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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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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사천시의 서북단에 위치하고 3면이 사천만에 둘러싸인 우리 서포면은 1914년에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방침에 따라, 당시 곤양군의 서부면과 양포면을 통합하여 새로 만들어진 행정구역이다.

따라서 우리 서포면의 연혁을 언급함에 있어 곤양군을 뿌리로 한 곤양, 곤명, 서포를 별도로 분리하여 설명하는 것은 무리이며 특히 상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 고장의 뿌리인 곤양군은 본래 통일 신라의 신문왕, 경덕왕대의 지방 통치조직에서 보면 신라의 한다사군(지금은 하동군) 속현(屬懸)으로, 포촌현(浦村懸)에서 하읍현(河邑懸)으로 개칭된 고장이다.

그 후 941년(고려 태조 23년)에 하읍현을 곤명현이라 개칭하였고, 1018년(현종 9년) 8월에는 하동군 영현(領懸)에서 진주목(晉州牧)에 내속(來屬) 되었다.

또 1437년(세종 19년)에 행정구역 개편을 하였는데, 이때 남해현을 분리시키고, 진주목 소속의 금양부곡과 서면일대(지금의 금남면 일원과 진교면 술상리, 양포리, 고룡리, 하평일부, 안심리 일부)를 곤남군에 내속시켜 읍호를 곤양군이라 개칭함으로서, 이후 477년 동안 곤양군 시대의 막을 열게 된 것이다.

1831년(순조 31년)에 조사된 곤양군 군세 통계자료 및 1914년 곤양군이 폐지되면서 나타나는 소지명을 토대로 당시 곤양군의 행정구역을 살펴보면, 곤양군은 서부면과 양포면(지금의 서포면)을 비롯하여 동쪽으로는 사천계에 이르는 동부면과 가리면(지금의 곤양면), 북쪽으로 진주계에 이르는 성방면, 소곡면, 곤명면, 초량면(지금의 곤명면) 서쪽으로는 하동현에 이르는 서면(술상, 양포, 고룡, 안심 등 진교면 일부) 지역을 비롯하여 남쪽으로 남해 현계에 근접하는 금양 부곡(지금의 금남면 일대) 등 10개면이 곤양군의 영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07년 신 지방(新地方)행정구역 정리과정을 거치면서 종전에 내려오던 방면(方面)제가 면(面)제로 개편되어, 곤양군의 서부면과 양포면으로 각 각 나뉘어져 있을 당시의 면 소재지와 관할 동리를 살펴보면, 서부면의 면 소재지는 맥사동에 있었으며, 그 동리로는 맥사동(麥士洞), 평촌동(坪村洞), 원동(院洞), 외구동(外鳩洞), 내구동(內鳩洞), 금진동(金津洞), 방천동(防川洞) 등 7개 동리였고, 양포면은 면 소재지를 두리동(현재 대포부락)에 두고 있었으며, 동리로는 구랑동(九浪洞), 조도동(措島洞), 구소동(舊巢洞), 다맥동(多脈洞), 자혜동(自惠洞), 두리동(豆里洞), 선창동(仙倉洞),비토동(飛兎洞), 염전동(鹽田洞), 오도동(梧島洞) 등 10개 동리였다.

1910년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고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조선 총독부령 제111호) 곤양군을 해체하면서, 서면과 금양면은 하동군에 편입하고 곤양군에 소속되어 있던 서부면(西部面)과 양포면(兩浦面)을 통합하여, 서부면의 "서(西)"자와 양포면의 "포(浦)"자를 따서 서포면(西浦面)으로 하고 사천군에 편입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법정이동 12개리에 24개 마을을 관할하게 되었으나, 1983년 2월 15일 서포면의 무고리와 맥사리가 분리되어 곤양면에 합병됨으로서, 현재 서포는 법정리동 10개리에 22개 마을의 100개 반, 1,964세대 인구 4,557명[남 2,280, 녀 2,277 (2008.05.31. 기준)]으로 서포면을 형성하고 있으며, 1995년 5월 10일 "법률 제4948호"로 사천군과 삼천포시가 하나로 통합하게 됨으로서 사천시 서포면으로 행정구역 명칭이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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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7-12 17: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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