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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

우리면이야기

마을명칭유래

정동면 (正東面)

조선 초기까지 사천현의 읍기인 치소가 있었음을 나타내는 상주내면과 동면을 사천읍의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읍동면이라 하였고, 그후 행정구역 명칭 변경시 정동면이라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읍 (古邑)

고려시대부터 조선초기까지 읍기(관청이 있는 곳)가 있던 곳이었다가 세종 사천읍성을 쌓고 읍기를 천도해 감으로 구읍 또는 고읍촌으로 불렀다. 읍이 없어진후 면소재지가 되었다가 1920년 사천 고성간 도로가 개통되어 1934년 면소를 대곡리숲으로 이전하였다.

동계(東溪)

600년 전 역이 들어서면서 신역이라 하였다가 얼마후 동계역이라 고쳤다 한다.

예수(禮樹)

옛적부터 예를 숭상하는 마을이라하여 예촌, 예수정이라 한데서 유래한다.

반룡(盤龍)

풍수지리상이 지세가 마치 소반위의 용이 사리고 있는 형상같다하여 붙혀진 이름이다.

화암(花巖)

부봉산 중턱에 덤바우라는 큰바위가 있는데 봄이 되면 바위틈으로 진달래가 만발하여 꽃바위 즉 화암이란 이름이 생겨났다 한다.

여옥(如玉) 여리골

마을이 구슬처럼 오목하게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풍정(豊井)

세종때 사천읍으로 읍기를 옮기기 이전 향교가 지금의 풍정에 있을때 향교의 많은 건물중 풍화루의 豊자를 따서 풍정(豊停)이라 했는데 후에 신풍동으로 부르다가 1914년 신풍동과 상정동(上井)의 글자를 따서 지금의 풍정(豊井)으로 되었다.

수청(洙淸)

유래를 알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된 이름인데 맑은사수(사천강)가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유래한다.

대곡(大谷) 한실

대곡마을은 산으로 싸여있는 분지인데 골안이 깊숙이 뻗쳐있어 큰골짜기라는 뜻으로 한실이라 부른다.

노천(魯川) 놀내

지형이 노루목처럼 생겼다해서 노루내, 놀내라 부른다.

대산(垈山)

몽대(夢垈)라는 마을이름에서 垈자를 따 대산이라 부르는데 몽대라는 지명은 임진란때 금산군수로 용맹을 떨친 영남3룡 주몽룡장군의 출생지로 그 부친이 꿈에 용을 보았다해서 용꿈을 꾼 집터란 뜻이라 한다.

감곡(甘谷)

감(甘)자는 달다라는 뜻이 아니라 "크다"라는 뜻인데 대곡처럼 큰골짜기라는 뜻이다.

복상(伏象)

마을을 둘러싼 뒷산이 거대한 코끼리가 엎드려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만마(萬馬)

옛날 풍수사가 마을을 지나면서 만마부락을 둘러싼 능선과 5도랑 칠성바위는 천군만마와 같은 형상으로 보인다 했다 하여 만마로 불렀다 한다.

학촌(鶴村)

원래 마을명은 고자실(顧子谷)이다. 고려 현종의 아버지 욱이 능화에 유배되어 배방사(대산마을)에 있는 아들 현종을 보고 돌아올 적에 산꼭대기에서 아들있는 쪽으로 뒤 돌아보았다 해서 고자실이라 부르다가 1914년부터 학촌으로 명명하였다. 부락앞에 솟은 산을 학의 형국이라 하여 학산이라 부르는데 학산아래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소곡(所谷)

조선초기 쇠를 캐던 철장있었던 까닭에 쇠실(金谷)이라 부르다가 후에 사기그릇을 굽던 자기소가 설치되므로 소곡이라 불렀다.

가곡(柯谷)

사천과 고성의 경계인 관계로 가장자리의 골짜기라는 뜻이다.

객방(客坊)

옛날에 철을 캐던 야철지로 외지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 취락을 이루어 살았다하여 손님 客자를 넣어 객방이라 불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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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7-12 13:3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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