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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지

● 연날리기   연띄우기는 우리나라 어느 지방에서나 마찬가지로 우리 고장에서도 연날리기를 즐겼다. 세시기(歲時記)와 같은 풍속지에는 음력 정초에 시작하여 대보름날 송액(送厄)의 뜻으로 멀리 띄워 보낸다고 했으나 사천 지방에서는 설날부터 날리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동지가 지나면 새해라고 여겨 연을 띄우는 곳도 있었다.   연은 남자들의 민속놀이는 물론이고 위에서 말한 제액(除厄)을 하는 신앙적 요소도 많은데 썰매타기, 이치기와 함께 겨울놀이의 대표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연띄우기 놀이의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상조에(三國史記列傳 金庾信 上條)보면, 선덕왕 16년(647) 비담(毘曇)의 무리가 반역할 즈음에 왕의 군사가 주둔하고 있는 월성(月城)에 별이 떨어지자 비담 등은 그곳에 반드시 유혈(流血)이 있을 것이라고 퍼뜨렸다. 이에 김유신은 곧 허수아비(偶人)를 만들어서 연에 달고 바람에 따라 하늘로 띄우니, 마치 떨어졌던 별이 도로 올라가는 듯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면, 신라시대에 이미 연이 있었다는 증좌(證左)이니 연의 역사는 퍽 오래된 것임을 알겠다.   연의 종류는 그 명칭부터가 지역마다 다르며, 그 모양이나 색깔도 각양각색이다. 때문에 가장 공통적인 것을 들면 대개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연의 재료는 한지(漢紙)와 대꼬챙인데. 구형(矩形)으로 된 방패연이 가장 일반적인 형이었고 마름모꼴에 꼬리를 단 가오리연, 반달처럼 생긴 연에 꼬리를 단 문어연이 사천지방에서 흔히 띄우던 연이었다.   방패연의 꼭지 모양에 따라 이름이 다르긴 했지만 방패연이 ‘참연’에 속했고, 가오리연이나 문어연은 생김새가 그와 비슷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따라서 방패연은 ‘큰 아이들’이 띄웠고, 가오리연이나 문어연은 ‘작은 아이’들이 그냥 실에 매달아 뛰어다니면서 띄우는 ‘장난감용 연’이었다.   연을 띄우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것이 얼레와 실이다. 얼레는 실을 감고 풀어주면 연의 묘기를 부릴 수 있는 것으로 흔히 ‘자새’라 불렀다. 자새에 실을 감다가 갑자기 풀어주면 연이 곤두박질을 하거나 움직이게 되는데 이때 필요한 방향으로 연의 머리가 향했을 때 되감아 주면 향했던 쪽으로 연이 움직였다. 연 싸움을 하거나 묘기를 부릴 때 이용했는데 이를 ‘얼레 먹인다’고 했다.   얼레는 모양에 따라 이름도 다양했다. ‘납작 자새’․‘사모 두 칸 자새’․‘사모 세 칸 자새’․‘육모 두 칸 자새’ 등이 있었다. 납작 자새는 이름 그대로 실이 감기는 부분의 모가 두 개로 납작하게 생긴 것으로 어린 아이들이 뛰어다니면서 노는 장난감이었다. ‘두 칸’․‘세 칸’의 뜻은 모와 모를 연결하는 것이 두 개 일때 ‘두 칸\', 세 개 일때 ‘세 칸’이라 했는데 그만큼 견고하고 고급으로 여겼다.   실은 가급적 가늘고 질긴 것이 고급이다. 실이 굵으면 무겁기 때문에 연을 띄울 대 처져서 연을 조종하기가 불편하며 실이 질기지 않으면 쉽게 끊어지기 때문이다. 연사(鳶糸)는 대개 무명실이나 명주실 또는 당사(唐糸), 인조실로 하는데 그 연줄에다가 사기나 유리를 보드랍게 갈고 헝겊에 걸러서 구레풀에 섞어 멕인다. 이를 사천 지방에서는 ‘사게 먹인다’고 했다.   구레풀이 고르게 묻도록 헝겊으로 실을 감싸는 일과 풀이 마르기 전에 유리가루를 묻히는 일 등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실이 끊어지면 이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매듭이 생겨 연싸움 때 지기 때문에 실 전체에 사게 먹이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취향에 따라 염색약을 풀 끓일 때 넣어 색실을 만들기도 한다.   연싸움은 상대 연의 실을 끊는 것이기 때문에 사게를 먹이는 것인데 스릴 만점을 동반한다.연싸움은 상대를 정해 하기도 하고 멀리 날려 연을 날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더라도 연만 보이면 싸움을 걸었다. 이 때 연을 하늘 높이 띄운 다음, 남의 연줄 위에서 내리 눌러 끊어버리는 편이 이기는 것이다.   그리고 연띄우는 기술이 필요하게 되는데, 남의 연줄 위로 오르기 위하여는 연을 상하좌우 자유자재로 날릴 줄 알아야 되므로 연 자체도 날카로와야 하지만, 그것보다는 얼레가 좋아야 할 뿐만 아니라 얼레를 조종하는 기술도 능해야 하며 또 연줄이 튼튼하며 날카로와야 한다.   최근에는 연날리기 대회가 민속경기의 하나로 정착되면서 심사 규정도 생겨났지만 옛날에는 단순히 날리는 재미와 남의 연을 끊어먹는 연싸움이 주종을 이루었다.   이 연날리기도 정월 대보름날이 되면 송액영복(送厄迎福)이란 글을 써서 날리거나 달집 태울 때 같이 태워 대보름 이후에는 날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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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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