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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지

○ 大養齋記文   춘암자상종아왕고간옹학이돈실아칙견칭어사우간일기족자판민군천설천리이래수치춘암서서왈오부명기구십년귀책참절흉화이세천견가지도괴로숙풍처인경구참사우민기상합모구재축일소재이여지편왈대양개취희이풍대정양지의이소거리명위풍정고야사우욕득일기어연원가이상목지원오자무사여련기정이감기의수위지기풍대야재이위명이동고성인계지왈물우의일중개일중칙측고가우연도우무익단당심존무일긍긍업업불사과성여일지당중언칙풍가장보의정양이부궁자야경왈개읍불개정개정지위물원심체유족이주사민양생지수고읍수개이정칙불개왕래지인개정기정이취양기박시제중지덕불치유궁의연춘암거시재처금일점당득구삼지중재풍위풍기패이이정칙정설불식이자개미위시용이불능유위단득수상계영이보기명기의풍지삼이명극이처비기시불득전기용여우굉지절연반기무작고무구의정지삼재하지상이막유급지자무이양물이물역불자지이위양불독사아심측행로지인역개흥차의수연대순지어뢰택부설지어암야장종기신무회후래사우연이요행이어이현하여언춘암우시재효효연무모호외자이기구사부자추구풍패절굉정설불식지의이연자락이대천하지청금지천견귀책적족동인증익이용옥기성자야사가위오당하불족위춘암우야   현묵돈상가평절 담주 전일효 기         春岩子嘗從我王考艮翁學以敦實雅飭見稱於士友間日其族子判敏君穿雪千里而來袖致春岩書書曰吾賦命崎嶇十年鬼責慘絶凶禍二歲天譴家至倒壞露宿風處人境俱慘士友憫其狀合謀鳩材築一小齋而與之扁曰大養盖取羲易豊大井養之義而所居里名爲豊井故也士友欲得一記於淵源家而常目之願吾子無辭余憐其情而感其意遂爲之記豊大也在易爲明而動故聖人戒之曰勿憂宜日中盖日中則昃故可憂然徒憂無益但當心存無逸兢兢業業不使過盛如日之當中焉則豊可莊保矣井養而不窮者也經曰改邑不改井盖井之爲物源深體裕足以周斯民養生之需故邑雖改而井則不改往來之人皆井其井而取養其博施濟衆之德不致有窮矣然春岩居是齋處今日占當得九三之衆在豊爲豊其旆而以井則井渫不食二者皆未爲時用而不能有爲但得守常戒盈而保其明己矣豊之三以明極而處非其時不得展其用如右肱之折然反己無怍故無咎矣井之三在下之上而莫有汲之者無以養物而物亦不資之以爲養不獨使我心惻行路之人亦皆興嗟矣雖然大舜之於雷澤傅說之於巖野將終其身無悔後來事偶然爾僥倖爾於二賢何與焉春岩于是齋囂囂然無慕乎外者以其舊師傅者推究豊旆折肱井渫不食之義怡然自樂而待天下之淸今之天譴鬼責適足動忍增益而庸玉其成者也斯可爲吾黨賀不足爲春岩憂也   玄黙敦祥嘉平節 潭州 田鎰孝 記      春岩公이 일찍이 나의 조부 艮齋先生 딸 학문하야 敦實하며 雅飭(문장을 바르게 갖춤)함으로서 선비 벗으로부터 칭찬함을 보았다. 어느날 그의 族姪 判敏君이 눈을 밟고 천리길을 달려와서 소매에서 春岩의 서찰을 전하니 그 서찰에 가로대, “내가 타고난 운명이 기구하여 10년동안 귀신의 침노로 아들과 손자의 꺾임을 당하고, 두 해에 걸쳐 태풍으로 가옥이 무너져 하늘을 이불삼고 땅을 자리하는 삶이라 사람과 환경이 함께 비참하니 보는 사람마다 나의 처지를 불쌍히 여겨 서로 의논하여 조그마한 齋屋을 하나 지어주매, 재호를 大養이라 하였다. 대개 周易에서 취한 豊은 크고 길다는 大이고, 井은 기르고 자라게 하는 養이란 뜻으로 내가 사는 마을 이름이 豊井인 까닭인데, 벗들이 齋記를 淵源家(사물의 근원이 떳떳한 집안. 여기서는 학덕이 높고 이름난 집을 말함)에 정하기에 떳떳이 부탁하니 원컨대 莊村은 사양하지 마시라.”고 하였다.   내가 그 情狀은을 안타깝게 여기며 그 뜻에 감동하여 곧 재기를 쓰노니, 豊은 大也라 주역에는 밝음(明)이 되어 운동하는 고로 聖人이 경계하여 가로되, ‘마땅히 오정때(日中)됨을 근심하지 말지어다.“ 하였다. 정오를 지내면 해 기우는 고로 가히 근심이 되나 한갖 근심만으로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으며 다만 마땅히 마음을 安逸치 않고 항상 조심하며 삼가하여 태양의 기움을 미리 염려한다면 豊을 가히 굳게 보장할 것이며, 井은 동식물의 젖줄로서 기름(養)이 무궁무진 하므로 경서에 가로되, ‘邑은 옮기되 정은 그대로 깊고 바탕이 넉넉함으로써 동식물 養生의 자료가 됨인즉, 邑은 비록 옮기나 정은 그대로 둠이 오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그 샘물을 마시게 됨으로 널리 베풀 뿐 아니라 衆生을 건져주는 혜(德) 무궁하다 할 것이다.   春岩이 이 재실에 살며 오늘에 이르러 점치건데, 九三(주역에 나오는 말로 수가 많을때 씀)의 衆을 얻어 豊에 있어서는 그 큰 깃발을 날릴 것과, 井인즉 井渫不食의 두 가지는 이때에 쓰이지는 않으나 다만 떳떳이 지켜서 正午(日中)때를 조심하여 그 밝음을 보존할 다름이며, 풍의 셋에는 明極하여 쓰일 때가 아니라서 쓰임을 펼치지 못함이 오른쪽 팔이 부러짐과 같으나 반성하여 부끄러움이 없음으로 허물되지 않으며, 井의 셋은 下之上에 있어서 샘물을 퍼내는 사람 없어 양육되지 않더라도 物은 샘물 아니면 자라날 수가 없다. 홀로 春岩의 마음만이 感愴이 아니라 길가는 나그네도 또한 다 가엾음을 말 하리라. 비록 이렇다 하더라도 舜임금이 雷澤에 살며, 傳說이란 이는 岩野에 있을 때에 장차 일생을 마치더라도 후회하지 않으려 했는데, 뒤에 각각 제왕이 되고 재상이 되었음은 우연한 일이요 생각지도 않은 뜻밖의 다행이라 제왕과 재상이 무슨 관여되리오. 春岩이 이 재실에 살면서 속마음 튼튼히 바깥 일은 생각없이 하며 옛적 스승의 推究한 豊旆(큰 깃발 날린다는 뜻)와 정설불식의 의의를 기꺼이 즐겁게 천하의 고요(淸)를 기다리시라. 지난 하느님의 怒하심, 귀신의 재앙이 도리어 勳忍 增益하여 떳떳이 玉成을 이루리니 이는 가히 우리 선비들의 賀禮할 바요 넉넉히 春岩이 걱정할 바 아닐 것이다.   壬午年(1942) 12月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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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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