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정동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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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사천성(泗川城)의 탈환   9월 20일부터 작전을 개시한 중로군은 남강을 건너 유격장 모국기 등이 먼저 망진․영춘재를 점령하여 불을 지르고 이틀 후인 22일에는 서남으로 40리 떨어진 곤양성도 탈환하였다.어디서나 왜군은 잠시 싸우다가는 허둥지둥 도망을 치는 것이 중로군의 적수가 못 되었다.   승세를 탄 제독 동일원은 사천성을 빼앗기 위해 우병사 정기룡을 선봉장으로 삼고 보기(步騎) 3천여 명으로써 공격 전진케 하였다.제독 자신은 정예 4천명을 뽑아서 이에 뒤따르게 한 다음 28일 밤에는 사천성을 포위 공격하였다. 이 때 성을 지키던 적장 가와카미(川上忠實)는 신채 본진의 시마즈로부터 이미 철수 명령을 받고 있던 터여서 다음날부터 철수하려던 참에 마침 하루 전에 중로군의 공격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 수장(守將) 가와카미는 수하병 300여 명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사천성은 이미 독안에 든 쥐꼴이 되고 말았다.궁지에 몰린 적병은 그 위급함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자 비장한 각오로 새벽부터 성문을 박차고 나와 아군의 포위망을 뚫기 시작하였다.이때 적의 도주길은 성문 앞 일대에 넓게 펼쳐진 고랑들(古浪坪:현 사천평야)의 좁은 길과 무논(水田)을 거쳐야 했다.아군은 도주하는 적을 기병으로 추격하고 퇴로를 막고 한편으로는 보병이 달려들어 활을 쏘아 적병을 거꾸러뜨렸다.이러하여 고랑들에서 다음날까지 계속된 격전에서 아군은 유격장 노득공(盧得功)을 잃었으며 적은 1백5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간신히 바닷가 본진 신채로 도망쳐 들어갔다.   이 싸움에서 동제독의 접반사(接伴使)인 이충원(李忠元)이 보고하기를.      “사천으로 진격하니 적의 무리 4백명이 성을 버리고 달아나 신채로 들어갔습니다.중국 군사와 우리 군사가 벤 적의 머리는 80여급이었고 노유격(盧遊擊)은 탄환(彈丸)을 맞아 죽었습니다.적의 시체 중에 비단옷을 입은자가 있었는데 항복한 왜인이 알아보고 ‘이 자는 사천 진영의 부장(副將)이라’ 하였습니다.”   고 하였다.《선조실록》      또 저쪽에서는.      “새벽을 기해서 동일원 휘하의 대병이 사천성으로 포위공격하였는데 가와카미는 사가라(相良賴豊)와 더불어 성을 굳게 지키다가 드디어 성밖으로 나가 명군의 유격장 노득공을 죽이고 포위망을 뚫었으나 명군의 추격을 받아 사가라는 전사하였다.사쓰마(蕯摩:시마즈군)의 전사자는 150여 명이나 되었고 그 나머지 병사는 부상당하지 않은 자가 별로 없었다. 수장 가와카미는 투구에 무릇 36개의 화살을 맞았으나 계속 싸우면서 신채까지 후퇴했다.”      고 기록하면서 아군의 추격으로 혼비백산하여 큰 피해를 입었음을 시인하고 있다.《島津家記》   이 때에 적장 시마즈는 이를 구원하기를 허락하지 않았는데 그는 여러 부장들에게 말하기를

  “사천성에서 고전하는 군사를 그대로 내벼려 두는 것은 참으로 참기 어려운 일이로되 적의 대군이 뒤따라 온다면 우리 신채도 마침내 지키기 힘이 들테인 즉 각자 맡은 진영을 지키면서 성밖으로 출격하지 말라.”      고 엄명하였다. 그러나 부장 이세(伊勢貞昌)는 단기로 곧 말을 급히 몰아 성 밖으로 나간 다음 사천에서 패하고 돌아오는 수장 가와카미 이하 부상당한 병사들의 수용과 엄호에 힘썼다고 기록하고 있다.   승리를 거둔 제독 동일원은 마침내 사천성으로 입성하였다. 그는 중국 선부(宣府)의 전위(前衛)출신으로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무장의 집안에 태어났고 형 일규(一奎)도 이름난 장수였다. 그 자신 또한 이미 3대 채 황제(皇帝)를 섬기는 동안 많은 경험을 쌓은 노련한 장수였다. 그러나 그는 조선 땅이 처음일 뿐 아니라 왜군 중에서도 가장 사납고 강폭한 시마즈군과 싸우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만하게 이번 싸움에서 “석만자(石曼子:왜장 시마즈(島津義弘)의 중국말)를 사로잡아 내 발바닥을 핥게 하리라.”고 호언하였다. 그러나 동행한 우의정 이항복은 옆에서 어쩐지 불안하여 말하기를 “사천성까지 수복했으니 느긋하게 쉬면서 신채의 지리를 살피고 적정도 자세히 알아본 연후에 치는 것이 어떻겠소.”하고 한마디 충고를 했다. 이 말을 들은 제독은 “그것은 모르는 소리요 자고로 병이라는 것은 좀 부족한 대목이 있더라도 신속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만전을 기하려고 질질끄는 것이야말로 가장 금물이지요(兵聞拙速不聞工遲)”하고 듣지 않았다. 또 적성(賊城:신채)에 우물과 샘이 없어서 크게 근심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우병사 정기룡은 퇴로를 열어주는 목마른 적이 성밖으로 나올 때 공격하지 하고 유격장 모국기는 고성 방면의 적을 먼저 깨뜨린 후에 신채를 치자고 하고 원래 경솔하고 지모(智謀)가 없는 유격장 팽신고는 즉각적인 강습(强襲)을 주장했다. 이렇듯 여러 장수들의 주장을 듣고 있던 동일원은 껄껄 웃으면서 말하되 “뇌성벽력포(雷聲霹靂砲)를 퍼부어 놈들이 귀를 막을 새가 없게 하리로다.”고 하니 그의 안중에는 이미 적이 없는 듯 하였다.   이렇게 하여 제독 동일원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군령(軍令)을 내리되“내가 먼저 이 적을 쳐부신 뒤에 아침 밥을 먹으리라.”하고 전병력을 동원하여 일로 신채를 향하여 진군을 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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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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