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유래

사천지명유래

삼국지 변진전에 들어 있는 24국 중 변진고순시국(弁辰古淳是國:사천)이 나오는데 고신시국은 변진 24국의 하나로 사천지역으로 비정(比定:천관우의 가야사 연구)하고 있는데 고신시국은 사천(泗川)이라는 지역(국가) 지명과는 직접 연관이 없고, 고성의 서쪽에는 포상8국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중에 사물국(史勿國)이 있다고 천관우는 지적하고 있어 이 사물국의 사물이 오늘의 사천 첫 지명으로 생각된다.

사물(史勿 : 思勿)이 문헌상으로 처음 나타나는 것은 <삼국사기>인데, 삼국사기 48권 열전 제8편 물계자조와, 제32권 잡지 1편 악(樂) 가야금조인데 포상(浦上)의 8국 중에 사물국이란 나라가 현재의 사천으로 비정되고 있고 악편의 우륵이 지은 노래 12곡 중 다섯번째 곡명이 사물(思勿)임을 보아 사실상 사천의 첫 지명이 되는 것이다.

사물이란 국명이 어떻게 하여 지어졌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앞에 기술한 지명의 형성 양태로 보아 사물이라는 어원을 분석해 보면, 사(史)는 제왕의 언행을 기록하며 또 정부의 문서를 맡은 벼슬아치, 역사의 기록(史乘), 장식이 있어 아름다운 것, 성씨로 풀이하고 있으며, 물(勿)은 부정(否定)을 나타내는 없음이나 금지(禁止)를 뜻하는 문자로 사용되고 있으나 음(音)으로는 물, 즉 물 수(水)와 같은 소리 값을 내고 있으므로 물(水)의 음차자(音借字)이거나 동음차자(同音借字)로 표기하였을 것으로 생각되며, 사의 의미 요소인 장식이 있어 아름답다거나 혹은 넉사(四)의 가차자(假借字)로 보아 사방 즉, 동·서·남·북이 모두라는 의미일 것이고 물(勿)자 역시 물(水)의 가차자로 보아 사방 모두가 물에 둘러 싸여 있는 아름다운 곳이란 뜻으로 사물(史勿) 또는 사물(思勿)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므로 사(史)는 장식(물)이 있어 아름다운 곳이며 사방이 모두라는 뜻일 것이고, 물(勿)은 물(水)로서 사방이 모두 바다나 강으로 둘러싸여 아름다운 곳으로 이름이 붙여지지 않았나 짐작이 되는 것이다.

<삼국사기> 제32권 잡지 1편 악 가야금조에 나오는 우륵의 12곡 중 사물(思勿)을 풀이해 놓은 새 가야사와 삼국열전(이중재 저 명문당)에 보면 다섯 번째 곡인 사물곡인 사물을 “자기의 정신과 생각을 나타내는 곡으로 풀이하고 있는데 비해 다른 학자들은 도읍지나 지역 국가를 노래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후자의 도읍지나 지역 국가를 노래한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사물(史勿→思勿)이란 사방으로 강이나 바다에 둘러싸여 사람 살기 좋고 아름다운 생각을 정신적으로 가다듬는 나라 이름인 것 만은 틀림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史勿)은 사물(思勿)로, 사물(思勿)이 사수(泗水)로 훈차(訓借)되고 그 후 행정구역 개편시나 한자로 지명을 고칠 때 사천(泗川)으로 개명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어느 지명과는 달리 문헌상에 처음 보이는 「사물(史勿)」이 3세기초에서부터 8세기중엽(757년 , 통일신라35대 경덕왕 16년)에 고자군의 영현인 사물현을 사수현으로 하고, 고려현종2년(1011년) 사수현을 임금의 풍패지향이라하여 사주로 승격후, 조선 태종13년(1413)에 사천(泗川)으로 다시 개명된 이래로 사천으로 그 이름을 이어 오고 있는 것이다.

참고

삼국시대(가야) 초기인 A.D 209년을 전후하여 복합군장사회(複合君長社會)인 포상8국은 지역소국들의 연맹체로서 이 시기 사천의 연원은 사물국이며, 곤양지역은 곤미국(昆彌國)으로 비정되고, 550년경을 전후하여 사물국과 곤미국은 백제의 세력권안에 들었다가 신라 진흥왕 23년(562)에 신라장군 이사부(異斯夫)와 화랑 사다함(斯多含)이 이끄는 부대의 공격을 받고 사물국과 고자국도 일국의 역사를 마감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천지역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자 넓은 영토를 관리하기 위하여 지방조직을 정비하게 됨에 따라 신문왕 5년(685)에 주·군·현을 기본으로 한 9주를 정비하고 청주(菁州:현진주)에 총관(摠管)을 두었는데, 소관군의 하나인 고자군(古自郡 : 현 고성)의 영현으로 사물현(史勿縣)이라 하였고 한다사군(韓多沙郡 : 현하동)에 딸린 곤미국은 포촌현(浦村縣)이 되었다.

경덕왕 16년(757)에 전국의 지명을 고쳤는데, 이 때의 고자군을 고성군으로 고치고 그 영현인 사물현을 사수현(泗水縣)으로, 한다사군을 하동군이라 하고 이에 소속된 포촌현을 하읍현(河邑縣)이라 하였다.

오늘날 사천시의 연원은 순수한 우리 토박이 말인 사물(史勿)에서 찾아야 할 것인데 사물(史勿)에서 사물(思勿)로, 사물(思勿)이 사수(泗水)로, 사수(泗水)가 사주(泗州)로, 사주(泗州)가 현재의 사천(泗川)으로 이름이 변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 태조 23년(940)에 강주(康州)를 진주(晋州)라 개명할 때 하읍현을 곤명현이라 개명하였고, 또 조선 세종대에 이르러서는 곤명현을 곤양군(昆陽郡)으로 승격시켰으므로 자연히 고적조에 그 고호(古號)로서 이름만 남게 되고 오늘의 사천시 서부지역인 곤양, 곤명, 서포면이 이에 해당한다.

성종 14년(995) 9월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전국 10도 중의 하나인 산남도(山南道)의 진주목에 내속(來屬)되고, 이에 앞서 성종 11년(992)에는 전국 13조창의 하나인 통양창(通陽倉)이 사수현에 설치되었으며, 태조의 여덟째 아들 욱(郁 : 안종)이 귀양을 오게 되었는데 고려 현종 6년(1015)에는 사수현(泗水縣)은 임금의 풍패지향(豊沛之鄕)이라 하여 고을을 높여 사수를 사주(泗州)라 개칭하였고 현종 9년(1018) 지방제도의 개편으로 하동군에 소속된 곤명현을 진주목 속현으로 내속되었다. 그 후 명종 2년(1172) 6월에 이르러 처음으로 감무(監務 : 현감)를 두게 되었고 진주목 속현에서 외관(外官)이 다스리는 주현(主縣)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태종13년(1413) 10월 각 도·군·현의 명호를 개정할 때 고려초 이래의 사주를 사천(泗川)이라 하고, 또 감무를 현감이라 고쳤으며 별칭을 동성(東城)이라 했으며 태종 15년(1415) 9월 왜구의 침범을 방어하기 위하여 사천을 군사적 요충지로 설정하고 병마사가 판현사(判縣事)를 겸직한 사천진(泗川鎭)을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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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9-01 15: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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