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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지

• 김해김씨(金海金氏) 동정공파(同正公派) (노천)   중조(中祖)의 휘(諱)는 호(灝)이시며 시조대왕(始祖大王) 수로왕(首露王)의 후손으로서 고려 공민왕 때 벼슬이 삼중대광광록대부(三重大匡光祿大夫)에 예빈승동정(禮賓承同正)을 지내셨다.    7세손 구(龜)의 자는 영인(靈人 : 一云 希禹)이요 호는 금산(琴山)인데, 조선조때 별시위사정(別侍衛司正)을 역임한 6세조 이형(利亨)의 아들이다. 세종 병오생(1426)으로 단종 때 진사(進士)가 된 이듬해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였다. 예문관 한림(藝文館翰林 : 檢閱 侍敎, 奉敎를 통칭 翰林이라 함),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등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지낸 후 종부시 첨정(宗簿寺僉正) 겸 춘추관 편수관(春秋館編修官)을 거쳐 초계군수(草溪郡守)로 나아갔다. 그런데 당시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 이극돈(李克墩)과의 불화로 직척(直斥)을 당하여 억울하게 창원(昌原)으로 귀양가 향년(享年) 60세로 타계하였다. 공은 어려서부터 탁영공(濯纓公) 김일손(金馹孫)과 함게 경기도 용인(龍仁)에서 자랐는데, 그 서식(棲息)하던 곳을 지금은 한림대(翰林臺) 탁영봉(濯纓峰)이라 일컬는다. 묘소는 창원군 동면 금산 건좌(琴山 乾坐)이며 비석이 섰다.   10세손 윤종(胤宗) 자는 계지(繼志), 호는 류계(柳溪)이며 한림공(翰林公) 구(龜)의 증손이다. 어려서부터 천부적으로 머리가 맑아 수고롭게 가르치지 않아도 시문(詩文)에 숙달했으며, 스무살 안팎에 문장이 빛나고, 마침내 박식이 심오하여, 그의 글에서 왕왕 사람을 놀라게 하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기묘사화(己卯士禍 : 1519년) 때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선생과 도의(道義)로 사귀어 온 탓으로 사건에 연류(連累)되어 장배(杖配), 명천(明川) 땅에서 원사(寃死)하였다.   아들 11세손 수(洙 : 자는 德宇)는, 부조(父祖)께서 억울하게 희생당하자 서둘러 통영군 도산면 도선동(道善洞)으로 숨어들어가 은거생활로 화를 피했다. 그리하여 류계공(柳溪公)의 후예들은 대대로 맑고 높은 지조(志操)로서 가계(家系)를 이었다.   16세손 상춘(尙春 : 자 永鎭)은 숙종 때(연대 미상) 조향(祖鄕)인 도선동(道善洞)에서 고성군 영현면(永縣面)으로 이주 영부리(永芙里)에서 살았다. 직함(職銜)은 증직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산소는 고성군 상리면 고봉리 장등 해좌(亥坐)에 소재.   17세손 선(漩)의 초휘는 중빈(重彬)이요 자는 화칠(化七)로서 영조 을사생(1725년)인데 무과에 급제하여 여절교위 훈련원 판관(勵節校尉訓練院判官)을 지냈다.   18세손 진련(震鍊) 초휘 유련(有鍊) 자 부욱(夫旭), 증 자헌대부 호조판서 겸 영돈녕(贈資憲大夫戶曹判書兼領敦寧).   19세손 배묵(培黙) 초휘 인배(仁培) 자 계언(桂彦), 증직 자헌대부 예문관 제학(贈職資憲大夫藝文館提學).   20세손 시렬(時烈) 일명 종열(宗烈) 자 선여(善汝), 배묵(培黙)의 2자로 1810년(순조 10)생이며, 증공조정랑 겸 이조참판(贈工曹正郞兼吏曹叅判).   21세손 만정(萬釘) 일명 낙선(洛善) 자 운서(云瑞)로 순조 임진생(1832년)이며, 벼슬은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역임하였다. 묘 고성군 상리면 척정리 두음곡 손좌(巽坐).   22세손 정원(顁元) 입향조(入鄕祖)의 자는 태규(泰奎)요 호는 영은(潁隱)이시며 1889년생. 세거지인 고성 부연리(芙連里)의 영천강(潁川江) 상류에 살다가 중년에 입정동(入正東), 유서깊은 노천(魯川)에 정착하였다. 일찍이 경사(經史)와 제자백가(諸子百家)를 박섭(博涉)하였으며 곁드려 의약(醫藥)과 음양(陰陽), 그리고 지리(地理)에까지 세밀히 공부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한다. 평소에는 자애(慈愛)와 엄격(嚴格)으로 교자훈손(敎子訓孫) 하였으며 또한 후진(後進)을 가르치는데 기여하였고, 향년 82수로 타계했다. 묘소는 양위분 함께 노천마을 뒤 안산(案山)에 소재하고 비석이 섯다. • 23세손 병수(柄水) : 자 경수(炅水) 호 류운(柳雲), 제3대 정동면의회 의원 역임 • 23세손 병률(柄律) : 자 병열(鈵烈) 호 소담(素淡), 문중대표이며 진주에 거주, 교육계에 장기간 봉직하였고, 진양 갈촌(葛村) 초등학교 교장 역임(정년퇴임) 국민훈장 목련장 서훈 • 24세손 재하(在河) : 노천마을 이장 역임. 정동농협 이사(현) • 24세손 주하(柱河) : 진양군보건소 행정계장 • 24세손 봉하(奉河) : 기업은행 진주지점장 • 24세손 장하(章河) : 일찍부터 조부(顁元公) 밑에서 한의학(韓醫學)을 배웠으며, 장성하여 남성당(南星堂) 한약방을 경영하면서 그간 올바른 재물을 쌓아 사회 및 육영사업에 기여하고 있는 장년(壯年)의 독지가(篤志家). 사립학교 법인 남성학숙(南星學塾 : 진주 명신고등학교)을 설립, 이사장을 역임한 후 동학숙을 국가에 헌납하였고 또 인재 양성을 위해 불우한 우수학생에게 수십년에 걸쳐 줄곧 장학금을 제공하고 있을 뿐 아니라 출신지인 정동 노천에 50평 규모의 마을회관을 건립하여 희사하였다. 특히 정동면지 간행을 위해 거액을 출연(出捐)한 바 있다. 경상대학교 남명학(南冥學)연구소의 후원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국민훈장 모란장 서훈 • 24세손 기하(機河) : 진주명신(明新)고등학교 서무과장 역임, 진주신일교통(주) 상임감사 • 24세손 철하(哲河) : 동양농기구 사천, 삼천포대리점 경영 • 25세손 성락(成樂) : 부산 건보실업 사원 • 25세손 성효(成孝) : 군 복무를 마치고 원광대학교 재학 중 • 25세손 성직(成直) : 군복무후 복학하여 진주산업대학교 재학 중 • 25세손 성욱(成旭) : 종손(宗孫) • 문중재실(穎隱齋) : 정동면 장산리 노천마을 795번지 소재(서기 1992년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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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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