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정동면지



정동면지

第 3 節 성균관대 성전(成均館大 成殿)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유교(儒敎)는 생활의 규범을 제공하는 기본 틀이라 할수 있다. 서구에서 전해진 개신교(改新敎)와 천주교(天主敎) 신자들조차 일상생활에 서는 유교의 짙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우며 이런 점에서 유교는 한국인의 밑바탕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유교는 앞에서 이미 살핀 바와 같이 공자(B.C 551~B.C. 478)에 의해 만들어진 만큼 공자(孔子)의 탄생지인 곡부(曲阜 : 중국 산동성)를 비롯한 중요한 성지(聖地)들은 중국에 있다. 그러나 중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해 일찍이 유교가 전해져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던 우리나라에도 유교와 관련된 유적지는 적지않게 남아 있다. 한국의 유교 관련 유적 중 최고의 성지는 서울 명륜동(明倫洞)에 위치한 성균관(成均館), 그중에서도 공자를 비롯한 성현(聖賢)들을 모신 대성전(大成殿)이다. 따라서 전국의 각 향교(鄕校)에도 대성전이 있어 성현들을 모시고 있다.   유교는 예(禮)와 조상숭배를 중시하고 특히 교육과 교화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런 유교를 국가의 지도이념으로 채택했던 조선시대에 중앙교육기관이자 성현을 모시는 성균관이 신성시(神聖視)됐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이곳은 전국 유림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으며, 바로 옆에 각종 유림조직이 총 집결해 있어 이 같은 의미를 더해 주고 있다.   성균관에서는 조선왕조 5백년동안 선현(先賢)을 기리고 유교의 가르침을 따를 것을 다짐하는 국가적 행사들이 개최되어 왔다. 이 같은 전통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음력 매월 초하루와 보름 오전 10시에 분향(焚香)을 올리고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의 제례인 석전(釋奠)을 거행하고 있다.   조선왕조가 한양(漢陽)으로 수도를 옮긴 후인 태조 7년(1398) 건립된 성균관은 여러 차례 소실과 중수를 거듭했다. 건립 직후인 정종(定宗) 2년(1400)에 소실됐다가 재건되었으며, 임진왜란 때에 또 한 차례 소실된 것을 1601년부터 1606까지 문묘(文廟:성균관)의 중심건물인 대성전, 명륜당과 부속건물들을 연차적으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균관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은 앞서 언급한 대성전 곧 문묘이다. 이곳은 공자, 안자(顔子) 증자(曾子) 등 공자의 제자, 주자(朱子) 등 중국의 선현들과 안향, 이황, 이이 등 우리나라의 유현 18분을 모시고 있는 추모의 공간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곳은 명륜당(明倫堂)으로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장소이다. 이곳에서는 소과(小科)에 합격한 진사(進士), 생원(生員) 중에서 선발된 2백명의 학생이 기숙사인 동서재(東西齋)에서생활하면서 유교경전을 공부하며 대과(大科) 시험을 준비했다.  이 밖에 도서관인 존경각(尊經閣), 활과 화살을 보관하던 육일각(六一閣), 사무실인 정록청(正錄廳), 과거시험 장소로 이용되던 비천당(丕闡堂) 등이 유교성지 성균관의 건물을 이루고 있다.  성균관은 일명 반궁(泮宮)이라고도 했는데 이는 주대(周代), 제후(諸侯)의 국학(國學)하던 곳이란 뜻에서 유래되었따. 연산군의 폭정(暴政) 당시 한때 연희장으로 사용되는 등 수모를 겪었으며, 조선 후기에 이르러 민간교육기관인 서원(書院)이 번성하면서 그 역할이 위축되기도 하였다. 또 개항기(開港期) 이후에는 근대식 교육기관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1910년 국권을 상실하면서 경학원(經學院)으로 이름이 바뀌어 교육기능을 상실했다. 1930년대 들어 명륜학원을 부설기관으로 설립하면서 교육기능을 일부 회복했던 성균관은 광복 후 이를 계승한 성균관대학이 1965년 독립하면서 다시 교육기능을 떼어버리고 유교의 중심지 역할만을 담당하게 됐다.    오랫동안 역사적 유교의 성지로서 다소 빛바랜 느낌을 주던 성균관은 앞으로 다시 활기를 되찾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것은 유교가 종교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하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종헌(宗憲)을 마련, 대대적 개혁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1995년 11월 28일 열린 유림총회에서 유교개혁의 기본틀을 담은 사상 최초의 종헌으로 의결한데 이어 30일 재단법인 성균관 이사회를 열어 이를 확정했다. 이로써 유교는 윤리·도덕과 생활규범을 담은 전통사상 또는 학문의 성격에서 <믿고 따르는> 종교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했다.   1994년 4월 구성된 유교제도개혁특별위원회가 만든 유교 종헌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전폭적·전격적이다. 우선 종명을 <성균관 유교회>로 규정하고 종무담당기관으로서의 성균관, 유림의 결사체(結社體 : 신도조직)인 유교회(儒敎會), 유교재산 유지재단인 재단법인 성균관 등으로 각각의 기능을 명문화(明文化)함으로써 유림의 일체화를 꾀했다.   또 종단(宗團)을 대표하고 이들 3개 기구를 총괄하는 수장(首長)인 총전(總典)직을 신설, 종무회의 소집과 종무 조정권, 성균관장 유교회장 등 선출직에 대한 임명권을 행사토록 했다. 종헌은 또 공자를 종사(宗師)로 받들고 공자의 가르침을 담은 사서오경(四書五經)을 경전으로 삼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공자의 탄강(誕降)연도인 서기 551년을 공기(孔紀) 원년으로 삼고 종래에 음력 2월 및 8월 상정일(上丁日)에 지내온 춘추 석전(釋奠)은 공자의 기일(忌日)과 탄강일을 양력으로 환산, 5월 11일과 9월 28일에 봉행키로 하였다. 이는 성균관측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고 부를 정도로 획기적인 변화이며, 유교가 종교로서의 거듭나기 위한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


담당자
문화체육과 문화예술팀 055-831-2714
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만족도 조사 민원신청  시장에게 바란다  조직도  공지사항  공고/고시/시험 
페이지 수정요청열기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시나요?

평가: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