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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지

○ 鶴山齋記   본 鶴山齋는 휘 有中을 비롯하여 누세 15위를 봉사하는 祠堂이다. 선조 有中은 본시 창원군 구산면에서 태어나시고 그곳에서 沒하셨는데, 일제 때 그 묘지가 一軍의 병영화로 인하여 강제 철거당하여 이곳 소곡리 객방의 馬谷언덕 酉坐에 이장하게 되었다.   安東權氏 문중이 입사천한지는 지금으로부터 약 170여년이 되고 移居하신 입향조는 휘 銓이니 有中의 둘째 아들이시다. 문중의 상계는 휘 辛을 시조로 하며 원래는 金姓으로 신라의 大姓이었다.   신라 말엽에 후백제의 지배하에 있던 古昌(安東)의 守令으로 있다가 甄萱이 신라 景哀王을 弑害한데 대해 幸이 분개하여 여러 사람과 모의하여 “萱은 의리로 보아 不共載天의 원수라, 어찌 王公에게 귀순하여 우리의 원수를 갚지 않으리오’ 하고 고려가 古昌에서 후백제군을 무찌르는데 가담하여 큰 공을 세웠다. 뒤에 고려 太祖가 기뻐하여 ‘幸은 능히 機敏에 밝고 權道를 안다’ 하고 이에 權氏를 사성하고 三韓壁上功臣 三重大匡太師亞父를 봉하고 고창군을 높여 안동부로 승격, 食邑으로 삼게했다.   顯祖 휘 漢功은 고려 충선왕 때의 권신으로 호는 一齋시다. 문과에 급제하여 直史館을 지내고, 뒤에 都僉議政丞에 이르고 醴泉府院君에 봉해졌는데, 시호는 文坦公이다. 저서는 一齋集을 남겼으며, 有中의 16대조시다. 휘 仲達은 공민왕 때 벼슬하에 推誠定策安社功臣 大匡密直司事에 이르고 花原君에 봉해졌고 시호는 忠憲이니 유중의 15대조시며, 휘 執德은 軍資監正을 지내니 安東權氏의 한 파조로서 역시 유중의 13대조가 되신다.   그동안 宗員 모두는 항상 齋屋建立의 의향은 대단하였으나 여러 가지 형편이 여의치 못해오다가 종중의 연로하신 漢龍, 丙鉉, 周壽 등 세분의 대희사를 기금으로하여 오랜 숙원이던 재실건립은 종원들의 협력으로 을축년(1985) 10월에 준공되었다. 이름하여 재호를 鶴山이라 하고 실로 선대의 뜻이 있어도 실행치 못한 일이 이제 오늘에 와서야 이루어졌다. 해마다 시향 때에는 각처의 후손들이 이 齋舍에 모여 위로는 제사에 치성드리며, 아래로는 한 근원을 같이한 일가가 서로 敦睦하게 되니 어찌 떳떳한 길이 아니겠는가.   그간 追遠報本의 先事에 그 誠을 다한 종원은 別板에 수단되고 특히 前記자외 采圭, 敬春, 良赫, 琮赫의 始終 성원에 힘입어 齋事의 건립이 조기 완공된데 대해 충심심으로 謝意를 表한다.      丙寅(1986) 10월 菊秋節   七世孫 命秀 董役하고 撰하다   八世孫 琮赫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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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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