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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지

• 김해김씨(金海金氏) 삼현파(三賢派), 순파(順派-進士公派) (고읍)   중조(中祖) 휘(諱)는 관(管)이요 호는 정성(靖醒)이며 시조대왕(始祖大王) 수로왕(首露王)의 48대손으로서 고려 충선왕(忠宣王) 2년(1310)에 판도판서(版圖判書), 국자사(國子師)에 이르렀고, 왕에게 간(諫)하여 부도(浮屠 : 불교)를 배척하고 학교를 건설하여 유학(儒學)을 진흥시키는 등 국가에 많은 공을 세웠다.   삼현파(三賢派)라 함은, 조선조 22대 정조대왕(正祖大王)께서 김해김씨(金海金氏)를 가리켜 삼한갑족(三韓甲族)이라 하시며 절효(節孝) 극일(克一. 수로왕의 53세), 탁영(濯纓) 일손(馹孫 . 수로왕의 55세), 삼족당(三足堂) 대유(大有 .수로왕의 56세) 등 세 현인(賢人)을 가리켜 김해김씨로 삼현(三賢)이라 하였으며, 한 집안에서 4대간(四代間)에 3현인(三賢人)이 났다는 일은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선생 등 유림(儒林)의 상소(上疏)에 의해 나라로부터 자계서원(紫溪書院)이란 사액(賜額)을 받았고 절효공(節孝公), 탁영공(濯纓公), 삼족당(三足堂公) 세 선생의 위패를 서원 존덕사(尊德祠)에 봉안(奉安)하였으며, 유림에서 누세(累世) 춘추(春秋)로 봉향(奉享)하고 있다. 이 자계서원 건물이 유형문화재(有形文化財) 제83호로 지정되어 보존하고 있다.    시조왕(始祖王)의 53세손 극일(克一)은 중조(管)의 4대손으로 자(字)는 용협(用協)이요 호는 모암(慕庵)이며 시호(諡號)는 절효(節孝)이시다. 일찍부터 벼슬에는 뜻을 두지않고 학문에만 전심하여 높은 학덕(學德)과 경륜(經綸)을 쌓아 당세의 문장가(文章家)로 이름이 났다. 효행(孝行)이 남달리 뛰어나 세종(世宗) 때에 조정으로부터 효자문(孝子門)이 세워졌으며, 앞서 말한 청도(淸道)의 자계서원에 제향(祭享)됐다.   절효선생(節孝先生) 극일공(克一公)은 아들 여섯분을 두었는데 그 중에 제일 큰 아들 건(健 54세)의 호는 두계(斗溪)로서 군수공파(郡守公派), 차자 맹(孟)은 집의공(執義公派), 3자 용(勇)은 한림공파(翰林公派), 4자 순(順)은 진사공파(進士公派), 5자 인(靭)은 녹사공파(錄事公派) 그리고 맨 막내인 6자 현(鉉)은 진의공파(進義公派) 등으로 나뉘어졌다.   시조왕 54세손 순(順.중조 6세)은 절효공(克一)의 아들 여섯분 중 넷째 아들로 1415년(태종 15)에 태어났으며 자는 자상(子祥), 호는 청계(淸溪)이다. 세종 때 성균진사(成均進士)였으며 정훈(庭訓)에 따라 선향(先鄕)인 김해(金海)로 환거(還居)하여 선영(先塋)을 받들고 향화(香火)하며 자적(自適)하다가 여생을 마쳤다. 또 공의 중형(仲兄) 맹(孟)의 호는 남계(南溪)로서 당세의 대문장가(大文章家)로 알려진 인물이며 효성이 지극하여 명망(名望)이 높았다. 단종조(端宗朝)에 등사(登仕)하였다가 세조(世祖)가 등위(登位)하자 벼슬을 버리고 초야(草野)에 묻혔으니 위에서 말한 각기 파조(派祖)가 되었다.   그리고 55세손 일손(馹孫)은 중조 7세손으로서 절효공(節孝公)의 차자 맹(孟.執義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으로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며 일세의 문호(文豪)였다. 1486년(成宗) 17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하여, 예문관(藝文館)에 등용된 후 청환직(淸宦職)을 거쳐 1491년(성종 22)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고, 뒤에 이조정랑(吏曹正郞)이 되었다. 1498년(연산군 4) <성종실록(成宗實錄)>을 편찬할 때 앞서 스승 김종직(金宗直)이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史草)에 실은 것이 훈구파(勳舊派)의 눈에 띄어 김종직 문하의 신진 사림파(士林派)가 숙청당한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죽음을 당했다. 그러다가 중종반정(中宗反正. 1506년) 후 신원(伸寃)되고, 도승지(都承旨)에 추증(追贈)되었으며, 문민(文愍)이라 시호가 내렸다. 목천(木川)의 도동서원(道東書院)과 청도의 자계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입향조(入鄕祖) 66세손 상현(相賢 .중조 19세손)의 자는 성관(成寬)이며, 고종때 중추원(中樞院) 의관(議官 : 勅任)을 지낸 후 세거지(世居地)인 경상북도 청도에서 진주를 거쳐 사천에 들어와 고읍(古邑)에 정착했다. 묘소는 진주 도동골(道東谷) 건좌(乾坐).   67세손 형숙(瀅淑)은 통정대부(通政大夫)의 직함(職銜)을 교지(敎旨) 받았으며 아들 4형제(三洪, 大洪, 柱洪, 茂洪)를 두었는데 이 중 둘째 아들 대홍가(大洪家)만 고읍에 살고 그 외는 모두 연고지를 떠나 경향(京鄕) 각지에 살고 있다.   문정 대표는 68세손 대홍(大洪. 중조 21세)이며, 종손(宗孫)은 70세손 영석(永錫)으로 부산에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69세손 명곤(明坤)은 삼홍(三洪)의 장자로 부산에서 신광(新光)가스상사를 경영하고, 대홍(大洪)의 아들 인곤(仁坤) 또한 부산에서 경인(京仁)상사의 대표로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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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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