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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지

다. 창효계서(彰孝契書)   중국 진(晋)나라 난정(蘭亭)에 수계(修契)와 당(唐)나라 향산(香山)에 빈붕(賓朋 : 동지)의 결사(結社)는 옛적 문장의 노선배들이 동지간에 감흥을 느끼며 회포를 푸는 그 교화가 썩지 않고 이제까지 내려옴은 사필(史筆)의 실마리로 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고장 가곡리(柯谷里)의 작고한 은진 송재윤공(恩津宋在潤公)은 문정공(文正公) 우암선생(尤庵先生)의 후손이라, 어릴 적부터 집이 가난하여 신혼정성(晨昏定省 : 부모에게 새벽에 문안드림과 저녁에 잠자리를 살피는 일)과 지체공양(志軆供養 : 부모의 뜻을 받들어 순종하며, 즐기는 음식을 드림)은 물론이요, 그 선친이 난치의 병에 걸려 물고기를 즐겨 연명이 되므로 몸소 물고기를 구득(求得)하여 생회(生膾)며 고음하여 드리기 일곱달이 지내서야 난치의 병이 나았다.   그리고 고비(考妣 : 아버지와 어머니)의 묘소가 이십리 넘는 곳에 있으나 매월 날을 정하여 성묘하되, 비바람과 눈이 오거나 아무리 더워도 정일(定日)에는 어김이 없었다. 죽을 때까지 효를 행한 자 이에 송효자(宋孝子)를 보았나니, 이웃과 고장이 다 효자라 일컫고 상찬(賞饌)을 드리고 찬양하였다. 이제와서 예를 살필때 이 효자와 같은 분이 거의 드물더라. 효자 죽은 뒤 그 아들 병길(柄吉)이 또한 효행이 있어 돌을 깎아 그 선고(先考)의 효행비(孝行碑)를 세우니 원근의 선비 많이 모여 축의금을 내는지라 병길이 이를 사양하니, 선비들은 그 뜻에 감탄하여 수계(修契)하자는 결론을 짓고 계안(契案)을 만드니 축의의 계금이 천여원(千餘圓)이나 되었다. 이로써 논 일두락(一斗落)을 사서 계답(契畓)을 삼고 해마다 춘절(春節)에 계회(契會)를 열고 서로 서로 찬조하며 오래도록 실행하여 불후(不朽)의 사필(史筆)되기를 본 계의 취지로 삼으니 계명은 창효(彰孝)라 일컫도다.    세재(歲在) 정해(丁亥 : 1947년) 10월 소춘절   영일(迎日) 정원용(鄭元鎔) 씀.

  진란정수계당향산결사고대문장제로여기동지감흥서양이기유풍여운흘금부후자재재사필지단야금부향내가곡리고처사은진인송재윤문정공우암선생지후자소가도불섬미취학문이어사친지도효행우독신혼정성지체공양막론당기선친난구지증소기연명자지시수어신자구득항계이진지지칠삭이쾌소차기고비묘소재이십여리정도매월정일불고풍우한서행왕묘소일심성소사사여생종신불위자금어송효자견지의린리향당개칭기효이이궤상찬부앙금고능여시자기희의기몰후기자병길역유효행벌석수비원근인사다유참집출연의자불계기수이합금천여원야병길불위사용추양어본지사림고사이불획감탄기인지의사심장연칙론기사용방책칙함왈불약수계가의고명왈창효계매치답일두락이연의제씨편입계원명부매년소춘지절이정계회호상찬조영년실행이전불후욕여사필동귀차계지본야재   세재정해 십월 소춘절 영일 정원용 서    ▪총계원수 이백명    ▪재산 답 사백평    ▪계회일 음 삼월십일         晋蘭亭修契唐香山結社古代文章諸老與其同志感興叙懹而其遺風餘韻迄今不朽者載在史筆之端也今夫鄕內柯谷里故處士恩津人宋在潤文正公尤庵先生之后自少家道不贍未就學問而於事親之道孝行尤篤晨昏定省志軆供養莫論當其先親難救之症所嗜延命者只是水魚身自求得恒繼而進之至七朔而快蘇且其考妣墓所在二十餘里程道每月定日不顧風雨寒署行往墓所一心省掃事死如生終身不違者今於宋孝子見之矣隣里鄕黨皆稱其孝而以饋賞饌俯仰今古能如是者幾稀矣旣沒後其子柄吉亦有孝行伐石竪碑遠近人士多有叅集出捐義者不計其數而合金千餘圓也柄吉不爲私用推讓於本地士林固辭而不獲感歎其人之意思深長然則論其使用方策則咸曰不若修契可矣故名曰彰孝契買置畓一斗落以捐義諸氏編入契員名簿每年小春之節以定契會互相贊助永年實行以傳不朽欲與史筆同歸此契之本也哉   歲在丁亥 十月 小春節 迎日 鄭元鎔 書    ▪總契員數 二百名    ▪財産 畓 四百坪    ▪契會日 陰 三月十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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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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