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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지

第 4 節 조선시대의 교육(朝鮮時代의 敎育)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은 설립․운영면에서 볼 때 대체로 3가지로 구분할 수가 있다. 첫째는 국가가 직접 설립하고 운영을 통제한 교육기관으로서 서울에 설립된 성균관과 사학(四學)이 있으며.둘째는 지방관청의 통제를 받았던 교육기관으로서 지방에 설립된 향교가 있으며.셋째는 사립 교육기관으로서 서원(書院)과 서당(書堂)이 있었다.   이러한 교육기관들은 전반적으로 통제하고 지원하는 중앙정부의 기구는 의정부(議政府) 산하의 예조(禮曹)였으며.그 장(長)은 예조판서였다.예조의 교육지침에 따라 지방의 교육기관들을 감독하는 기구는 도관찰사 밑에 있던 육방(六房)의 하나였던 예방(禮房)이었다. 양반의 자제들은 대개 7~8세 또는 그 이전부터 가정과 서당에서 초보적인 한문과 습자를 익히고 15세 정도가 되면 서울에서는 사학.지방에서는 향교 또는 조선조 중기이후 향교의 교육 기능이 쇠퇴됨에 따라 서원에서 학문에 힘써 1차 과거인 소과(小科)에 응시하였으며.이에 합격하면 생원(生員).진사(進士)의 칭호를 받고 성균관에 진학하여 대과(大科)인 문과(文科)에 급제하기 위한 준비를 쌓는 순서를 밟았다.   이 점에 비추어 볼 때 성균관은 고등교육기관.사학과향교 그리고 서원은 중등교육기관.서당은 초등교육기관으로 각각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교육의 수준에 따르는 구분에 불과한 것이지 현재 학교 제도와 같이 엄격한 구분이 지워진 학교급별 학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 각각은 모두 하나의 독립된 형태로 존재하였던 것이다.   성균관과 사학은 예조의 직접적인 통제하에 있었으며.국왕이 하사한 학전(學田).노비.어장(漁場) 등의 수입에 의해 유생들을 교육하는 경비를 충당하였으며.향교도 그러한 방식으로 학교를 꾸려나갔다.뿐만 아니라 사립학교인 서원도 토지의 면세.노비제공.곡물과 서적제공 등과 같은 국가의 재정적인 후원을 받았다.서당의 경우를 제외하면 조선시대의 학교들은 이와 같은 국가의 재정적 지원에 힘입어 발전하였다고 하겠다.유교를 그 지도이념으로 삼은 조선왕조로서는 이러한 재정적 후원을 통하여 유교의 학풍을 진작시켰으며.그 결과 국가가 초등교육을 제외한 모든 교육을 관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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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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