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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지

4.상 례(喪禮)   우리의 통과의례(通過儀禮) 중 아직까지 옛 풍속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 상례(喪禮)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옛날에는 일가친척들이 앞장 서서 의식을 집행했지만 지금은 장의사에 맡기는 것이 다르긴 해도 의식 절차는 대부분 옛 풍속을 답습하고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상복(喪服)이 간소화 되었을 뿐 아니라 상여(喪輿)대신 장의차를 이용한다는 점일 것이다.   장례란 사망하는 순간부터 기제(忌祭)를 지낼 때까지의 과정을 말하며 하나하나 모두가 망자(亡者)에 대한 지극한 정성이 깃들여 있다. 상례 역시 백리부동풍(百里不同風)이라 하여 가문(家門)과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여기서는 일반적이면서 공통된 의식을 추려서 기술한다.      (1) 초종(初終)과 염습(殮襲)   부모가 임종(臨終)이 가까워오면 남자는 정침(正寢)에 여자는 내침(內寢)에 드시는데, 이것을 천거정침(遷居正寢)이라 한다. 대개 남녀를 가리지 않고 안방에 모시고 깨끗한 의복으로 갈아입힌다.   임종할 때 조용히 하고 부모의 손발을 잡고 숨을 거두는 것을 지켜본다. 이것을 종신(終身)이라고 한다. 자식된 도리로 종신을 하지 못하면 불효(不孝)라 생각하고 죽는 사람도 눈을 감지 못한다고 한다.   숨을 거두면 상주(喪主)는 머리를 풀고 호곡(號哭)한다. 시신의 입에는 쌀을 조금 떠서 넣는다. 시체가 부푸는 것을 초풍이라 하는데, 이 때 초풍을 막기 위하여 문풍지를 떼어 입이나 뱃구멍에 붙이기도 한다.   한편 밖에 나가 망인의 저고리를 흔들면서 지명(地名)과 성명을 부르고 ‘복복복’하고 외친 다음 지붕 위에 던진다. 이것을 고복(皐復) 혹은 복 부른다. 초혼(招魂)한다고 한다. 이 옷을 습(襲)이나 염(殮)에 사용되지 못하고, 입관 후에 내려 깨끗한 곳에 보관했다가 다른 유의(遺衣)와 함께 출상 후에 태운다.   그리고 사자밥을 안마당에 차린다. 저승 사자(死者)가 셋이라고 생각하여 상위에 밥 세 그릇, 짚신 세 켤레.돈 등을 놓는다. 본 면에서는 사자 대접을 잘해야 된다고 상 위에 짚신 세 켤레, 촛대 하나, 잔대 하나, 돈 등을 놓고 그 옆에 물 세 그릇, 소금 세 접시, 간장 세 종지를 놓는다고 한다. 소금과 간장을 놓는 이유는 사자들이 소금과 간장을 많이 먹으면 망자를 데리고 저승으로 갈 때에 갈증(渴症)이 나서 자주 물을 마시게 되니 그 틈에 망자가 쉬어 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상주들은 사자상 앞에 절을 세 번 하며 상의 음식은 마당의 동서남북을 향해 흩어 뿌리고 그릇은 엎어 놓는다.   상가에서는 상복(喪服)을 짓고 부고(訃告)를 돌리느라 바빠진다. 옛날에는 부음(訃音)과 고기(告期)를 따로 보냈으나 요즘은 한꺼번에 묶어 訃告 하나만 보낸다.   상주는 상복을 만들기 전에 이복(易服)이라 하여 흰 두루마기를 입히는데, 부친상(父親喪)에는 왼 소매를 모친상(母親喪)인 경우 오른 소매를 끼지 않는다. 시체 앞에 엎드려 망인의 친자(親子)는 3일 불식(不食)하고 기공(期功)이하의 친척은 감식(減食)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음 차례는 습(襲)이라 하여 시체를 목욕시키고, 소염(小殮)이라 하여 임시로 묶고 대렴(大斂)이라 하여 단단히 묶고 입관(入棺)한다. 원래 운명(殞命)한 당일에 습관하고 다음날에 소렴을 하고 삼 일만에 대렴을 하였으나 요사이는 이를 한번에 하여 염습(殮襲)한다. 혹은 염(殮)한다고 한다.   숯과 쑥을 띄운 물을 솜에 적셔 몸을 씻겨서 수의(壽衣)를 입힌다. 손바닥에는 누에고치를 대고 손에 주머니 모양의 악수(握手)를 씌운다. 손톱과 발톱을 깎고 흩어진 머리카락을 베로 만든 과발낭(瓜髮囊) 3개를 넣어 수의 안이나 버선 안에 넣는다. 콧구멍을 명주로 막고 삼베수건으로 얼굴을 덮는다. 그리고 참 종이를 꽈서 이어 그것으로 다리, 허리, 어깨 세 곳을 묶어 머리를 서쪽에 두고 병풍을 치고 문을 닫고 방 밖에 영좌(靈座)를 모신다. 상 위에는 향로∙술잔∙시접반∙촛불∙포 등을 차린다. 습이 끝나면 상주는 식사를 하되. 바가지에 밥을 담아 땅바닥에서 먹는다.   소렴(小殮)은 삼을 꽈서 어깨, 손과 허리, 발 세 곳을 묶는다.   대렴(大殮)은 시체를 다시 묶는 일이다. 우선 오동나무 숟가락으로 쌀을 세 숟가락 입에 떠 넣고 긴 명주로 끝을 세 쪽 내어 허리춤에서 양쪽을 매고 가운데를 묶는다. 다시 가로되게 일곱 매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묶는다. 풋솜을 명주로 싸서 턱을 괸다.   그 뒤 짚방석 세 개를 만들어 고이고, 문을 떼어 칠성판(七星板)이라 하여 구멍 7개를 내고, 그 위에 시체를 눕히고 명주 세 폭으로 된 홑이불을 덮는다.   관(棺)이 오면 관도배라 하여 관 안을 한지로 바르고 관이불을 깔고 시체를 넣고 빈 옆자리에 헌옷을 채우고 관을 덮는다. 뚜껑을 덮은 관을 광목으로 덮고 결관베(結棺布)로 묶는데, 아들과 며느리 수대로 묶는다.   입관 후에는 명정(銘旌)을 만들어 병풍에 걸고 동승결이라 하여 혼백(魂帛)을 매듭으로 만들어 혼백함에 넣는다. 이때 성복제(成服祭)를 지낸다.   시신이 놓인 방 앞에 큰상을 차리고 그 위에 굴건제복(屈巾祭服)등 상복 일체를 놓는다. 상복 입을 사람들이 모두 그 앞에서 절을 두 번 한 후에 상복을 입는다. 상복은 상주만 입고 4촌 이상은 백관이라 하여 두건만 쓴다. 상복을 다 입고나면 다시 서열대로 서서 상주가 술을 따라 올리며 지팡이를 양손에 맞잡아 들고 곡(哭)을 한 후에 절을 한다.      (2)출상(出喪)과 치장(治裝)   장지(葬地)와 장일(葬日)을 정하고 출상한다. 출상(出喪)은 3일장.5일장.9일장 등 죽은날부터 홀수 날에 행한다. 옛날에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좋은 장지를 구하려고 몇 개월 혹은 일이년씩 후에 매장을 한 경우도 있었다. 이럴 때에는 초분(草墳)을 하여 가로질러 놓은 서까래 위에 관을 놓는다. 이것은 남부 도서지방에서 많이 행해졌다.   관을 방에서 내어올때 세 번씩 들었다 놓았다 하거나 관으로 바가지를 깨거나 그릇을 깨뜨린다. 간혹 톱이나 도끼로 문지방에 조금 흠집을 내기도 한다.   관을 상여 앞에 놓거나 상여에 안치하고 발인제(發靷祭)를 지낸다.   상여꾼이 상여를 메고 세 번 올렸다 내렸다 하며 하직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다. 행렬은 명정·공포·운아·만장·영여·상여·상주·복인·문상객(銘旌·功布·雲亞·輓章·靈與·喪輿·喪主·服人·問喪客)의 순으로 간다. 행상을 할 때 망인의 친척이나 친구가 상여를 놓게 하고 영위 앞에 제상을 차리고 제를 지낸다. 이것을 노제(路祭) 혹은 노전(路奠)이라 한다. 상여꾼들이 상여를 메고 상여소리를 부르면서 가면 딸, 사위 등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가 상여에 노자돈이라고 걸어 준다. 특히 강을 건널 때에는 월강채라고 하여 돈을 걸어 주어야 건너간다.   상두꾼들의 운상(運喪)은 앞소리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진행되는데. 앞소리를 하는 사람은 요령(搖鈴)을 흔들어 요령소리와 앞소리를 박자삼아 움직인다.   앞소리꾼의 소리는 대개 회심곡(回心曲)이지만 더러는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지어내기도 한다.   지사(地師)와 상여꾼이 몇 사람 장지에 먼저 가서 산신제(山神祭)와 개토제(開土祭)를 지내고 굴토를 해둔다. 상여가 도착하면 상주들이 관을 운반하여 광 안에 내린다. 하관(下官)후 관 높이까지 흙을 담아 메우고 공포(功布)로 관을 닦은 뒤 명정(銘旌)을 위에 깐다. 상주는 순서대로 전원이 상복에 흙을 담아 세 번씩 흙을 놓고 관의 왼쪽에 운(雲).오른쪽에 아(亞)삽을 넣고 천개(天蓋)라 하여 나무로 관을 덮는다. 다 덮은 다음 다시 관의 머리 있는 쪽을 벗겨 제주제(題酒祭)를 지낸다. 이때 지방(紙榜)을 모시고 강신(降神)∙삼헌(三獻)∙고축(告祝)을 한다. 그리고 흙을 평지와 같이 메우고 평토제(平土祭)를 지낸다.   평토제가 끝나면 영좌의 신주와 혼백상자를 모시고 돌아와 빈소(殯所)에 안치한다.      (3)우제(虞祭)와 대소상(大小祥)   신주를 빈소에 모시고 반혼제(返魂祭)와 초우제(初虞祭)를 지낸다. 다음날 재우제(再虞祭)를 지내고 삼 일째 아침에 삼우제(三虞祭)를 지내고 성묘(省墓)를 한다.   그런데 요즘은 출상할 때 여자 상주도 장지까지 따라 가지만 우리 지방에서는 마당에서 작별하고 장지에는 따라 가지 않았다. 그래서 여자들은 ‘삼오날’에야 남자 상주들과 함께 산소를 찾아가는데 이 ‘삼오날’은 여자들에게 산소의 위치를 알리고 무덤이 제대로 만들어졌는지를 살피는데 큰 뜻이 있었다.   초상 후 3개월이 지나면 날을 잡아 졸곡제(卒哭祭)를 지내고 상주들이 수시로 하던 곡을 끝낸다. 그러나 영전에 조석으로 상식(上食)을 올리면서 곡을 계속한다.   일주기(一周忌)되는 날이 소상(小祥)이고, 만 2년이 되는 날이 대상(大祥)이다.   대소에는 제사를 지내고 조문객이 오고 그 조문객을 대접한다. 소상 이후는 조석곡(朝夕哭)을 그치고 대상 이후는 영좌를 없앤다. 즉 탈상(脫喪)을 한다. 빈소를 철거하고 혼백상자·지방·상복·지팡이 등을 불사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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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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