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정동면지



정동면지

○ 각시골의 유래   봉황새의 보금자리로 하늘에 우뚝 솟은 봉대산(鳳臺山). 사방이 유연한 곡선으로 물결처럼 흘러나간 산등성이로 본면 소곡리 객방(客坊)부락의 배경이 되는 산, 해발 409m의 태초(太初)부터 태어났던 그대로의 소박한 경관을 간직한 우리의 야산이다.   산정에 오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어 북쪽은 진주시, 남쪽은 사천시, 동쪽은 고성군의 땅으로 옛날부터 소나 염소를 놓아두면 세 고을의 풀을 뜯어 먹는다는 웃으개소리가 전한다. 비록 천년의 비경(秘境)을 간직한 태산준령(泰山峻嶺), 장엄한 명산이 아닐지라도, 조상의 뼈가 묻혀 있고 어릴 때의 꿈과 낭만이 깃들어 있기에 한층 정겨움을 느끼게 하는 산이다.   산봉우리에서 서북쪽 비탈진 곳을 조금만 내려 오느라면 이름하여 <각시골>이라 부르는 깊숙한 산골이 자리하고 있다. 이 곳에는 삼각형의 모양새를 한 야트막한 산등성이가 남북으로 뻗어있는데, 사천~고성간 국도가 뚫리기 전에는 이곳 객방 사람과 구 진양군 금곡면 사람들이 산등성이의 산길을 이용하여 내왕이 잦았던 곳이다.   때는 조선조 초엽(初葉) 아니면 중엽(中葉) 쯤 되는 옛날이었다.   어떤 이는 이곳에 철장(鐵場: 조선 태종 때에 철의 생산지에 沙鐵 및 石鐵 을 캐내어 正鐵을 만들어 國用에 쓰게한 製鍊場)을 설치하기 전이라고 하고, 어떤이는 그후의 일이라고 하는데, 어떻든 구전(口傳)되어 오므로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울창한 봉대산의 숲과 높고 낮은 산봉우리요, 들리는 것이라고는 산새 및 산짐승 울음과 시내의 물소리 뿐인 이곳, 태고의 정적 속에 묻힌 산자락에 어디서 어떤 사연으로 흘러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여러 각성바지의 사람들이 조그마한 취락을 형성하여 서로 도우며 의좋게 오순도순 살고 있었으니, 이름하여 객방(客坊)이라 일컫는다.   초록빛 숲사이로 모둠모둠 피어 있는 진달래 꽃들 곱고, 멀리 들리는 뻐꾹새 울음도 언제나처럼 서럽고 애절한 느낌마저 자아내는 어느 봄날, 열댓살 안팎의 마을 처녀아이들 네댓이 산채(山菜)캐러 뒷산에 올랐다.   아이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각기 흩어져 산나물을 캐다가 점심때가 되면 시냇가에 모여 싸 가지고 온 밥을 나누어 먹고서 다시 흩어져 바구니가 가득 차 면 대개 해거름 때쯤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그런데 이날 따라 늦장을 부린탓에 어느덧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서쪽 하늘은 뿌옇게 노을이 물들기 시작하였다. 서둘러 산채를 가득채운 아이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 둘씩 개울가에 모여 들었다. 그러나 일행중에 귀득(貴得)이란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주위를 살피며 ‘귀득아,귀득아’하고 불렀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한편 귀득이는 나물 캐는데 열중한 나머지 산속 깊이 들어가 이리저리 헤메다가 그만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얼마만큼 시간이 흘렀는지 정신이 들어 눈을 뜨고 보니, 해는 막 떨어져 어스래한 때가 되었고, 멀리서는 산짐승 우는 소리만 정적을 깨고 있었다.   다행히 큰 상처는 나지 않아, 간신히 몸을 추스리고 일어선 귀득이는 손발로 기다싶이 하여 산마루를 넘으려 하는데, 이게 웬일인가. 산자락에 갑자기 하얀 안개구름이 일더니 그 속에서 흰수염과 백발을 한 노인(老人)이 어린 동자(童子)를 데리고 나타나 막 산마루를 올라오고 있지 않은가.   하도 괴이쩍고 이상한 예감이 든 그녀는 나무뒤에 몸을 숨기고 노인과 동자가 지나가는 것을 지켜 보았다. 해는 이미 서산에 떨어져 어둑어둑한데, 그렇게 세차게 불던 바람도 멈추고 산골짜기는 정적만 계속되었다.   그런데 앞서 오던 노인이 산마루에 이르자 동자보고 하는 말이 “애야, 저 아래 골짜기에 서 있는 큰 소나무를 보아라. 솔잎이 무성하게 자란 것을 보니, 그 아래에 집을 짓고 살면 큰 부자가 되겠구나”라고 하였다.   그러자 동자가 한참 그곳을 내려다 보고는, “도사님 말씀대로 큰 부자가 나겠네요, 그렇지만 터가 좀 세어서 산신령에게 잘 빌어야 되겠습니다요. 그리고 집을 지은 후 첫 손님이 찾아오면 대접도 잘 해야 되겠고요” 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때 노인은 동자의 알랑거리는 말을 듣고, “네가 뭘 안다고 그러느냐” “빨리가자” 하며, 두 사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영특한 귀득이는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이는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이미 날은 어두워져 서쪽 하늘에는 초생달이 외롭게 떠 있었고, 외딴 산골이란 것을 깨닭은 그는 와락 무서운 생각이 들어 온몸에서는 식은 땀이 비오듯 했다.   한편 동네 아이들로부터 귀득이가 실종됐다는 것을 전해 들은 부모는 이내 횃불을 들고 딸 아이를 찾아 나섰다. 얼마만큼 산골에 이르자 부모들은 “귀득아, 귀득아”하고 부르니 멀리서 딸애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이윽고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귀득이의 옷은 찍기우고 얼굴과 손에는 가시덤불에 할퀴어 생채기 투성이었다. 그러나 잃었던 딸애를 찾은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기쁘고 반가웠겠는가. 그리고 딸애가 겪었던 일에 대해 부모는 뭔가 짚이는 바가 있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어느덧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귀득이는 벌써 아리따운 처녀로 자라 방년(芳年) 18세가 된 것이다. 그리고 여느때 처럼 새봄을 맞았다. 그러나 그 일을 겪고난 후에는 산채캐러 한번도 가지 않았다. 봄은 차츰 무르익어 가는데 어깨에 내려앉는 햇살도 따사로왔고, 늦봄의 산들바람은 연두빛 풀잎과 나뭇잎들을 더 짙은 초록색으로 칠해대니 그녀의 가슴도 한껏 부풀어 올랐다.   봄비가 대지(大地)를 촉촉이 적셔주고는 개인 어느 날, 귀득이는 이웃 마을에 사는 윤씨(尹氏)성의 총각하고 백년가약(百年佳約)을 맺었다. 비록 집이 가난하여 떠돌이 소금장수를 하고 있었지만 마음씨 착하고 어진데다 독실하여 두 사람은 끔찍이도 사랑하였다.   따로 살림을 차려 새살림을 하게 된 이들 부부는 매양 행복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다던가, 좋은 일에는 마가 따른다고 했다. 신접살이 얼마 후 여름으로 접어들자 유난히도 비가 많이 오고 또 장마가 드는 바람에 남편이 소금장사를 나가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어렵사리 친정으로부터의 도움으로 근근히 보리죽일망정 끼니만은 이어갈 수가 있었다. 그러다가 장마가 걷히자 한시름을 놓게 되었으며, 남편은 다시 장사길에 나섰다.   그러던 어느날, 부인 귀득이는 문득 처녀 때 산속에서 겪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렇다! 낭군이 돌아오면 함께 의논해야지 하고 굳게 마음먹었다.   몇일이 지난 후 남편 윤씨가 장사에서 돌아왔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든 부인은 남편에게 귀엣말로 예전 소녀 때에 산속에서 겪고 들은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은 것이다.   “여보, 사람의 기수(氣數:스스로 돌아가는 그 자신의 길흉화복의 운수를 이름)를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우리 이집 팔고 대신 산속에서 노인과 동자가 말한 소나무 밑에 집을 짓고 살로 갑시다.” 하고 졸라대었다. 그러자 윤씨는 아내의 뜻밖의 이야기를 듣고 얼른 납득이 가지 않았음인지, “여보, 부자가 되는 것도 좋지만 내가 장사 나가면 외딴 산골에서 당신 혼자 무서워서 어떻게 견딜려고 해요” 하고 손을 내졌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왕 말을 끄집어 낸 부인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남편이 장사에서 돌아올 때마다 몇 번이고 졸라댔다. 그동안 점장이에게 몰래 가서 점도 쳐 보았는데, 천지신명에게 백일기도를 드리면 장차 큰 부자가 될 것이라는 점괘가 나온 터라 하루라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에 남편은 사랑하는 아내의 성화(成火)에 더 이상 배겨낼 길이 없어서 그대로 따르기로 하였다.   이렇게 해서 젊은 두 부부는 이윽고 외딴 골짜기에 집을 짓고 이사를 하게 되었다. 비록 초라한 집일망정 산짐승에 대비하여 울타리도 치고 제단도 마련하였다. 남편은 소금장사에 먼길도 마다않고 열심이었고, 아내는 우거진 덤불과 돌밭을 헤쳐 밭을 일구고 밤마다 도천축지(禱天祝地)하여 복을 비는 한편 장사에서 남편의 무사 귀가를 기원했다.   그러나 달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그동안 집에 찾아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리하여 어느덧 삼년째가 되는 섣달 그믐날, 이제 하루만 넘기면 이 곳에 이사온지 네 번째의 새해를 맞는 터였다. 그동안 친정부모께서 몇 차려 다녀 가셨지만 이미 지난해 돌아가셨으니 사고무친이 된 셈이었다.   일가(一家)붙이가 별로 없는 이들 부부는 그믐날이 되자 비록 어렵살이의 생활이지만 조상님에게 정성껏 차례를 올리기 위해 여러 가지 음식을 마련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해가 막 서산에 떨어져 어스레한 때에, “주인 계십니까” 하고 부르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 왔다. 젊은 아낙은 이 그믐날에 웬 손님일까 하고 얼른 밖을 내다보니, 사리문 밖에서는 한 사냥꾼이 활을 맨체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지 않은가.   그녀는 지나가는 과객임을 직감하고 곧 남편에게 의논하여 사냥꾼을 집안으로 맞아 드렸다. 그리고 저녁상을 푸짐하게 차려서 후하게 대접하는 한편, 잠자리도 따뜻하게 하여 그로 하여금 편히 쉬어갈 수 있도록 성의를 베풀었다. 처음으로 맞는 손님인데다 몇해 전 산속에서 겪었던 일이 언뜻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편 분에 넘친 대접에 몸둘바를 모른 사냥꾼은 젊은 두 부부가 그저 고맙기만 하였다. 어찌하여 이런 산골에 그것도 젊은 내외가 이 곳에서 살게 되었는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웬 일인지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여느 때 같으면 떠밀려 오는 잠속으로 벌써 묻혔을 것이지만 이날 따라 도시 그러하지를 못했다.   밤은 점점 깊어만 가는데 아무리 잠을 청해 보았으나 되려 정신만 맑아지는 것이었다. 시각은 자정(子正)쯤 지났을까였다. 이때 난데없이 ‘휙’ 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지 않은가. 순간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냥꾼 특유의 기민성으로 활과 살을 거머쥐었다. 바깥에서는 심상찮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짝 긴장한 그는 얼른 손가락에 침을 묻혀 문구멍을 뚫고 밖을 내다 보았다.   ‘아니, 이럴 수가?’   어두컴컴한 밤인데도 뚜렷히 보이는, 하얀 소복(素服)차림의 한 요괴(妖怪)가 막 싸리문을 열고 집 마당으로 어슬렁거리며 들어오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큰 방 앞까지 다가온 요괴는 “네 엿놈들, 누구 마음대로 내 땅을 함부로 밟고 다니며, 또 집까지 짓고 사느냐 말이다. 당장 요절내야지...”하는 것이었다.   문구멍을 통해 바깥 광경을 지켜본 그는 여우란 놈이 사람으로 둔갑(遁甲)하여 이 집 주인 내외를 해치려고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것은 요괴가 걸친 치맛자락 밑에 털복숭이 흰 꼬리를 잘레잘레 흔들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두 사람을 구해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이윽고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이 화살을 힘껏 당겼다.   그러자 화살을 맞은 요물은 ‘깨액...’하는 비명과 함께 흰 여우로 변하여 세 번이나 뒹굴며 재주를 부렸다. “요놈이, 이 요망스런 여시가...”하며 틈을 놓칠세라 다시 활을 당기니 이번에는 가슴패기를 맞고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생벼락을 맞은 여우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꼬꾸라져 앞발로 땅바닥을 후벼 파다가 세 번째의 화살을 맞고 피투성이가 된채 그제야 죽고 말았다.   자고(自古)로 여우란 놈은 꾀가 많고 교활하기 이를데 없는 짐승이라고는 하나 오늘 밤 이런 요사스러운, 그리고 사람으로 둔갑하는 여우도 다 있나 하고 그는 서둘러 문밖으로 나가 큰방 앞에 다가 섯다.   밤새에 이와 같은 소동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이상하다 싶어 방문을 열어보니 두 부부는 이불을 뒤집어 쓴채 벌벌 떨고 있지를 않는가. 그는 넌지시 웃으며 자초지종을 다 말하니, 그때서야 두 사람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연신 고마워했다.   날이 밝았다. 간밤에 한동안 기절할뻔 한 윤씨 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여우가 죽었다는 마당엘 가 보았다.   “아이고머니, 이게 웬 일인가”   그녀는 뜻밖의 광경을 보고 환성을 지른 것이다. 여우가 죽으면서 후벼판 자리에는 아침 햇살을 받은 금덩이가 돌덩이에 총총하게 박혀 눈부시게 번쩍이고 있질 않은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고 그녀는 자신의 허벅살을 살그머니 꼬집어보기도 하여 정녕 생시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오래도록 신령님께 치성들인 효험이 이제야 나타나는구나 생각하고 방을 향하여 남편에게 “여보, 금덩어리가 나왔어요” 하고 크게 외쳤다.   그러자 큰방의 남편 윤씨도, 작은방의 사냥꾼 손님도, 무슨 약속이나 한듯 동시에 마당으로 달려와 금덩어리를 확인하고선 어쩔줄을 몰라 했다.   세 사람은 얼싸안고 약속이나 한듯 “금덩이가 나왔다.”라고 춤추며 크게 외쳐대니, 온 골짜기에 메아리가 되어 울려퍼졌다. 그 후 윤씨 내 외는 금을 캐어 큰 부자가 되어 아들 딸 낳고 대대로 잘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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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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