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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지

1.가야(伽倻)의 건국(建國)과 발전   삼한사회를 모태(母胎)로 하여 성립.발전했던 백제∙신라와 북방의 부여족사회(扶餘族社會)에서 건국한 고구려를 합쳐 흔히 삼국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는 변한 12국을 모태로 하여 성립.발전한 가야사회도 여기에 포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삼국시대라는 개념에는 이전의 삼한사회에서 한 단계 발전하여 새로운 정치 사회를 지향하는 세습적(世襲的) 왕권이 확립되고 중앙집권적 율령국가(律令國家)로 성장.정립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니 삼국 및 가야사회는 서로 국경을 접하게 되고 이들 사이에는 끊임없는 공방전(攻防戰)이 일어나 국경개념이 더욱 확실해져 갔다고 보겠다.   ‘가야’라는 명칭은 출전(出典)과 시대에 따라 가야(加耶.伽耶.伽倻).가라(加羅.伽羅.迦羅).가락(伽落 .駕洛)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또 이들 가야제국들은 때에 따라 5가야.6가야 혹은 가라7국.포상8국.임라(任那)10국 등 연맹체의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다만 중국사서에서는 구야(狗耶)∙가라(加羅)로.≪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는 임나가 가야 전역을 가르키는 용어로서 대체로 사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가야’에 대한 문헌사료 중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차자(借字)는 加羅(47회)이고. 그 다음으로 加耶(31회).伽倻(28회)와 駕洛(15회).伽耶(14회)등이며 기타는 1~2회만 나오는 예외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의 자료를 근거로 하여 ≪삼국지≫∙≪삼국유사≫의 ‘狗耶’∙‘駕洛’은 언제나 김해의 금관국(金官國)을 가르키고 6세기 이후를 주로 다루는 ≪일본서기≫의 ‘加羅’는 대부분 경북 고령(高靈)의 대가야(大伽倻)를 가르킨다 하겠다.   가야는 김해의 가락국을 모태로 하여 성립한 것인데. 그 내용은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잘 나타나고 있다. 즉 김해지역의 토착세력인 9간(干)이 수로(首露)를 김해 가락국의 왕으로 삼고. 나머지 다섯 사람은 가야의 여러 지역으로 보내어 6가야가 성립했다고 한다. 이중에 소가야(小伽倻)가 고성지역인데 사천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 경역을 동은 황산강(黃山江:낙동강 중.하류)으로 서남은 창해(滄海.남해안).서북은 지리산(智異山.智異山).동북은 가야산(伽倻山).그리고 남으로 나라의 끝을 삼았다 하였으니 이로 보아 사천지역도 가야경역안에 포함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을 계기로 가락국은 A.D.42년에 건국하여 6가야연맹을 형성한 것으로 되어 있다.≪삼국사기≫초기 기록에는 이처럼 김해가 중심이 되어 신라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경쟁관계로 묘사되고 있고 또한 3세기초엽에는 앞서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서남해안에 별도로 형성된 포상8국과의 경쟁관계로 대두되어 이 시기 남부지역 세력권의 동향을 이해하는데 시사하는바가 크다.

  고려시대의 기록인 <가락국기>의 내용과 ≪삼구사기≫초기 기록의 연대 및 개별적 사실까지 모두 신빙성이 있는 것은 물론 아니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초기가야의 성립을 변진구야국(弁辰狗邪國)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면 어느 정도 실마리는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즉. 마한(馬韓)의 목지국(目支國.肢國이라고도 함).진한(辰韓)의 사로국(斯盧國)과 함께 구야국은 김해를 중심으로 변한의 대표세력으로 나타나는데. 수로왕(首露王)의 등장은 바로 구야국의 성장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활발한 대외교역활동을 통해 철기류∙한경(漢鏡)등을 독자적으로 수입하여 이들 물자를 가야 여러지역에 공급하는 재분배 관계가 성립되어 있어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구야국이 중심이 되어 가야지역으로부터 철(鐵)의 원료를 집산하여 중국의 군현과 왜(日本)와의 교역을 통해 그 경제적 이익을 공유했을 것으로도 보여진다. 그런데 여기에는 구야국 뿐만이 아니라 남해안의 해상세력인 사천∙고성∙함안지역의 소국들도 해상교역의 역할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일컬어지듯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김해 구야국을 중심으로 6가야 연맹을 행성했는지의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6가야라는 것도 어느 특정시기의 가야제국 수를 가르키는 것인지 알 수 없고.≪삼국유사≫에 나오는 5가야조자체에서도 이설(異說)을 소개하고 있는 바다.≪일본서기≫에도 가라7국∙임나10국 등으로 나오기도 하여 전체 가야국 수는 10여 국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현재까지는 확정적인 수를 가지고 연맹체 자체를 논할만한 아무런 근거는 없는 실정이고 변한 12국이라는 ≪삼국지≫<위서>의 기록이 보다 사실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다만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대 국가 형성요인 가운데 경제적 측면에서 주목되는 물자재분배 활동을 통해 김해 구야국이 초기가야제국내에 중추적 구심체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추측될 뿐이다. 어쨌든 이 무렵 가야사회는 구심체 역할을 통한 정치의식이 생겨났슴은 분명하고 중국측에서 변한 12국이라고 지칭한 것도 그 바탕에는 이같은 의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군∙현과의 접촉을 통해 가야지역의 정치적∙정치의식이 보다 성장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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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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