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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지

• 경주김씨(慶州金氏) 영분공후(永芬公后) 수은공파(樹隱公派) (동계1)   시조(始祖) 휘(諱) 알지(閼智)의 28세손 경순왕(敬順王 : 신라 제56대) 부(傅)의 셋째 아들 명종(鳴鐘)은 손국(遜國) 후 경주군(慶州君)으로 봉군되고 시호는 영분으로서 경주김씨 영분공파(永芬公派)의 파조가 되었다.   파시조 영분공의 6세손 예겸(禮謙)이 고려 때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내중령(內中令)을 지냈고, 예겸의 손자 8세손 의진(義珍)은 고려 때 양신공도(良愼公徒)를 육성하였으며 문종조(文宗朝) 때는 참지정사(叅知政事)로 지공거(知貢擧)를 겸하여 인재등용(人材登用)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이어 판상서병부사(判尙書兵部事), 평장사(平章事) 등을 역임하였다.   또한 평장사 의진(義珍)의 종손인 11세손 영고(永固)는 지후(祗候) 벼슬로 무신의 난을 일으킨 정중부(鄭仲夫)와 이의방(李義方)을 제거하려 힘썼고, 그의 아들 12세손 인경(仁鏡)은 문무(文武)를 겸전한 인물로서 고종 때 조충(趙沖)과 함께 강동성(江東城)에서 거란(契丹)군을 격퇴하는 공을 세우고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까지 올랐으며 학문과 글씨에 뛰어났다.    파시조 영분공파의 후대 파계는 15세손 서인(瑞仁 : 正郞)의 아들 4형제 대(代)에서 4대계로 대별되어 고려와 조선조에 걸쳐 명문(名門)의 지위를 지켜 왔는데 이를 계통별로 보면 큰아들 충유(沖裕)를 파조로 하는 송계공파(松溪公派) 충한(沖漢)을 파조로 한 수은공파(樹隱公派), 충보(沖保)를 파조로 하는 시어사공파(侍御史公派), 충익(沖益)을 파조로 하는 참찬공파(叅贊公派) 등으로 나뉘어졌다.   16세손 충한(沖漢)의 자(字)는 통한(通漢)이요 호는 수은(樹隱)으로서 정랑공 서인(瑞仁)의 둘째 아들이다. 고려말 예의판서(禮儀判書)를 지냈는데, 1392년 고려가 망하자 72현의 한 분으로 도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절의(節義)를 지키며 조선조를 섬기지 않았다. 후에 남하하여 호남에서 은거하고 초야(草野)에 묻혔는데 수은공 후손들의 파조가 되었다.   17세손 작(綽)의 호는 남천(南川)으로 파조 수은공(樹隱公)의 아들이다. 1414년(태종 14)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을 역임한 후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올랐다.   입향조 32세손 용호(龍浩)는 수은공의 17세손으로 조고(祖考)는 성도(聲道), 부조(父祖)는 일윤(鎰允)인데, 120년전 경남 산청에서 진주를 거쳐 입사천(入泗川), 당시 역(驛)으로 유명한 동계(東溪)에 정착하여 가계(家系)를 이어왔다.   문중대표(門中代表)는 동계 이장을 지낸 34세손 일민(一敏 : 보명 哲敏)이며, 종손 35세손 외화(外華)는 울산(蔚山)에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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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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