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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지

• 함안이씨(咸安李氏) 전경재공파(展敬齋公派), 참봉공파(叅奉公派) (만마, 학촌)   시조 휘(諱) 상(尙)은 고려 때 위위시주부동정(衛尉寺主簿同正)으로 광록대부(光祿大夫)에 올라 공을 세우고 파산군(巴山君 : 함안의 고호)에 봉해져 후손들이 그를 시조(始祖)로 하고 선조(先祖)들의 세거지인 함안(咸安)을 본관(本貫)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함안이씨의 파계는 시조의 아들 형제대에서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낸 청(淸)의 후예를 시랑공파(侍郞公派)로,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한 원(源 : 諡 忠義公)의 후예는 판서공파(判書公派)로 두 계통으로 갈라졌다. 공민왕 때 명장 휘 방실(芳實 : 諡 忠烈公)은 원의 아들이다. 공의 후손은 경기, 충청남북, 전북, 경남 등지에 세거하여 손세 번창하며 공의 묘소는 가평군 서면 주동리 유좌(酉坐)에 있고, 함안 남강사(南岡祠)에 제향되어 음 10월 1일에 제향하고 있다.   검교호군(檢校護軍) 자수(滋秀 .4세)는 청(淸 : 侍郞公派祖)의 손자이다. 중정대부 무진부사(中正大夫茂珍府使 : 현 광주)로 부임하여 왜구 토벌에 출전하여 전사(戰死)한 운길(云吉.5세)은 청(淸)의 증손(曾孫)이다. 1738년 고성 곤의서원(昆義書院)에 제향되었다. 자 즐(騭.6세)은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지냈다.   원로(元老.7세) 참의공의 자 미(美 8세. 號 滄江 諡 思簡)는 위로 6대독자이다. 1453년(단종 1) 문과에 급제, 진해현령(鎭海縣令)으로 선정을 베풀어 명관(名官)으로 이름났으며 여러 관직을 거쳐 대사성(大司成)에 이르렀고, 병조참판(兵曹叅判)에 추증되었다. 묘는 고성 마암면 즙계에 있다. 유좌(酉坐)   아들 4형제와 5부자가 모두 급제하으로서 성종(成宗)으로부터 마을 이름을 가좌촌(佳佐村 : 현 진주 진성면 하촌리)으로 사천(賜村) 받았다. 장자 인형(仁亨. 9세 字 工夫 號. 梅軒)은 20세에 진사(進士)에 합격하고 1468년(세조 14)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 등을 거쳐 대사헌(大司憲)에 이르렀다. 김종직(金宗直)의 문도로서 무오사화(戊午士禍)에 화를 입었으나 1506년(성종 1년)에 신원(伸寃)되어 예조판서(禮曹判書)에 추증되었으며, 고성 위계서원(葦溪書院)에 제향되었다.   2자 의형(義亨 : 字 勇夫 號 杏軒)은 24세 때 진사가 되어 전강(殿講)에 부름 박아 선전관(宣傳官)에 발탁(拔擢)된 후 경상도 암행어사를 거쳐 1477년(성종 8) 창평군수에 재직중 문과에 급제, 한림원(翰林院) 집의(執義) 남원부사(南原府使)에 이르렀다. 서장관(書狀官)으로 명(明)나라 연경(燕京)에 갔을때, 황제로부터 자치통감(資治通鑑) 등의 서적을 받아왔다. 경학(經學)에 밝고 학행이 뛰어나 명성(名聲)이 높았다. 향년 54세에 졸하고 묘는 고성 마암면 즙계곡 경좌(庚坐). 곤의서원과 위계서원에 제향되었다.   3자 예형(禮亨 : 子 嘉會 號 梧軒)은 1480년 친시문과 을과(親試文科乙科)에 4등과 1486년(성종 10) 중시옥과(重試玉科) 2등제하여 예조좌랑(禮曹佐郞)을 지냈다. 근래에 와서 위계서원에 제향되었다.   계자(季子) 지형(智亨 : 字 嘉中 號 菊軒) 역시 김종직의 문인으로 성종 때 문과에 급제, 연산군 때 대사간에 올랐다. 무오사화로 형 인형(仁亨)이 화를 당하자 관직에서 사퇴, 이어 갑자사화(甲子士禍 : 연산군 17)가 일어나 화를 면할 수 없게 되자 자결하고 말았다.   행헌공(杏軒公) 의형(義亨 : 시조의 9세)의 아들 5형제대에서 5대계로 다시 갈리어 큰아들 도(翿)의 아들 형제에서 두 파(派)인 신천공파(新川公派), 예천공파(醴川公派)로, 둘째 아들 한(澣)은 송암공파(松菴公派)의 파조(派祖)가 되고, 셋째아들 허(詡)의 호는 전경재(展敬齋)로서 경재공파의 파조, 넷째 익(翊)과 다섯째 굉(翃)은 각각 월암공파(月菴公派)와 진사공파(進士公派)의 파조(派祖)가 되었다. 이 중에 경재공(敬齋公) 허(詡)는 고성으로 이주하여 마암면 신리에 정착했으며 위계서원(葦溪書院)에 제향되었다.   파조(派祖) 전경재공(展敬齋公)의 아들 형제(兄弟)에서 11세손 천령(千齡)의 후예들은 고성군 일원에 세거(世居)하여 황파공파(篁坡公派), 운포공파(雲圃公派), 인의공파(引儀公派), 계공랑공파(啓功郞公派)의 4파로 분파되어 가계를 이었으며, 둘째 아들 천희(千憙)는 참봉공파(叅奉公派)의 파조이며, 공의 아들 12세손 풍상(豊祥 : 호 遯窩)은 합천으로 이주하여 쌍백면(雙栢面) 외초리(外草里) 사인(士仁)에 정착하여 가계(家系)를 이었다.   입향조는 시조(始祖)의 18세손 춘성(春盛)이며, 둔와공(遯窩公) 풍상(豊祥 : 展力副尉訓練 奉事)의 셋째 손자 계주(桂周)의 현손(玄孫)이다. 그는 1800년경 합천에서 진주를 거쳐 입사천(入泗川), 정동 만마동(萬馬洞)에 정착하여 터전을 잡았다. 따라서 종손(從孫) 종연(鍾淵 : 시조의 20세. 큰형 春祏의 손자)이 뒤에 입주(入住)하니 3호가 되었다. 입향조로 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9대까지이나 손세 부진하여 32호에 달하며, 시대 변천에 따라 구직 분산되어 거의 경향 각지로 나가 살고 있다.   문중 대표는 23세손 진관(鎭灌)이며, 종손은 24세손 성수(性洙)로 서울에 거주하며 회사원이다. • 23세손 진관(鎭灌) : 호 묵헌(牧軒). 정동노인회 총무, 사천향교 유도회 회장, 만마부락 이장 역임 • 23세손 진길(鎭吉) : 부산경찰국 강력계장직을 거쳐 부산 동래구의원 역임, 부산연제구의원(현) • 23세선 진봉(鎭逢) : 서울에서 운수업에 종사 • 23세손 진경(鎭京) : 포항제철 회사원 • 24세손 연수(連洙) : 사천읍 사등초등학교 교사 역임 • 24세손 갑영(甲泳) : 군포시 대도정밀 대표 • 25세손 상훤(相煊) : 만마부락 이장(春盛의 宗孫) • 25세손 상복(相福) : 김해교육청 장학사 • 25세손 상선(相先) : 부산 연제구 연산동 대성설비 대표 • 25세손 상덕(相德) : 거제 강덕수산 대표 • 25세손 상영(相榮) : 미국 뉴욕에서 병원 경영(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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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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