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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지

• 안동임씨(安東林氏) 진주파(晋州派) (예수)   임씨(林氏)는 우리나라 성씨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씨족의 하나로 1985년도 인구조사에 의하면 총 15만9천여 호로 집계되었으며, 본관 수도 90여 본에 달해 국내 성씨 중 10위권 안에 드는 대성이다.   범임씨(汎林氏)의 도시조는 학사공(學士公) 임팔급(林八及)으로 전해온다. 그는 일찍이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건너왔다는데, 그의 동래설(東來說)에 대하여는 당나라 말엽 문종 때 한림학사(翰林學士)로서 간신들의 참소를 받아 동료 일곱 학사와 함께 우리나라 팽성(彭城 : 현 경기도 평택군)으로 와 살면서 신라조에 벼슬했다는 설과, 본디 은(殷)나라의 태보(太保)로서 지금으로부터 3천여 년전에 기자조선(箕子朝鮮)으로 망명해 왔다는 두 설이 전하고 있다.   임씨 종친회 측에서는 전자의 설은 전후 사실(史實)에 모순이 많을 뿐 아니라 당나라 말엽이면 신라의 통일시대이므로 그 이전인 신라 지마왕(祗摩王) 때(2세기 초엽) 아찬(阿湌) 벼슬을 지낸 임권(林權)이나 진덕여왕 때(7세기 중엽) 각간(角干) 벼슬을 지낸 임종(林宗) 등 고대사에서 나타나는 임씨 선대 인물들의 역사적 연대를 합리화시킬 수 없다는 이유로 후자의 설을 지지하고 있다.   안동임씨(安東林氏)는 신라 때 국자대의(國子大宜)로 금동군(錦東君)에 봉해진 휘(諱) 동방(彤芳)을 시조(始祖)로 하고 그 후손이 안동에서 세거(世居)하였기 때문에 본관을 안동(安東)으로 하였다. 시조의 묘소(墓所)는 경상북도 경주 천을산(天乙山)에 소재하고 있다.   중조(中祖) 휘 세(世)는 고려 충렬왕 때 사마(司馬)를 지낸 시조로부터 51세손인 의일(懿一)의 셋째 아들로서 충성왕 때 역시 사마로 발신하여 충목왕 때에 이르러 복성군(福城君)에 봉해지고 뒤에 판도판서(版圖判書)로 추봉되었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복성군을 기1세로 하여 중시조로 받들고 있으며, 묘소는 평택(平澤) 연석산(燕石山) 계원(癸原)이다.   중조의 4세손 박(樸)은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자는 원질(元質)이다. 1360년(공민왕 9) 문과에 급제하여 개성참군사(開城叅軍事)를 거쳐 다음해 홍건적(紅巾賊)에게 개성이 함락되자 병법에 정통하여 원수(元帥) 김득배(金得培)의 참모로 전략을 세웠으며, 왕이 남으로 피난할 때 사적(史籍), 예서(禮書) 등을 땅에 묻었다가 난이 평정된 후 파내어 그 일부를 보전했다. 1363년(공민왕 12) 이공수(李公遂)를 수행하여 서장관(書狀官)으로 원나라에 갔을 때 덕흥군(德興君)을 고려 왕으로 세운 원제(元帝)로부터 그를 받들고 고려에 들어가라는 명을 받았으나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아 후에 귀국하여 중서사인(中書舍人)으로 특진되었다. 1367년(공민왕 6) 전교령(典校令)으로서 제주선무사(濟州宣撫使)가 되어 이어 성균제주(成均祭酒)로서 성균관의 개조를 추진했다. 대사성(大司成), 판전교사사(判典校寺事) 등을 지냈다. 공민왕이 후사(後嗣)없이 시해된 후 원나라에서 심왕(瀋王)의 후손을 왕으로 세워 고려로 들여 보내려고 하자 우왕(禑王)을 옹립한 이인임(李仁任) 등은 우왕이 바로 공민왕의 맏아들이란 글을 꾸며 백관(百官)의 서명을 받아 보냈다. 이 때 박상충(朴尙衷), 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이에 서명하지 않아 삭직(削職)되고 길안(吉安), 무안(務安)에 유배되어 일생을 마쳤다.   15세손 천손(天遜)은 조선 중종 때 내금위 전력부위(內禁衛展力副尉)의 비관(卑官)이었고, 아들 희서(熙瑞)는 자헌대부지중추부사(資憲大夫知中樞府事)에 올랐으며, 손자 응복(應福)은 임진왜란 때 최천숙(崔天淑)과 더불어 왜적을 무찔러 그 공으로 군자감 첨정(軍資監僉正)이란 직함을 받았다.   25세손 언대(彦大 : 자 士由)께서 조향(祖鄕)인 안동에서 남으로 내려와 진주에서 시거(始居)하였으니 이분께서 진주파조(晋州派祖)시다.   입향조(入鄕祖)는 파조(彦大公)의 세아들 중 셋째 아들이신 시경(時慶 : 자 乃元) 할아버지께서 창릉참봉(昌陵叅奉)을 지내고 증가선대부 호조참판(贈嘉善大夫戶曹叅判)의 직함을 받았으며, 1900년대 초 입사천(入泗川), 산자수려(山柴水麗)하고 유서깊은 서낭당산 기슭 예수동(禮樹洞)에 정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묘 예수리 공동산.   이후 후예들의 면면(面面)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28세손 한엽(漢燁) : 정동면 사무소 서기 역임 • 28세손 한상(漢相) : 호 성재(醒齋), 문중(門中, 禮樹)대표. 진양, 사천군농회 축산 계장 역임, 국악협회 사천지회장, 사천시우회, 사천문화원 이사 사천향교 전교(‘91~’92) 등을 역임하여 지역사회 발전은 물론 향토문화 진작에 많은 기여를 하였고, 현재 사천동 물병원장(공의)을 맡고 있다. • 29세손 영재(英在) : 한국마사회 제주보건소장, 농학박사 학위 취득 • 29세손 영갑(英甲) : 진주 자유시장 내 민속식품공장 대표 • 29세손 영길(英吉) : PSB(부산방송국) 무선통신 2급 기사 • 29세손 정상(定尙): 부산 정상목형공장 대표 • 29세손 철상(哲相) : 사천 남한건설(주) 건축기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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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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