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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지

第1節 한국 초기 기독교 개사(基督敎槪史)   먼저 기독교(基督敎 : Christentum)란 이름은 본래<흐리스티아노스>란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원의는 <그리스도를 쫓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 기독교 신자나 기독교의 중심은 곧 그리스도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교훈을 중심으로 한다.    기독교는 A.D 635년경 경교(네스토리우스파)가 중국에 전래되었고,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당나라와의 외교관계가 활성화 되었을 때 전파되었을 것으로 짐작 되지만 이에 대한 고증과 사료가 빈약하여 상고할 길이 없다.    그 후 1627년과 1653년에 화란(和蘭) 사람이 표류하다가 조선에 억류되어 귀화 하거나 귀국하였는데, 이들 대부분은 기독교인들이라 한다. 이에 앞서 임진왜란(1592~1598)때 조선을 침공한 고시니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부대는 천주교 군사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이때 포로로 잡혀간 조선인들이 천주교에 입교하여 박해시(迫害時) 순교(殉敎)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 뒤 1636년 병자호란 때 소현세자(昭顯世子)가 인질로 청나라에 압송되었다. 소현세자는 그 곳에서 독일 신부와 교제하면서 서양 학문과 함께 천주교 교리를 배운 후 귀국하게 되지만 70일만에 세상을 떠나게 되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오랜 세월이 흘러 1783년(정조 7) 동지사(冬至使) 수행원 중 한 사람인 이승훈(李承薰)이 연경(燕京)에서 포르투갈 선교사로부터 영세(領洗)를 받았으니 그때가 1784년 2월이었다. 그 해 3월 서교서책(西敎書冊)을 가지고 귀국하여 선교(宣敎)한지 다섯 해가 지났을 때 교인수는 4천명을 헤아렸다고 한다. 하지만 당파싸움과 쇄국정책 등으로 인해 신해사옥(辛亥邪獄 : 1791년), 신유사옥(辛酉邪獄 : 1801년),기해사옥(己亥邪獄 : 1839년), 병인사옥(丙寅邪獄 : 1866년) 등 여러 수난을 겪게 되었다. 이러한 수난사를 통해 천주교가 한국에 끼친 영향을 높이 평가되기도 한다.    이처럼 질곡(桎梏)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한반도는 자연스럽게 종교적 공허(空虛)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른바 복음(福音)의 볼모지에 칼.구츠라프(Gutazaff)와 토마스(R.J. Thomas) 목사가 발을 들여 놓았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복음의 전파는 1864~1866년 동안 중국 이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드디어 1874년(혹은 1876년) 이응찬(李應贊)을 비롯한 한국인 청년들이 세례를 받게 되었다. 뒤이어 1879년(고종 16)에 서상륜(徐相崙)도 세례를 받고 이들 모두 한글성경 번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특히 서상륜은 성경 인쇄와 보급에 공헌하였는데, 1882년(고종 19)부터 권서인(혹은 매서인)신분으로 성경보급 및 전도(傳道)활동을 하였다. 사실상 1883년 최초의 한국교회인 소래교회나 1887년의 새문안교회는 서상륜을 중심한 한국인의 손에 의해 성립되어졌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복음의 기운은 가까운 일본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1882년 도일(渡日)한 이수정(李樹庭)에 의해서였다. 그도 기독교인인 쯔다(津田)라는 분을 통해 미국 선교사들과 접촉하게 되어 이듬 해인 1885년 5월에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후 선교사들의 격려에 힘입어 1884년 한문 성경에 한글 토를 단 성경을 번역, 발간하기에 이르렀다. 1885년(고종 22) 정식으로 선교사업을 시작한 언더우드(Underwood, horace G. 한국명 元杜尤), 아펜셀라(Appenzeller, Henry G.) 목사는 1887년 9월 처음으로 장로교(長老敎)의 새문안교회를 창립,후에 부산·평양·의주(義州)등지로 확대되어 전국에 교회가 설립되었다.    이들은 선교뿐만 아니라 교육사업이나 의료사업·사회사업에도 힘을 기울여 한국의 개화(開化)에 크게 이바지 하였으며, 특히 한국이 일본의 침략을 받자, 자주정신을 고취하고 직접 간접으로 독립운동에 협조하였다. 또한 1903년(광무 7)에는 한국기독교청년회(Y·M·C·A)가 발족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간략하게나마 더듬어 본 바대로 한국기독교회사는 세계의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 있으며, 세계 교회사와 맥을 같이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은 한국 교회사 속에 우리 고장, 정동면에 기독교가 전파된 시기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아주 늦은 시기인 1950년대 이후이고 보면 한국기독교사의 작은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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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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