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연혁



축동면

행정복지센터안내

연혁

  • 1911년 이전에는 진주목 남면이라 칭함
  • 1914년 진양군 가차례면 일부와 진주군 부화곡면을 합하여 사천군 축동면이라 칭함
  • 1995년 5월 10일 법률 제4948호에 의거 "사천시 축동면"으로 개칭

축동면은 본래 진주목에 속했던 곳으로 고려 공민왕때 서북면의 도병마사를 역임한 바 있는 이순장군이 이곳에 유배생활을 할 때 지었다는 쾌재정이 있다. 조선시대 관포 어득강, 구암 이정, 남명 조식 등 현인 명사들 음풍영월하면서 노닐었던 곳으로 유명한 어관포 시 8수와 이구암의 시 1수가 각각 전한다.

그리고 조선후기에 설치한 장암창과 가산창이 유명했다. 장암창은 일명 해창이라고도 하였고, 구호리에 있었으며 영조36년(1760)에 가산리로 옮겨간 후 이곳은 구해창이라고 칭했다. 또 가산창은 경상도 우조창이라 일컬었으며 서부경남 8개고을 조세를 거뒤들여 경창으로 운송하던 곳이다. 이곳 가산조창은 1894년 동학혁명 이전까지 성시를 이루었을 정도로 흥청거렸던 조창마을로 그 당시 연희하던 가산오광대(駕山五廣大 : 주요무형문화재 제73호)가 지금까지 전승되어 가산마을 수호신인 석장승(石長丞 : 경남민속자료 제3호)과 함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석장승은 8기로 남, 여 4쌍으로 마을 어귀에 세워져 있고 마을 사람들의 동제장소로 이용되어 민속신앙의 조체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가산오광대는 1985년 전수회관이 준공되어 얼과 애환이 담긴 문화유산을 육성 발전시키기 위한 회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숙종 32년(1832)에 완성된 경상도읍지에 의하면 진주목 방리는 4면 71리였느데그 가운데 축동리, 부화곡리, 가차례리 그리고 삼천포의 말문리 남해의 창선리, 적량리 등 방리가 진주목 남면에 속해있다. 고종 34년(1897) 행정의 말단조직인 방면이 면으로 개칭되고 그후 1907년에 신 지방관제를 실시하여 행정구역의 통폐합과 명칭변경을 고쳤는데 이때 사천군과 관련되는 진주군의 속면은 축동면, 부화곡면, 가차례면 등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1914년 본군으로 편입되기 이전의 3개면의 동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축동면은 7개동 : 배춘동, 하동, 길평동, 사다동, 신기동, 양동
  • 부화곡면은 9개동 : 탑동, 성화동, 구호동, 학수동, 가산동, 하구동, 반룡동, 관동, 신촌동
  • 가차례면은 9개동 : 전대촌, 대초동, 구유촌, 학기촌, 강주촌, 소곡, 이동, 대동, 배춘동

1914년 4월 1일 부령 제111호 군·면폐지 분할 때 진주군 축동면의 7개동리, 가차례면의 하동은 사천군 북면의 토촌동의 일부, 그리고 진주군 부화곡면의 9개 동리를 7개리로 병합하여 다시 축동이라하여 사천군에 편입하였다. 이때의 면사무소는 구호리에 있었던 것을 1928년 11월 9일 길평리 441번지로 옮겨갔다.
당시 7개리는 다음과 같다.

  • 가산리 : 진주군 부화곡면의 가산동, 학수동, 반룡동의 각 일부지역
  • 구호리 : 동면의 구호동, 하구동의 일부지역
  • 탑리 : 동면의 성산동, 탑동
  • 반룡리 : 동면의 반룡동 일부, 신촌동, 관동
  • 사다리 : 진주군 축동면의 예동, 사다동, 하동, 가차례면의 하동 각 일부지역
  • 길평리 : 길평동, 하동, 원동 일부동
  • 배춘리 : 동면의 신기동, 양동, 배춘동, 동치동, 가차례면의 운계, 원동, 사천군 북면의 토촌동 각 일부지역

1913년 4월 1일 부령 제12호 면제의 개칭 7개리(행정리동 21개, 반 17개, 자연마을 37개) 다음과 같다.

  • 배춘리 : 신기, 양동, 배춘, 동치, 운계, 원동
  • 길평리 : 하동, 길평
  • 사다리 : 사다, 예동
  • 탑리 : 상탑, 중탑, 하탑
  • 반룡리 : 신촌, 관동, 반용
  • 가산리 : 용산, 용수, 가산
  • 구호리 : 구호, 하구

그후 1990년 비행장 확장 등으로 구호리 하구마을은 진주시 정촌면 예하리 지내(하구)마을로 이주하였고, 길평리 하동마을은 사천시 사남면 유천리 하동마을로 전마을이 이주되었다. 또한 길평리 길평마을과 면사무소, 파출소, 면대, 우체국, 농협, 축동초등학교 등이 1996년 12월 31일 배춘리 운계 마을 내로 이주하여 길평 마을로 구 마을이름을 그대로사용하며 집단이주 하였으며, 면청사는 건평 215평 2층 건물로 1999년 2월 11일 준공되어 이전하였다.

1991년 3월 26일 군 의회구성 지방자치선거가 30년만에 실시되었고, 1995년 5월 10일 도·농 통합으로 사천시로 출범됨에 따라 축동면은 사천시 축동면으로 삼천포경찰서 축동지서는 사천경찰서 축동파출소로 개칭되었다.

2007년6월11일 사천시 통반구역조정(사천시규칙 제400호)에 의하여 원계마을을 운계마을로 이름을 변경하여 사용하게 되었으며 18통24반에서 7리17통28반으로 조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7년 6월 11일 사천시 통반구역(축동면) 조정현황은 다음과 같다.

  • 배춘리 : 신기, 양동, 배춘, 운계, 길평
  • 사다리 : 사다, 예동
  • 탑리 : 상탑, 중탑, 하탑
  • 반룡리 : 신촌, 관동, 반용
  • 가산리 : 용산, 용수, 가산
  • 구호리 : 구호,
  • 길평리 : 0

※ 없어진 행정리(마을) 4개 : 동치, 원동, 하동, 하구

7개 법정리와 17개 행정리를 관장하고 축동면은 사천시 읍면 중에는 면적과 인구가 적은 면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아름다운 명산인 화당산과 장방산, 반용산, 실비산도 비교적 고도가 낮고 포근한 산세가 형성되어 있고 동쪽 사천읍의 두량저수지로부터 배춘, 길평, 구호로 경유 사천만으로 유입되는 길호천과 서북쪽 진양호로부터 진주시 나동면 유수리를 경유 관동, 반용, 용수, 가산을 거쳐 사천만으로 흐르는 남강댐 방수로 가화천이 곤양면과 접하여 있다.

화당산은 축동면의 령산으로써 산 정상에는 화당산전망대와 면민의 휴식과 건강 관리를 위한 체육시설과 상춘시 벚꽃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고 산의 동남쪽 황토지세에서 흘러나오는 지장약수는 사람의 몸에 유익하고 성인병 예방, 치료에 효험이 있다하여 원근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고 있으며, 단아한 품새와 온화한 자태로 지리산 천왕봉의 우렁찬 기상과 검푸른 남해바다와 와룡산 기운을 다소곳이 모아 받은 어미의 산으로써 문과 무의 인재들이 면면히 맥을 이어가고 화당산 아래는 아담한 화당정이 있어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푸근한 정을 준다.

교통으로는 진주로부터 사천읍 정동을 경유 고성, 통영에 이르는 33번국도와 진주, 삼천포항과 남해를 이르는 3번 국도는 운계마을을 관통하고 부산에서 마산, 진주 경유 운계, 예동마을과 하탑, 구호, 가산을 통과하여 곤양, 광양, 순천, 광주에 이르는 6번 남해안 고속도로가 있으며, 진주시 내동면에서 탑리, 사다리, 배춘리, 사천읍 으로 연결되는 지방도와 곤양, 가산, 구호, 탑리, 사천으로 가는 지방도 배둔선이 각 마을 진입로와 연결되어 있는 교통이 아주 잘 발달된 면이기도 하며, 특히 우리시의 자랑인 사천공항과 사천시의 관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1960년도부터 진양호 담수용의 다변화로 인한 가화천 방수로가 확장되면서 반용리, 가산리, 일원 농경지 50㏊가 침수되고 1970년부터 남해안고속도로 개설 및 확장으로 인한 농경지 30㏊, 군사시설 확장 및 2003년도 부터 개발제한 구역 해제로 인한 진주등 대도시 인근의 공장 집단화 지역으로 공단화 지역으로 급변화하는 지역이다.


담당자
축동면 총무팀 055-831-5144 / 팩스 : 055-831-6075
최종수정일
2016-07-12 13:59:16
만족도 조사 민원신청  시장에게 바란다  조직도  공지사항  공고/고시/시험 
페이지 수정요청열기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시나요?

평가: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