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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지

• 진주류씨(晋州柳氏) 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 백사정공파(伯司正公派) (대산)   진주류씨(晋州柳氏)의 시조(始祖) 휘(諱) 정(挺)은 고려 중엽(肅宗朝)에 발신하여 벼슬이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중서령(中書令)을 지내고, 좌우위상장군(左右衛上將軍)에 올라 진강부원군(晋康府院君)에 봉해져서 후손들이 그를 시조 1세로 하고 진주(晋州)를 관향(貫鄕)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현 진주시 수곡면(水谷面) 원당리(元堂里)에 진강사(晋康祠)를 세워 해마다 제향(祭享)하고 있다.   2세 숙(淑)은 보승중낭장(保勝中郎將)으로 진녕부원군(晋寧府院君)에, 3세 돈식(敦植)은 상장군(上將軍)에, 4세 홍림(洪林)은 평장사(平章事)를 거쳐 판전리사사(判典理司事)로 진양부원군(晋陽府院君)에 봉해졌다. 그리고 홍림의 아들 부(榑, 5세)는 군기총랑(軍器摠郞)으로 진흥부원군(晋興府院君)에, 손자 간(玕, 6세)은 벼슬이 개성윤(開城尹)으로 진성군(晋城君)에 봉군되었으므로 6대가 크게 현달(顯達)하여 가세(家勢)를 크게 일으켰다.   진주 수곡면 원당리는 진주류씨의 세장지(世庄地)로서 4세 진양부원군이 만년에 내려와 살던 곳이다. 마을 서편에 만류정(萬柳亭)이 있었는데 그 정자 밑에 모정(茅亭)이 있고 또 그 정자 남쪽에 들정자(野亭)가 있으니, 주민들은 이를 홍림정(洪林亭)이라 부르고 있다. 현재 석각(石閣)이 서 있으며 괘인정유지(掛印亭遺址) 비문은 승람(勝覽)에서도 볼 수 있다.   진성군 간(玕)은 아들 3형제를 두었으니, 큰 아들 지정(之淀, 7세)은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를 지내고 진천군(晋川君)에 봉군되어 시호(諡號)는 문정(文正), 둘째의 지택(之澤)은 대사성(大司成)을 거쳐 보문각 직제학(寶文閣直提學)과 지제고(知制誥)를 역임하였고, 셋째의 지습(之濕)은 판서(判書)를 역임하여 각기 문정공파(文正公派), 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 판서공파(判書公派)로 나뉘어져 파조(派祖)가 되었다. 그리고 이 3파의 후예(後裔)들은 후대로 내려오면서 다시 여러파로 분파(分派)되었다.   8세 번(藩)은 대사성공(之澤)의 아들로 호는 벽은(噼隱). 1378년(우왕 4) 판선공시사(判繕工寺事)로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382년 밀직사사(密直司事)가 되었다. 이듬해 사신으로 다시 명나라에 가서 운남(雲南)의 평정(平定)을 축하했다. 고려가 망하자 개경(開京)의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절의(節義)를 지켰으며, 공의 빼어난 문아(文雅)는 당대를 떨쳤고, 시호는 청천군(菁川君)으로 봉군되어 합천의 노강재(魯剛齋)에 배향(配享)되었다.   9세 백통(伯通)은 시사공(藩)의 아들 3형제 중 장자로 태어났다. 조선조 세종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평해군수(平海郡守)를 거쳐 헌납(獻納)을 역임하였다.   아들 4형제 중 장자 승윤(升潤, 10세)은 부사정(副司正), 차자 승유(升濡)는 문과에 급제하고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을 거쳐 지제교(知製敎)를, 3자 승미(升湄)는 가선대부로 이조참판(吏曹叅判)에 추증되고 단양백(丹陽伯)에 봉해졌다. 그리고 4자 승적(升滴)은 충순위부사정(忠順衛副司正)인데 이로부터 백사정공파(伯司正公派), 헌납공파(獻納公派), 단양백공파(丹陽伯公派), 계사정공파(季司正公派) 등 상계대(上系代)에서 다시 분파되었다. 이 중에 시조의 10세손인 승윤(升潤)은 파조이며 백사정공파(伯司正公派)이다.   이후 19세손 이상은 온 나라가 초토화(焦土化)되고 민초(民草)들이 어육(魚肉)이 되어 버렸던 임진국란(壬辰國難)을 겪어 겨우 가계(家系)의 명맥을 이어왔다.   20세손 점(蒧)은 파조(派祖)의 10대손으로 임진난 때 난남(落南)하여 하동 옥종면 병천리(屛川里)에 살다가 진주시 진성면(晋城面) 동산리(東山里)를 거쳐 다시 생활의 근원(根源)을 찾아 입사천(入泗川)했는데, 정착한 곳이 사천읍 두량리(斗良里) 웅동(熊洞)이다. 그리고 입향조의 6대손 치규(致奎)는 1860년(철종 11)경 웅동에서 정동면 장산리(獐山里) 대산(垈山)에 이주하여 터전을 잡았다. 산소는 장산리 배방산(排房山) 간좌(艮坐)에 있다.   27세손 덕향(德香)은 1896년(고종 33, 丙申)생으로 슬하에 5남 1녀를 두었으며, 1992년 96수(壽)의 나이로 무민(無悶) 종신(終身)하였으니, 당시 면내에서는 최 고령자로 타인의 존경과 부럼을 사기도 했다.   현재 정동에 입향하여 4대까지 세거(世居)해 왔으니 130여년이 되며, 손세(孫勢)는 20여호에 이르나 지금은 시대변천에 따라 대부분 연고지(緣故地)를 떠나 진주, 마산, 부산, 울산, 대구 등지에 산거(散居)하고 대산에는 5호가 살고 있다.   문중대표는 28세손 승천(承天)이며, 70년대 초 정동농협 창립멤버(참사)로 10년 동안 실무를 담당하여 조합 발전에 기여했으며, 종손(宗孫)은 29세 봉상(奉相)이다. • 28세손 승일(承日) : 문중의 원로로 대산마을 노인회 회장 • 29세손 유상(攸相) : 대구직할시에서 약종상(藥鍾商) 경영 • 29세손 진상(震相) : 울산경찰서 근무(경사) • 29세손 외상(外相) : 부산 동래에서 주류도매업(酒類都賣業) 경영 • 29세손 철상(鐵相) : 부산 우성식품(주) 대리 • 29세손 춘상(春相) : 측량공사 기사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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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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