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1章 抗日獨立運動 지리적으로 일의대수(一衣帶水)의 일본과 근접한 사천의 역사는 여말선초(麗末鮮初)부터 왜구(倭寇)들의 숱한 침범을 받은 험난한 역사지만 그 속에서도 봉수대(烽燧臺)와 사천진(泗川鎭)의 설치, 그리고 청사(靑史)에 빛나는 사천해전(泗川海戰)의 승첩은 이곳이 호국(護國)의 방파제(防波堤) 로서의 보루(堡壘)였음을 말해주고있다. 그러나 계속된 일제(日帝)의 침략마수(侵略魔手)가 서서히 우리 땅에 침투되기 시작하자 이를 지키지 못하고 맞이한 경술국치(庚戌國恥)의 민족수난은 금수강산이 아물 수 없이 멍들고, 해맑았던 민족의 정기(精氣)가 크게 훼손(毁損)되었다. 이에 항일(抗日)기치를 들고 뜻있는 이들이 국내.외에서 항일독립투쟁에 앞다투어 나섬으로써 사천인(泗川人)의 가슴속에 흘러온 뜨거운 민족혼도 용암처럼 분출되어 크게 민족의 기개(氣槪)를 드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