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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지

• 진주정씨(晋州鄭氏) 은열공후(殷烈公后) 예의판서공파(禮儀判書公派) (수청)   진주정씨(晋州鄭氏) 가운데 한 파(派)인 시조(始祖) 휘 자우(子友 : 호 鳳山)는 고려조에서 호장(戶長)을 지냈다. 호장이란 고려 태조가 후삼국(後三國)을 통일한 뒤 각 지방에서 세력을 펴고있던 성주(城主)나 호족(豪族)들을 포섭하는 정책으로 그들에게 호장(戶長)이란 향직(鄕職)을 주어 그 지방을 자치적으로 다스리게 했던 제도였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진주정씨는 당시 지방에서 크게 세력을 폈던 호족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시조의 6세손 신열(臣烈 : 호 官亭, 시호 殷烈)은 전술한 바 고려 현종 때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거친 후 병부상서(兵部尙書)에 올라 글안(契丹)의 친입을 격퇴시킨 공으로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올라 공으로 진양부원군(晋陽府院君)에 봉해졌다. 성리학(性理學)을 강구하였으며, 불교를 배척하였다.   시조의 8세손 진경(晋卿)은 은열공 신열(臣烈)의 손자로 고려 때 좌우위보승(左右衛保承) 중랑장(中郞將)을 역임하고 광정대부(匡靖大夫) 첨의부찬성사(僉議府贊成事)에 추증되었는데, 후손들은 이분을 중조 1세로 받들고 있다.   중조 2세 임덕(任德)은 지선주사(知善州事)를 거쳐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하였으며, 3세 유(愈)는 1372년(공민왕 21) 동생 손(愻)과 함께 아버지(任德)를 따라 하동부(河東府)를 지키다가 왜구(倭寇)의 야습을 받아 형제가 아버지를 모시고 도망하던 중, 왜구 한 명이 칼을 빼어 아버지를 찌르려는 찰라에 동생이 몸으로 이를 막아 아버지의 위기를 모면케 한 후 대신 죽었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아우 손(愻)은 중현대부(中顯大夫)에 종부시승(宗簿寺承)에 추증되고 정려(旌閭)가 내렸으며, 형 유(愈)는 벼슬에 등용되어 예의판서(禮儀判書)를 역임하니 예의판서공파의 분파조(分派祖)이다. 뒤에 진양군 내동면 청계서원(淸溪書院)에 입향(入享)되었다.   중조의 4세손 천익(天益 : 호 退軒, 시호 文忠)은 은열공의 6세손으로 판서공 유(愈)의 아들이다. 고려 말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전객령(典客令)을 지내다가 당시의 난정을 개탄하여 벼슬에서 물러나서 향리인 단성(丹城)으로 내려가 퇴헌정(退軒亭)을 짓고 세사(世事)를 잊으며 자적(自適)하였다. 그러던 중 사위인 문익점(文益漸)이 원(元)나라에서 귀국길에 목화씨를 가져왔으므로 이를 시배(始培)하여 <물레(繅絲車)>와 <씨아(取子車)>를 창안(創案)하여 유명하였다. 조선 태종때 진양군(晋陽君)으로 추봉되고, 천계서원에 제향되었다.   문충공(文忠公)의 7대손인 11세 밀(密)은 참봉공 석찬(碩贊)의 네 아들 중 셋째 아들로 1520년(중종 15)생이며, 자는 숙성(叔成)이요 호는 삼계(三溪)이다. 일찍이 백형(伯兄)인 봉화훈도(奉化訓導) 관(寬)에게서 엄한 가르침을 받아 진사시(進士試)에 입격하였고 1558년(명종 13) 문과에 급제, 문학, 지평 등을 지낸 후 충청도도사(忠淸道都事)를 거처 익산(益山), 단양(丹陽), 밀양(密陽), 안악(安岳) 등 4군의 군수를 역임하고 청백리(淸白吏)로서 수많은 치적(治績)을 쌓았다. 그의 현저한 정적(政績)이 재주지(載州誌)에 올랐으며, 뒤에 청계서원에 입향되었다.   아들 12세손 승업(承業)은 승사랑(承仕郞)으로 임진왜란 계사년(癸巳年)에 진주성이 함락되고 분탕질하던 적을 만나 이를 꾸짖고 항거하다가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되자 몸에 차고 있던 패도(佩刀)로서 자결하였다. 뒤에 나라에서 정려(旌閭)가 내렸으며, 아우 승훈(承勳)은 생원으로 재기(才器)가 탁이(卓異)하여 어려서부터 문장이 숙성(夙成)하였다. 왜란이 터지자 김대명(金大鳴), 최강(崔堈) 등과 더불어 창의(倡義)하여 토적(討賊)에 공을 세우고 영남 창의록(倡義錄)에 실렸다.   입향조 욱(旭)은 중조 1세인 진경(晋卿)의 20세손으로서, 11세 밀(密)의 5대손 세붕(世鵬 : 通德郞 16세)의 현손(玄孫)이다. 약 160년 전에 고성군 회화면에서 정동 수청에 처음으로 입주하였으며, 종제 운용(雲龍)은 사남 죽천리(竹川里)에 이거하였다. 묘소가 풍정리 장지골에 있다.(甲坐).   입향하여 5대까지 세거해 왔는데, 지금은 거의 연고지(緣故地)를 떠나 경향(京鄕) 각지에 거주하고 있다.   입향조 후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24세손 경호(慶鎬) : 부산 대연초등학교 교감 • 24세손 정규(廷奎) : 부산 태창기업(주) 근무 • 24세손 의남(義男) : 문중(門中, 洙淸)대표, 농촌지도자 정도면회 회장 역임, 정동농협 이사(현) • 24세손 갑도(甲道) : 보명 도호(道鎬), 삼천포 전신전화국 근무 • 24세손 용만(龍萬) : 김해 진영한성기업 대표 • 25세손 원일(源一) : 한국전력 고리원자력발전소 과장, 종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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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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