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정동면지



정동면지

1.국자감(國子監)   고려시대 최고 학부는 국자감이다.태조때 경학(京學)이라는 학교가 있었으나 성종 11년(992)에 경학을 개편하여 국자감을 세웠다.국자감의 교육 목적은 관리 양성을 목적하면서 동시에 유교적인 학문의 연구 기관으로서의 사명이 있었다.   예종 4년(1109)에는 국자감에 7제(七齊)를 설치해 문무 교육을 장려하였으며.이종때 와서 비로소 학제가 완비되었다.그 내용은 국자감에는 국자학․태학․사문학(四門學)․율학(律學)․서학(書學)․산학(算學) 등의 육학(六學)이 있고.입학 자격은 각 학에 따라서 달랐다.그리고 국자감의 교육 내용은 주역(周易)․상서(尙書)․모시(毛詩)․주례(周禮)․대례(戴禮)․춘추(春秋)․무학(武學)을 각각 일경(一經)으로 하고 논어(論語)․효경(孝經)은 필수과목으로 6학에는 율령(律令).서학에는 팔서(八書).산학에는 산수(算數)를 각각 학습케 하였다. 수업년한은 신라의 국학과 같이 경사(經史)를 공부하는 국자학․태학․사문학에서는 9년으로 하였다. 그 후 국자감은 충렬왕 원년(1275) 국학이라 개칭하였다가 같은 왕 3 년(1308)에는 그 명칭이 성균관(成均館)으로 바뀌었는데 이때부터 성균관을 중심으로 송대(宋代)의 신유학 곧 정주성리학(程朱性理學)이 성하여 문치(文治)의 기운이 일어났다.   성균관이라는 이름은 ‘일장성균지법전( 一掌成均之法典)이치건국지학정(以治建國之學政)\' 이라는 주례의 성균에서 연원된 것이다.그 전래자는 안향(安珦)과 그 제자 백이정(白頤正)이었다. 이색(李穡)은 공민왕 원년에 신유학을 진흥시키는 방법으로써 성균관생이 아니면 과거에 응시할 자격을 주지 말자고 했으며 또한 척불양유(斥佛揚儒)의 한 방법으로 성균관을 충실히 하고 여기에서 유학진흥책으로 인재를 양성하려고 하였다.


담당자
문화체육과 문화예술팀 055-831-2714
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만족도 조사 민원신청  시장에게 바란다  조직도  공지사항  공고/고시/시험 
페이지 수정요청열기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시나요?

평가: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