벼슬해 오다가 그의 6세손 긍휴(兢休)에 이르러 고려조에 벼슬하게 되어 사공(司空)을 지냈다.   18세손 安社(추존 穆祖)는 대대로 전주에서 살아온 호족(豪族)이었는데, 당시 전주에 새로 부임해온 지주(知州)가 탐학하고 오만하여 그를 규탄하니 지주(知州)가 군사를 휘동하여 보복하려 드는 지라 이를 피해 강원도 삼척으로 이거(移居)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지주가 안렴사(按廉使)가 되어 삼척 지방으로 부임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그 보복을 꺼려 다시 함경도로 옮겼다가 원나라 간동(幹東)으로 가 그곳에서 5천호의 다루하치(達魯花赤) 벼슬을 지냈고, 안사(安社)의 아들 행리(行里 : 추존 翼祖), 행리의 아들 춘(椿 : 추존 度祖), 춘의 아들 자춘(子春 : 추존 桓祖 등이 천호(千戶) 벼슬을 계승해 왔는데, 자춘(子春)은 공민왕 때 고려에 공을 세워 대중대부(大中大夫)에 오르고 벼슬이 사복경(司僕卿)에 이르렀다.   그리고 시조 한(翰)의 22세손 성계(成桂 : 자 君晋, 호 松軒)에 이르러 어지러운 국정(國政)을 바로 잡아 민심을 수습하여 좌시중(左侍中) 배극렴(裵克廉)을 비롯한 조준(趙浚), 김사형(金士衡), 정도전(鄭道傳) 등 52인의 추대에 의해 왕위에 오르게 됨으로써 조선왕조(朝鮮王朝)를 창건하고 전주이씨(全州李氏)의 중시조(中始祖)가 되었으며, 그 후 정종(定宗), 태종(太宗), 세종(世宗) 등 열성조(列聖祖)를 거쳐 27 왕이 연면상계(連綿相繼)하여 형국(亨國)이 519년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본관의 유래를 상고해 보면 시조의 묘소도 전주에 있고, 또한 시조로부터 18세손인 안사(安社)에 이르기까지 전주에서 호족으로 세거하였기 때문에 본관을 전주로 하게 된 것이다.   전주이씨의 분파는 122파로 거의가 왕자인 대군(大君)과 군(君)을 파조로 하고 있다. 전주이씨의 분파는 시대 구분에 따라 세 갈래로 나뉘어지는데 시조 한(翰)에서부터 목조(穆祖) 안사(安社)까지의 사이에 갈라진 파요, 또 하나는 목조부터 태조(太祖)의 형제까지 사이에 갈린 파이고, 다른 하나는 태조의 후손으로서 제왕(諸王)은 <불감조기조(不敢祖其祖)>라 하여 조상이지만 조상이라 칭할 수 없기 때문에 왕자인 대군과 군을 파조로 하는 파이다.   태조의 후대에서 갈라진 파로는 진안대군(鎭安大君) 방우(芳雨)를 포함하여 99파(25 대군파와 74군파)로 알려졌으나 미취졸(未娶卒 : 결혼전에 죽음)이거나 후사(後嗣)가 없는 대군이 20명 정도가 되므로 실제로는 그 수가 줄어 대소 120여파로 갈라져서 세계(世系)를 계승하고 있다.   23세손 태종(太宗.芳遠)의 11명의 아들 중 장자로 태어난 24세손 양녕대군(讓寧大君) 휘 제(褆 : 자 厚伯, 시호 剛靖)는 세종(世宗)의 형으로서 1404년(태종 4)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그의 셋째 아우인 충녕대군(忠寧大君 : 世宗)이 성덕(聖德)이 있음을 알고, 거짓 미친 체하여 결국 세자로 책봉된지 15년만에 폐위, 양녕대군으로 감봉되었다. 그 후는 강산을 유람하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하여 풍류객(風流客)들을 사귀며 노는 것으로 여생을 마쳤다. 그는 아우들(세종.효령대군)과 특히 우애가 좋았으며, 시와 글씨에도 뛰어나 많은 작품이 전해지고 있다. 양녕대군파의 파조 1세조이며, 세종묘(世宗廟)에 입향(入享)되었다.   아들 개()는 1414년(태종 14) 갑오(甲午)생으로 세종 때 종친(宗親)에게 내리는 정1품 하계(下階)의 흥록대부(興祿大夫)에 이르고 순성군(順城君)에 봉해졌다. 그리고 손자 사종(嗣宗 : 자 希籍, 호 鈍齊)은 1449년(세종 31)에 나서 초수(初授) 종친부(宗親府) 부정(副正 : 종3품)에서 정의대부(正義大夫 : 종2품)에 이르고 오천군(烏川君)에 봉군(封君)되었다. 그는 임종(臨終)시 3제(弟) 5자(子)에게 이르기를, ‘만약 조부(양녕대군)의 제향(祭享)을 받드는데 있어 법을 틀어내어 지친간(至親間)에 서로 옳거나 그름을 주장하여 싸우면 나의 자손이 아니다’고 유계(遺戒)하였다.   4세손 철곤(鐵崑)은 오천군의 4자로서 1488년(성종 19)생이며, 임성수(任城守)로 장선대부(彰善大夫 : 정3품)에 이르렀고, 5세손 연(連) 진사, 6세손 양신(良辰) 또한 진사로서 무관무직이었고, 7세손 득복(得福)은 감찰(監察), 8세손 람(纜) : 호 一狂居) 주부(主簿), 9세손 승훈랑(承訓郞) 량(亮)은 인조 때 참봉으로 제수되었으니 유훈(遺訓)에 따라 불취(不就)하였으며, 뒤에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증직되었다.   10세손 추일(樞一)은 9세손 량(亮)의 셋째 아들로서 선향(先鄕)인 전남 나주(羅州)에서 1650년(효종 1) 해로(海路)를 통해 훨훨 단신 사천으로 들어와 지금의 정동 여옥(如玉)에 정착하니 이분께서 입향조(入鄕祖)시다. 묘소는 양위분 함께 정동 도덕산 합곡(合谷)의 자좌(子坐). • 11세손 인건(仁健) : 수직 가선대부(嘉善大夫) • 12세손 재송(齋松) : 인건(仁健)의 2자, 수직 통정대부(通政大夫) • 15세손 규린(奎麟) : 수직 통정대부 • 19세손 운학(雲鶴) : 마산시청 세정과 계장 역임 • 19세손 운포(雲鋪) : 창원군보건소장 역임 • 19세손 운영(雲瑩) : 김해경찰서 방범과정, 옥조근정훈장 서훈(경정) • 20세손 현주(現柱) : 마산 한일건설주식회사 근무 • 20세손 명주(明柱) : 삼성항공(주) 제1공장 생산과장 • 20세손 광주(光柱) : 경남도청 보건과 근무 • 문중 대표 19세손 운포(雲鋪)이며, 종손 21세손 종민(鍾玟) • 문중 분포 : 서울, 부산, 창원, 마산 등지에서 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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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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