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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지

• 인동장씨(仁同張氏) 상장군후(上將軍后) 중리종파(中里宗派) (객방)   시조(始祖) 휘(諱 ) 금용(金用개)은 태사공(太師公) 정필(貞弼)의 원손(遠孫)으로 고려(高麗) 때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올랐으며, 신호위상장군(神虎衛上將軍)을 역임했다. 그는 태사공의 후손이지만 중간 세계가 실전되어 소목(昭穆)을 가리지 못하므로 그를 시조로 하고 시조의 발상지이자 후손의 세거지인 옥산(玉山 L 仁同의 별호)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오다가 조선 말엽에 옥산이 인동(仁同)으로 개칭됨에 따라 인동으로 사용해오고 있다.   또한 인동은 한때 인동부(仁同府)로 승격되기도 했는데 1895년(고종 32) 인동군(仁同郡)으로 개편되고, 1914년 군이 폐지되고 일부 지역이 칠곡군(漆谷面)에 병합되어 인동면(仁同面)이 되었다가 1977년에 구미시(龜尾市)에 편입되었다.   장씨의 본관이 문헌상 2백70여 본으로 전하나 현존하는 장씨는 20여 본에 불과하다. 그중 중국계 귀화 성씨인 덕수(德水), 태원(太原), 절강(浙江), 농서(隴西) 장씨 등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태사공(太師公) 정필(貞弼)의 후손으로 동원(同源)이라는 것이 통념이다. 그 중 인동장씨는 수로나 명성이나 단연 장씨의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장씨라면 으레 인동장씨를 연상할 만큼 융성을 누려온 가문이다.   시조의 12세손 안세(安世 : 호 松隱, 시호 忠貞)는 고려 말 덕녕부윤(德寧府尹 : 함경도)으로 있을 때 성천강에 만세교를 가설하여 현재까지 그 다리가 전해 온다하며 고려가 망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키고 개성의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가 72현(賢)으로 꼽혔다. 그의 아들 13세손 중양(仲陽)은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김해부사(金海府使)를 지냈고, 친구인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한성좌윤(漢城左尹)의 벼슬을 내렸으나 이를 뿌리치고 “내가 죽은 뒤 고려조의 벼슬을 묘비에 써달라”고 유언했다. 이들 부자는 인동장씨가 자랑하는 절신(節臣)이다.   17세손 적손(嫡孫)은 성종 때 어모장군(禦侮將軍)이니 효성이 지극하였다. 친상(親喪)을 당해서는 여묘(廬墓) 3년을 하루같이 거르지 않았고, 끝난 뒤에도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에는 성묘(省墓)하기를 잊지 않았다. 아들 4형제를 두었는데, 장자 혼(渾)은 종파(宗派), 차자 잠(潛)은 황상파(凰顙派), 3자 도(濤)는 청주파(淸州派), 4자 연(演)은 울진파(蔚珍派)의 파조로서 각각 4대계로 나뉘어졌다.   이 중에 종파(宗派)의 파조 18세손 혼(渾)의 자는 심원(深源)이며 학자(學者)로서 문장이 숙달하고 학문이 탁월하였다. 무오사화(戊午士禍 : 1498년)에 연루되어 23세에 조몰(早沒)하니 세인이 통석(痛惜)해 했다.   시조의 25세손(파조의 8세손) 황(晃)의 자는 인서(仁瑞), 호는 용강(龍崗)으로 1667년(현종 8) 인동(仁同) 중리촌(中里村)에서 출생. 풍위(風偉)가 청수(淸秀)하고 재주가 특이(特異)하여 이미 15세 나이에 경사(經史)를 통독하였고, 장성하여 효제(孝悌)의 행실(行實)과 돈목(敦睦)한 의리(義理)로 고을 사람들의 칭송과 함께 본보기가 되었다. 그러나 산수관광(山水觀光)을 좋아하는 성품(性品)이여서 세상과 더불어 뜻을 합치고자 처음에는 선산 신호동(善山 新湖洞)으로 이거(移居)하였다가 하동(河東) 악양(岳陽)을 거쳐 1695년(숙종 21) 고성 하일면 송천동(松川洞)에 다시 이주 정착하였다. 작은 정사(精舍)를 짓고 스스로 호를 용강거사(龍崗居士)라 하고 자제들은 물론 여러 후진을 가르치며 자적(自適)하다가 향년 66세에 타계하였다. 묘소는 송천의 산91번지 노전곡(蘆田谷) 을좌원(乙坐原).   입향조는 26세 석선(錫善)의 두 아들 한윤(漢沇 : 시조의 27세), 한달(漢達 : 자 奉仁) 중 작은 아들이 1750년경 먼저 정동면(正東面) 소곡리 객방마을에 입향 정착하였다. 그 뒤 큰 아들 한윤의 후예들도 입정동하여 객방(客坊)에 살면서 대소간이 한데모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입향하여 7대까지 세거해 왔는데, 손세는 40여호에 달했으며 현재 객방 거주는 7세대 뿐이고 그 외는 근대 산업화 과정에서 모두 연고지를 떠나 경향 각지에 살고 있으며 인맥(人脈)으로는, • 31세손 두길(斗吉) : 소곡리 이장, 사천향교 유도회 지부장 역임 • 32세손 영실(永實) : 객방 이장, 초대 정동면의회 의원 역임 • 32세손 영도(永鍍) : 부산, 경남 인동장씨 종친회 총무부장 역임 • 32세손 영출(永出) : 부산 만덕상사 대표이사 • 33세손 상근(相根) : 남해수산 대표 역임 • 33세손 정관(正琯) : 통영 천일수산 대룡식품 대표 • 33세손 명수(明秀) : 부산시청 공무원 퇴임, 대진상사 대표 역임 • 33세손 정신(晶臣) : 부산시청 총무과 근무 • 33세손 홍필(洪弼) : 서울 한국철강종합상사 대표 • 33세손 호수(浩秀) : 부산은행 본점 기획실장 • 33세손 인식(仁植) : 마산 신흥화학(新興化學) 총무부장 • 34세손 성경(性景) : 부산 동래초등학교 교감 • 34세손 성열(性烈) : 조흥은행 부산지점 대리 • 34세손 성환(性煥) : 봉대철강(주) 대표이사 • 34세손 성문(性汶) : 사천시 축협 근무 • 문중 대표(客坊) 33세손 용희(勇喜 : 보명 眞植) 객방 이장, 정동농협 퇴직 • 종손 35세손 형규(亨圭) 부산에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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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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