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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지

○ 高麗慶尙道按廉使全州崔氏諱龍生墓壇碑   사수현동오리유촌왈풍정동고아보선조고려경상도안렴사부군휘용생의리지장재차이민좌운개니구지산서출대간좌포이우환중유일록퇴하반거위풍정지주봉봉우족고묘수십조동역상망이기제일위향곤쌍분여아보상부고전의이필시공묘기우환지내심입정심요이기동부갱개광평행우천지점공유허곡지전호장령운습공관함식지금칠백년언자상단단불이야아최위전주구족비조휘아사고려충숙왕조위지문하시중평장사봉완산군시문성공세대면막자출불세고보이성위시개구양자소위이기세원이신소불지야문성공사자문장환업구경동조우공서거일배태선렬역등문과천성강직렴정자수검약총명절륜전습시서안려사왈충정이년경인이지평최룡생경상도안렴사룡생질관사지호총상국류독동민기악이시국인어향사주원지첩목아소룡생어왕급공주이금유겸대지어시공류어사천수설가래은종신불복출금령족개위공지후생졸년월급배위씨족개불가개유남전우판도정랑녀위보성군오몽을처손택위전증손장사비본조문과사복사정차사지무후차사강사정생이자자경현감증판사득경군수증형판사강일자종복문과정언증현이하유명석응교증도승지수지형조참판응용판관증병의기필부제학시정간쟁증리판시의민균수사시의숙강판관훈익찬증좌승지탁완해군시효헌산휘사직수강참판광벽위최현문장절행사불절서대소과갑기육십사원포정병십칠련주첩벽중야이병울역부군지이령덕완명수유후승이미상체야근안인재선생현시왈오선증시사빈인고사분유열기자도섭매독차회황처창첩한천맥지황무이고사지무가계연절의장령지허금칙위고로지상전미담이기여풍정지천동학상접련거이차장기지불감위지필불연야단심목지절징종무득이협귀칙불도허묘진망지위동심욕추성치의어세일지제역불득당례어시립운지성기이우수세의공인순천취장보사지무일내신유동종의시완후손정규제인순공벌석월삼년갑자십월준공이고성위세천지의장이모속사풍비전기세덕오호선조이청명직도광요어사의불가이민회이제손백세지진심진성경이성취선고지미황이이익창자역천의야   이십일 세손 도섭 근식   이십삼 세손 락권 개수   이십사 세손 재효 근서         泗水縣東五里有村曰豊井洞攷我譜先祖高麗慶尙道按廉使府君諱龍生衣履之藏在此而民坐云蓋尼丘之山西出大幹左抱而右環中有一麓隤下盤據爲豊井之主峯峯右族古墓數十垗同域相望而其第一位向坤雙墳與我譜相符故傳疑以必是公墓其右環之內尋入箐深窈而其洞府更開曠平洐又薦指點公遺墟谷之傳號掌令云襲公官啣式至今七百年言者尙斷斷不已也我崔爲全州舊族鼻組諱阿仕高麗忠肅王朝位至門下侍中平章事封完山君諡文成公世代綿邈自出不世故譜以成爲始盖歐陽子所謂以其世遠而愼所不知也文成公四子文章宦業俱警動朝右公序居一胚胎先烈亦登文科天性剛直廉正自守儉約聰明絶倫傳習詩書按麗史曰忠定二年庚寅以持平崔龍生慶尙道按廉使龍生嫉官寺之怙寵上國流毒東民其惡以示國人御香使朱元之帖木兒訴龍生於王及公主以金有謙代之於是公流於泗川遂挈家來隱終身不復出金嶺族皆爲公之后生卒年月及配位氏族皆不可改有男田雨版圖正郞女爲寶城君吳蒙乙妻孫澤衛典曾孫長斯泌本朝文科司僕寺正次斯沚無后次斯江寺正生二子子涇縣監贈判事得涇郡守贈刑判斯江一子宗復文科正言曾玄以下有名碩應敎贈都承旨水智刑曹叅判應龍判官贈兵議琦弼副提學諡定簡噌贈吏判諡義敏均水使諡義肅堈判官塤翊贊贈左承旨濯完海君諡孝憲山輝司直秀岡叅判光璧爲最顯文章節行史不絶書大小科甲幾六十祠院褒㫌幷十七聯珠疊璧重也而炳蔚亦府君之以令德完名垂裕後承以未嘗替也謹按訒齋先生晛詩曰吾先曾是泗濱人古社枌楡閱幾者道燮每讀此徊徨悽愴輒恨阡陌之荒蕪而故事之無可稽然窃意掌令之墟今則爲故老之相傳美談而其與豊井之阡洞壑相接連居以此葬基地不敢謂之必不然也但深目之蕝徵終無得以恊龜則不徒墟墓蓁莽之爲動心欲推誠致懿於歲一之祭亦不得當禮於是立抎之誠起而又數世矣恐因循遷就將報祀之無日迺辛酉冬宗議始完後孫正奎諸人詢工伐石越三年甲子十月竣工而告成爲歲薦之儀將以謀屬事豊碑鐫記世德嗚乎先祖以淸名直道光耀於史宜不可以泯晦而諸孫百世之盡心盡誠竟以成就先故之未遑以而益彰者亦天意也   二十一 世孫 道燮 謹識   二十三 世孫 洛權 改竪   二十四 世孫 載孝 謹書      泗川 고을의 동쪽 5리쯤에 마을이 있으니 이르기를 풍정동이라 한다. 우리의 족보를 상고해 보면, 고려 때의 선조 慶尙道按廉使 府君 휘 龍生께서 거처하여 사신 곳이 이곳이라 하였다. 대개 尼丘山과 마주한 서쪽으로 大幹이 뻗어 左抱石環한 가운데 한 기슭 隤下에 반석이 받쳤으니 풍정동의 主峯이라. 봉우리밑 오른편을 휘돌면 古墳 수십기가 성과같이 서로 바라보매, 그 첫 무덤의 艮坐 쌍분이 우리 족보와 서로 부합하는 까닭에, 전하는 대로 반드시 공의 묘임을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 오른편을 둘러 안쪽으로 바구니 같은 곳을 찾아들면 깊고 고용한 洞天이 다시 열려 밝고 널따란 평지가 펼쳐졌으며, 또 이곳을 가르켜 공의 遺墟谷이라 전하는데, 掌令洞이라 부른데서 연유한다.   공께서 관직을 받들어 바르게 다스려 온지 거금 7백년이라 말하는 것은 거의 단단히 잘라서 말할 수는 없다. 우리 崔姓이 全州를 관향으로 한 시조의 휘는 阿이니, 고려 충숙왕 때의 벼슬이 門下侍中 平章事며 完山君을 봉하니 시호는 文成公이다. 세대가 매우 멀어서 스스로 세상에 들어나지는 않았으나 보첩에는 시조라 이룩되니, 대개 歌陽子가 말하는 바 그 세대가 멀면 삼가 알지 못하는 바이다. 문성공의 넷째 아들 文章은 벼슬한 업적이 매우 두드러져 조정을 몹시 놀라게 했는데, 공은 序居에 한 先烈로서 배태되었다.   또한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천성이 강직하고 겸전하며 검약함을 지키고 총명함이 남달라 글을 전수하여 익혔다. 살피어 보건데 고려사에 이르기를, “충정왕 2년(1350) 경인에 持平 崔龍生을 경상도 안렴사로 삼았는데, 용생은 內侍의 무리들이 상국(元나라)의 총애를 받았음을 믿고 우리 백성들에게 害毒을 끼치고 있는 것을 미워하여, 그들의 죄악을 榜書(여러 사람에게 알리기 위하여 길이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써붙 이는 글)를 붙여서 나라안의 모든 백성에게 보였는데, 御香使(원나라에서 온 사신)로 온 내시 朱元之帖木兒가 왕과 공주에게 호소하여 龍生 대신 金有謙으로 (안렴사를) 바꾸었다.”라 씌여 있다. 이에 공이 사천으로 유배되니 가족을 이끌고 이곳에 와서 종신토록 숨어살면서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아니하였다. 현재 영남에서 사는 우리 종족은 모두 공의 후손들로서, 生卒에 대한 연월과 배위의 씨족을 다 상고할 수 없으며, 아들을 두었으니 田雨라 版圖正郞하고 딸은 寶城君 吳蒙乙의 아내이다...... 光璧(조선 정조 때의 문신, 학자)이 가장 뛰어나 문장과 節行의 글이 사서에 끊이지 않았고, 대소과거에 급제한 분이 거의 60을 헤아려 祠院에 褒㫌하고 아울러 열일곱 가지의 聯珠詩(칠언절구로 된 唐詩의 잘 된 것만 가려서 모은 시집)가 둥근 옥벽에 걸렸으니 누세의 빛남이 가득하고, 또한 府君의 덕으로 하여금 명성이 완연하여 그 넉넉함이 후손에게까지 오래도록 시들지 않고 있다.   삼가 살피건데 認齋선생의 睍詩에 이르기를, ‘우리 祖先은 일찍부터 泗濱(사천을 두고 일컫는 말)가의 사람인데, 옛 枌楡(고향이란 뜻. 느릅나무로써 社神을 삼는 데서 온말)를 둘러 본 자 몇이나 되느냐’고 하였다. 道燮이 매양 이를 읽고 마음이 徊徨(정처없이 이리저리 떠돌아 다님)하여 몹시 구슬픔을 품어 오다가 고득, 阡陌(밭둑길. 동서를 陌, 남북을 阡이라 함)이 荒蕪하고 고사를 상고할 길이 없음을 몹시 한탄만 했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윽한 掌令의 옛 터에는 지금까지 고로의 미담이 전하여 내려오고 있고, 그 풍정의 밭둑길과 골이 상접하여 연달은 곳에 살은 후 그 땅에 장사 지냈을 것이니 감히 반드시 그러하지 않다고는 못할 것이다. 다만 깊은 눈으로 蕝徵(때를 묶어 뫼의 좌우를 구하는 예)이 끝내 보람 없음으로 달리 恊龜(거북을 이용하여 점을 친다는 뜻)로써 한다면 한갓 무성한 풀섶의 허묘라 할지라도 마음을 움직이게 할 것이니, 推誠하고 致懿하여 해마다 한 번 모시고저 함이다.   또 부득이 예를 당하여 이곳에서 立抎(잃어버린 것을 바로 세우는 일)의 정성이 일게된 지가 또한 여러 代이다. 두렵웁건데, 因循(옛 습관을 지키고 버리지 않음)하여 조화롭게 순응코저 함은 장차 報祀할 날이 없겠기에 지난 辛酉年(1921년) 겨울 宗議가 비로소 완결되어, 후손 正奎가 여러 사람에게 물어 돌을 깎아 만들며 3년이 지난 甲子(1924년) 10월에 준공하여 告成하기에 이르렀다. 해마다 받드는 제의는 장차 일에 따라 꾸미되, 서둘러 豊碑에 世德을 새겨서 기록한다. 아! 선조께서 淸名(마음이 맑고 욕심이 없어 행실이 바르다는 평판)과 곧은 길을 걸어서 역사에 빛나니, 마땅히 泯滅될 수 없으므로 제손 백대에 마음을 다 기울여 정성을 다함이 마침내 先故의 未遑(미처 겨를을 내지 못함)함을 성취하였슴이니, 더욱 밝게 드러냄은 또한 하늘의 뜻이다. (玉山齋 後園 所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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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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