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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지

• 김해김씨(金海金氏) 도총관공파(都摠管公派), 서강파(西岡派) (고읍, 예수)   중조(中祖) 휘(諱) 경신(敬臣)은 시조대왕(始祖大王) 수로왕(首露王)의 후예로서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도총관(都摠管)에 이르러 국가에 많은 공을 세웠다. 도총관이란 1373년(공민왕 22) 윤(閏) 11월에 왜구(倭寇)의 노략질에 대비하여 도총도감(都摠都監)이 설치되었는데, 조선시대에 서반(西班, 武官) 관아(官衙)의 하나인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와 같은 통솔권을 가진 기관으로서 품계는 정2품(正二品)이다. 도총관공파(都摠管公派)의 1세조.   6세 계금(係錦)의 호는 육일(六一).서강(西岡)으로서 선고(先考)는 부사(府使)를 지낸 중조 5세손 효분(孝芬)이다. 1454년(단종 2)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여 지평(持平)벼슬에 보직되었다. 얼마후 외직으로 의성현령(義城縣令)으로 이임(移任)되었으나, 1456년(세조 원년) 사육신(死六臣)이 화(禍)를 당하자 수령직(守令職)을 버리고 낙향(落鄕)하여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초야(草野)에서 여생을 마쳤다. 문장(文章)과 행의(行誼)로 당세에 이름나 사류(士類)의 추증(推重)을 받았고, 뒤에 서강공파(西岡公派)의 파조가 되었다.   중조 15세손 만옥(晩玉 : 시조왕은 64세)은 입향조(入鄕祖)로서, 지그부터 약 270년 적인 1724년(景宗 4)경 진양군 금곡면(金谷面) 죽곡(竹谷)에서 사천(泗川)으로 이주 예수(禮樹)에 정착하여 가계(家系)를 이었다.   17세손 도흥(道興)의 자 도여(道汝)이며 증직 통훈대부사복시정(通訓大夫司僕寺正)하고, 19세손 응락(應洛)의 자는 주서(周瑞), 호(號)는 죽헌(竹軒)으로서 직함(職銜)은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에 증직되었다.   공의 부인(夫人) 평산신씨(平山申氏)는 구고(舅姑.媤父母) 봉양(奉養)이 지극했으며 늘 맛있는 음식과 약 등을 갖추어 놓고 진공(進供)함을 잊지 않았다 한다. 헌데 불행히도 부군(夫君) 응락공(應洛公)이 학질(瘧疾)에 걸려 누년(累年) 신고(呻苦)하다가 끝내 위독해 지자, 마침내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약으로 쓰게되니 두 해나 연명(延命)하였다. 뒤에 이와 같은 효렬(孝烈)이 순종조(純宗朝)에 알려져 정문(旌門)이 내렸는데, 이 효렬지여(孝烈之閭)가 현재 정동우체국 동쪽 국도변(33호선)에 서 있다.   입향조 이래 가세(家勢)는 그다지 창성(昌盛)한 편은 아니나, 손세(孫勢)는 약 20호에 달했으며 지금은 모두 연고지(緣故地)를 떠나 경향(京鄕)각지에 살며 활동하고 있다.   후손들의 면면을 보면 다음과 같다. • 22세손 달홍(達弘) : 학교법인 백진(白振)학원 이사장 역임, 삼천포 남녀중고등학교 4개교를 설립하여 육영사업에 기여 • 23세손 한석(漢錫) : 서울 도봉구청 도시과장 역임(정년퇴임) • 23세손 연석(演錫) : 세무공무원 정년퇴임, 회계사무소(서울 영등포) 경영 •23 세손 형석(炯錫): 삼천포 중학교 교장 • 23세손 갑석(甲錫) : 문중대표(고읍), 정동농협 이사, 고읍 이장 역임 • 23세손 전적(全錫) : 삼천포 실안(實安)초등학교 교사, 한국미술협회 회원, 한국미술대전 및 서예대전(문인화) 각 2회 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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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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