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정동면지



정동면지

○ 潁隱齋記   영은처사금해금공시거어철성지부연동영천강상만복우사천지니구산하노천상택심소안거지지명역불우연야장수기중형수팔십이세사세지이십삼년임신사손장하합도주친축우묘지사우소거고야편지왈영은재조여청기기여금모병사절응수문연어장하의불가사야내안기상이서지왈공지선이가락혁벌지공십이대조류계선생이조정암선생도의지교재기묘사화록자후묘예세수청고공지호영은역이시야개공천품초인체간풍위기량굉수숙통경사제자방급의약음양지리막불구정사부모지효유가이통신명이감인심자월조전송위선탄성경가루세선묘의물요입이목거향교교임설람전여씨향약시월행강향중풍기비변교자약손자엄병지사이타일필립신양명상왈인당이의위리무노어재공몰후장하업의이의적재용수백억창립명신고등학교납우공사경기몽혜우천만영재기불간호모리향방대송기공장하왈오종왕고훈비사의소출야어시인개중공고앙불기석숙손목숙론삼불후일왈덕행이왈사업삼왈문장금공지덕행사업유가이불후천고자사재지건기도연재장사등사거사자모앙공평석풍헌이가칙언칙기단위운잉만세지향역가이세세도요리전인지루오호기이언재   임신 백로절 분성 허형 식         穎隱處士金海金公始居於鐵城之芙蓮洞穎川江上晩卜于泗川之尼丘山下魯川上宅心所安居地之名亦不偶然也藏修其中亨壽八十二歲謝世之二十三年壬申嗣孫章河合圖周親築寓墓之舍于所居故也扁之曰穎隱齋造余請其記余今耄病謝絶應酬文然於章河誼不可辭也乃按其狀而書之曰公之先以駕洛赫閥至公十二代祖柳溪先生以趙靜庵先生道義之交載己卯士禍錄自後苗裔世守淸高公之號穎隱亦以是也盖公天品超人軆幹豊偉器量宏邃夙通經史諸子傍及醫藥陰陽地理莫不究精事父母至孝有可以通神明而感人心者月朝傳頌衛先殫誠傾家累世先墓儀物耀入耳目居鄕校校任設籃田呂氏鄕約時月行講鄕中風紀丕變敎子若孫慈嚴幷至使以他日必立身揚名嘗曰人當以義爲利無奴於財公沒後章河業醫以義積財用數百億創立明新高等學校納于公使經紀蒙惠于千萬英才己不干毫毛利鄕邦大頌其功章河曰吾從王考訓非私意所出也於是人皆重公高仰不己昔叔孫穆叔論三不朽一曰德行二曰事業三曰文章今公之德行事業有可以不朽千古者斯齋之建豈徒然哉將使登斯居斯者慕仰公平昔風獻而柯則焉則豈但爲雲仍萬世之享亦可以洗世道澆漓湔認之陋嗚乎其易言哉   壬申 白露節 盆城 許泂 識         潁隱處士 金海 金公께서는 처음에 鐵城(固城)의 芙蓮洞 穎川江 위에 사시다가 만년에 사천의 尼丘山 아래에 있는 놀내(魯川) 위에 집을 정하셨다. 조용히 살고 싶어 마음속으로 찾던 마을의 이름이 孔子님의 고향과 비슷하니 이 또한 우연스럽지 않았다. 거기서 부지런히 몸과 마음을 닦으며 여든 두 살까지 사셨다. 세상을 떠나신지 스물 세 해가 된 임신년(1992)에 그분의 손자 章河가 여러 친척들과 의논하여 사시던 집터에 재실을 짓고 그 집 이름을 潁隱齋라 하고는 나에게 그 記文을 청했다. 나는 이제 너무 늙고 병들어 글지어 달라는 부탁을 사절하고 있었지만, 章河와는 깊은 친분이 있어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에 그 行狀을 살펴 이글을 짓는다. 이분의 선조는 駕洛國의 빛나는 겨레로서 12대조 되시는 柳溪선생께서 趙靜庵선생과 도의로 사귀신 탓에 己卯士禍錄에 올리게 되었다. 이 뒤로 그 후손들은 대대로 맑고 높은 節介를 지키며 살았는데, 이분의 호가 穎隱인 것도 바로 그런 뜻이다. 대저 이분은 타고난 인품이 여느 사람과 다르고 모습도 아름다우셨을 뿐 아니라 생각하시는 바가 넓고 깊었다. 일찍이 經史와 諸子百家를 통달하시고 곁드려 醫藥과 陰陽과 地理에까지 세밀히 공부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지극한 효도로써 부모를 모셨으니 가히 하늘의 밝음에 통하고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바가 있었다. 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정성을 다해 조상을 모시고 가산을 기우려 여러 선조들 산소를 다듬어 남의 耳目에 빛나게 했다.   향고의 책임을 맡았을 때에는 籃田의 呂氏鄕約을 세워 다달이 고을의 風俗을 바로잡아 가도록 강론하였으며, 아들과 손자를 가르치심에 자애와 엄격을 아울러 다함으로써 뒷날 반드시 몸을 세우고 이름을 떨치게 하였다. 일찍이 ‘사람은 마땅히 올바른 것에 마음을 두어야지 재물에 얽매여서는 안된다’고 하셨더니 이분이 돌아가신 뒤 章河가 한의원을 직업으로 하되 올바름으로써 재물을 쌓아 數百億을 드려 明新高等學校를 세워서는 나라에 바쳤다. 그리고는 千萬 英才가 골고루 그 혜택을 입게 하고 자신은 터럭만큼의 이익에도 간여하지 않았다. 따라서 온 고을 사람들이 그 공덕을 크게 칭송하였으나, 章河는 ‘우리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랐을 뿐 저의 뜻에서 나온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하고 늘 말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이분을 더욱 우러러 마지 않았다. 옛날에 叔孫穆이 이 세상에 썩지 않는 것 세 가지를 이야기하면서 첫째는, 德行이요 둘째는, 事業이요 셋째, 文章이라고 하였는데, 이제 이 분의 덕행과 사업이 진실로 千古에 썩지 않을 것이니 이 재실을 짓는 것이 어찌 헛된 일일까보냐! 앞으로 이 재실에 오르고 이 재실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분이 평소에 지니셨던 모습과 정신을 우러러 사모하여 본받게 될 것이다. 그러니 자손 만세토록 제사를 모시는 곳일 뿐 아니라 또한 때묻고 더러워진 세상의 길을 깨끗이 씻을 수 있게 할 것이다. 아아, 말하기는 참으로 쉬운지고!      壬甲年(1992)_ 白露節에 盆城 許 洞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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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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