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정동면지



정동면지

○ 繼承閣記   계승각오입사천선조고처사공제각야공휘무걸즉신라경명왕후예밀성대군지후태사공십이중조지장파야충효절의지명사석덕의행지굉유전승후계기이훤혁어라려지세이자이창상루천지래침이쇠미유시현회기역유수여공시우용사지란부자동옹피란전락래우삼백유여년간후승번연태지어수백유능련장접린길흉경조모상망야환난우척모상부야유래돈목유아문규희만근세태일변인심역수반격각수기직동자동이서자서산처중외자무유이단회야칙혼종지소이개한자무시불기야종손원재성유지인야불대제종지구재독자출력건선각식선세지유지미취자시내성어금일자야칭왈계승각례년세일제종지시각처종원재회우각근향화강돈목상이치여재양양지성하이서동원친친지은수후무궁칙사각지어오종고불존기중여시원재지탄력어추원지성고가흠야함이위현로어선사자약시기추권칙당포기미이천기성촉여이기기사여수불문의불감사략서전말도시원재용력성의숙불경앙기불영모재자오선시지칙균시일체자손여목지일근천지수지일원백파야숙근숙원숙친숙소연칙위오일반자손지도위선지책역숙중숙경재여작지공난귀수성지책역난이유재어후예범오후지래자역이금일종손원재지심위심수훼수리노지령광서불추어천고이오종지재회수성영유소어백의   단기 사이구삼년 중원 경자 추구월 상한   시문장 동선 근지         繼承閣吾入泗川先祖考處士公祭閣也公諱武傑卽新羅景明王後裔密城大君之后太師公十二中祖之長派也忠孝節義之名士碩德懿行之宏儒前承後繼旣已烜爀於羅麗之世而自爾滄桑屢遷之來寢以衰微有時顯晦其亦有數歟公時遇龍蛇之亂父子同擁避亂轉落來寓三百有餘年間後承蕃衍殆至於數百猶能連墻接隣吉凶慶弔母相忘也患難憂戚母相負也由來敦睦惟我門規噫挽近世態日變人心亦隨泮湨各隨其職東者東而西者西散處中外者無由以團會也則渾宗之所以慨恨者無時不己也宗孫沅在誠有志人也不待諸宗之鳩材獨自出力建先閣寔先世之有志未就者始乃成於今日者也稱曰繼承閣例年歲一祭宗之時各處宗員齋會于閣謹香火講敦睦上以致如在洋洋之誠下以敍同源親親之恩垂後無窮則斯閣之於吾宗顧不尊其重歟是沅在之殫力於追遠之誠固可欽也咸以謂賢勞於先事者若是其縋惓則當褒其美而闡其誠囑余以記其事余雖不文義不敢辭畧叙顚末都是沅在用力誠意孰不敬仰豈不永慕哉自吾先視之則均是一軆子孫如木之一根千枝水之一源百派也孰近孰遠孰親孰疎然則爲吾一般子孫之道爲先之責亦孰重孰輕哉與作之功難貴守成之責亦難而惟在於後裔凡吾後之來者亦以今日宗孫沅在之心爲心隨毁隨理魯之靈光庶不墜於千古而吾宗之齋會修省永有所於百矣   檀紀 四二九三年 中元 庚子 秋九月 上澣   時文長 東善 謹誌         계승각은 우리 入泗川 하신 선조 處士公의 제각이다. 공의 휘는 武傑이니 신라 景明王의 후예 密城大君의 뒤인 太師公의 12대 중조의 長派이다. 충효와 절의한 이름 높은 선비, 碩德과 懿行에 뛰어난 학자가 전후로 계승하여 이미 신라, 고려에 빛났더니, 시세의 변화(상전이 벽해됨)가 여러번 바귀어 晦顯(세상에 알려지지 않음과 세상에 나타남)됨은 그 또한 천지의 氣數(禍福의 운수를 일컬음)리라.   공이 임진란을 만나 부자가 서로 안고 끼고하여 피난와 이곳에 전락하여 寓居한지가 3백여 년이라, 그동안 후손이 蕃昌하여 거의 수백명 안팎이 담장을 접하고 이웃하면서 길흉사에 서로 경조를 잊지 않았다. 환란과 근심을 서로 도움이고 이웃하면서 길흉사에 서로 경조를 잊지 않았다. 환란과 근심을 서로 도움이 돈목의 유래로 오직 우리 朴門의 규범이라. 오호라! 근간의 세태 날로 변함으로 인심에 또한 泙湨(얼음이 풀려 물결치는대로 흐른다는 뜻)을 따라 각각 자기 직업조차 사방으로 흩어져 사유 없이는 회합이 되지 않은 즉, 이는 宗員 모두가 항상 개탄하는 바이다.   종송 沅在는 성실한 有志人이라 모든 종원에게 鳩財(돈이나 재물을 걷어 모음)치 않고, 혼자 스스로 부담하여 이 제작을 건립하니 실로 선세의 뜻이 있어도 실행치 못한 일이 이제 오늘날에 와서야 이루어졌다.   일컬어 閣號를 繼承이라 하고 해마다 시향 때에는 각처의 종원이 함께 이 제각에 회동하여 敬謹히 향화드리며, 睦族(동족끼리 서로 화목하게 지냄. 화목한 집안)의 道를 강의하여 위로는 제사에 치성하며 아래로는 한 근원을 같이한 일가의 親하는 은혜 후손에게 흘러 오래도록 다함이 없을 것인즉, 이 제각이 후손이 돌아볼 때 높고도 또한 중대하다. 이는 沅在의 追遠報本(지나간 먼 일을 그리워 하며 그 근본을 잊지 않고 갚는 일) 온 정신과 노력을 다한 정성을 진실로 欽歎하는 바이다.   종원들이 다 이르기를, 先事에 勞役한 분은 마땅히 그 미덕을 포창하며 그 誠을 闡揚(명백하게 들어 나타냄) 하기로 하여 나에게 기록할 것을 부탁하거늘, 나글 별로 깨치지 못했으나 감히 사양치 않고 대략 시종을 쓰노니, 도무지 이는 원재의 힘씀과 성의를 뉘라서 敬仰치 않으며 어찌 잊으랴. 우리 선조로 보면 다 같은 핏줄로 一根千枝와 물의 源流가 百波됨과 같음이라, 누구는 가깝고 구누는 멀며, 누구는 친하고 누구는 사이가 뜨다고 그런즉 일반 후손의 도리로 조선 위하는 책임 누가 무겁고 누가 가볍다 하랴.   興作(일어나기 시작함)하는 공도 어렵거니와 守成의 책임도 貴하게 여겨 沅在의 마음을 내마음 같이 하여 毁損 따라 補修해 나가면 恩惠로운 빛은 거의 千古를 유지할 것이며, 우리 宗員이 한자리에 모여 修成함이 무궁하리라.      庚子(1960년) 秋 9월 상순


담당자
문화체육과 문화예술팀 055-831-2714
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만족도 조사 민원신청  시장에게 바란다  조직도  공지사항  공고/고시/시험 
페이지 수정요청열기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시나요?

평가: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