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소곡리 유적(所谷里 遺蹟) 장산리에서 사천강을 거슬러 올라 가노라면 강 오른편으로 길다랗게 들녘이 펼쳐진다. 이곳은 학촌리와 소곡리의 중심지로 들 가운데 고인돌이 무려 13개가 흩어져 있었는데, 역시 경지정리로 모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당시 조사된 고인돌의 규모가 가장 큰 것의 덮개돌 길이가 3m, 너비는 2m, 두께는 70cm였다고 한다. 이후 유구가 제거되면서 어떤 종류의 유물이 나왔는지에 대해 전한 바가 없다.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동쪽에 신월국민학교(지금은 폐교가 됨)가 있는데 그 뒤 원구상(圓丘上)에도 대형의 고인돌 1기가 놓여 있다. 그리고 신월(新月)마을 동쪽 끝나는 지점에는 포푸리숲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는 주민 구종재가 개간한 곳으로 개간 당시 20여개의 무덤방이 파괴되었다고 전한다. 주민들 말에 따르면 이 일대의 밭 가운데 무덤방(아마도 돌널무덤인 것으로 추정)이 무수히 깔려 있다고 하며 예전에는 돌칼, 화살촉 등의 유물을 수습하여 엿장수에게 팔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와같이 소곡리 일대는 지상에 드러나 있는 고인돌과 땅 속에 묻혀 있는 무덤 방 즉, 돌널(石棺墓) 및 돌깐무덤(敷石墓)이 많이 산재한 곳이다. 이들 무덤은 대개 강가에 많이 산재하는데 언젠가 홍수로 인하여 그 유구가 노출되어 1969년 8월 단국대학교(檀國大學校) 박물관의 조사팀이 내려와 모두 12기의 유구를 발굴하여 조사한 바 있다. 동 조사팀이 신월유적에서 발굴한 전체 12기 가운데 9기에서 확인된 각 무덤방의 규모를 표로서 보면 다음과 같다.
1호 | 2호 | 3호 | 6호 | 8호 | 9호 | 10호 | 11호 | 12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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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 | 돌덧널 | 돌널 | 돌덧널 | 돌덧널 | 돌덧널 | 돌널 | 돌덧널 | 돌덧널 | 돌널 |
길이(cm) | 180 | 140 | 190 | 170 | 140 | 70 | 120 | 140 | 110 |
너비(cm) | 80 | 34 | 82 | 52 | 60 | 25 | 55 | 50 | 40 |
깊이(cm) | 75 | 47 | 30 | 20 | 45 | 30 | 30 | 35 | 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