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명면지

昆明面誌編纂委員長 朴 渭 甲
  어제의 일은 오늘의 歷史가 되고 오늘의 일은 來日의 歷史가 된다. 歷史는 人間生活의 記錄이다. 때문에 社會의 變遷過程과 人類의 발자취를 記錄한 文獻을 歷史 또는 國史라고 하는바 이러한 歷史는 記錄으로 남기지 않는 限, 歲月이 흐르다 보면 消滅되기 마련이고 또 口傳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結果的으로 傳說에 不過하다.   지금 우리가 記錄이 있는 옛 國史는 말할 수 있으나 不過 百年前의 記錄없는 鄕土史는 잘알 수 없듯이 오늘의 흐름을 記錄으로 남기지 않는다면 또 百年後에는 아득한 傳說속의 옛 일이 되고 만다. 일찍이 孔子께서 [夏나라와 殷나라의 禮가 能히 足하지 못하다]고 하심은 두 나라의 差가 千有餘年이나 考證할 文獻이 없음을 말함이니 後世에 남기는 記錄이 얼마나 所重함인가를 일깨워 준 敎訓의 말씀이라고 하겠다. 내 고장 昆明은 先史時代 以來로 祖上의 偉勳과 文武義烈의 氣風이 連綿했건만 文獻上 傳함이 別로 없고 다만 以傳口傳으로 이어지는 形態이나 이마져 다음 世代에는 烟滅되겠기에 悲感에 젖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에 鄕土誌를 發刊하려는 面民의 衆意는 結實을 보게되어 1985年末에 昆明面誌 發刊推進委員會가 發足됨에 이르렀다. 回顧하건데 우리의 昆明이 高麗初부터 401年間이나 昆明縣으로 存績하여 왔고 朝鮮朝 世宗年代에 이르러서는 南海縣을 來屬시켜 19年間이나 昆南郡으로 이어졌으니 이 고장은 長長 420年 동안이나 郡單立 行政의 中心地였음을 알게 한다. 더욱이 지금은 地方文化時代라고 한다. 地方文化의 自主性은 鄕土의 隆盛에 寄與하게 되고 鄕土의 隆盛은 곧 國家發展에 寄與하게 되는바 祖上께서 심어주신 鄕土의 文化를 우리 世代에서 꽃피워 다음 世代에서 열매 맺게하고 그 다음 世代에서 收穫토록 해야 하겠다는 것이 이 面誌를 엮은 참 뜻이라고 하겠다.   不肖 이 사람은 이름만 委員長일 뿐 淺學菲才하여 部分的 役割도 제대로 못하였으나 오늘 發刊의 빛을 보게된 것은 姜洪伊, 李學榮, 鄭中圭, 成命柱 諸氏의 殺身意志의 結晶임을 밝히고 아울러 各 委員과 內外鄕人의 全幅的인 支援에 깊은 感謝를 드린다. 資料蒐集과 編輯에서 나름대로 精誠을 기우렸으나 未恰한 點이 많으리라고 생각되는바 後代의 碩學들에 의하여 補完될 것을 期待해 마지 않는다.   다만 本人을 비롯한 各編纂委員들의 他意없는 愛鄕一念으로 이 일이 이루어진 것임을 酌古參今으로 여기시고 鄕友諸賢의 海諒하심을 고개숙여 當付드리면서 發刊辭에 代한다.
1987年 12月 日
昆明面誌編纂委員長 朴 渭 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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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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