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박재삼을 말하다



박재삼을 말하다

단단히 마음먹지 않으면, 문학 하지마라 - 정삼조 시인

작성일
2020-12-06 15:02:49
작성자
박재삼문학관
조회수 :
338
단단히 마음먹지 않으면, 문학 하지마라 - 정삼조 시인
박재삼을 말하다.
정삼조 시인

삼천포에서 났고
54년 생이니까 66년 정도 삼천포에서 살고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대학 다닐 때 한 4년 정도 서울에 살았지만은
그래도 일 년 중에 한 삼 사개월은 삼천포에서 살았습니다.
이 지역하고는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딴 곳에 가서 살기가 매우 어려운 그런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입니다.

박재삼 선생님하고 저하고는 굉장히 묘한 인연이 있어요.
저도 어느 날 우연히 생각하다 보니 깨달았는데
선생님과 저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같은 학교를 다녔어요
삼천포 국민학교, 그 당시에
삼천포 중학교 삼천포 고등학교
심지어는 그분은 물론 중퇴를 하셨지만은
대학이 고려대학교 국문과 까지
전부다 학교가 다 같아요
대학을 같은 과 까지 같기는 참으로 드문 일인데
우연히 그렇게 되었어요.

그래서 박재삼 선생님하고 저하고는 뭐라 그럴까
학연으로 아주 끈끈하게 맺어진 그런 인연이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그래서 그 인연의 끈 따라 박재삼 기념사업도 열심히 해보려고 했던 그런 시절도 있고
현재도 뭐 통 안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박재삼의 문학이 우리 고장을 빛내고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그런 문학가 이시고
또 많은 문학 작품을 남기셨고
그 중에 돌아가시고 나서도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시인들은 돌아가시고 나면 그 분 대표작 한 두 편이 사람들 기억에 남는데
박재삼 선생님 시는 굉장히 많은 작품이 훌륭한 작품으로 회자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박재삼 시인의 작품을 좀 더 많은 분들에게 알리는 그런 일이 보람 있는 일이다
그렇게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박재삼 시인하고 저하고 직접 만난 일, 또 교류하게 된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제가 삼천포 고등학교 21회 졸업생, 박재삼 선생님은 1회 졸업생입니다.
그래서 한 20년 차가 나는데, 나이는 21살 차이지요.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때가 1971년입니다.
개천예술제에서 시조부문에서 제가 1등상, 그러니까 장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학교에 강윤조 선생님이라고 체육 선생님이 계셨는데
서울대 사대를 나오시고, 박재삼 선생님과는 동기가 되니까
박재삼 선생님이 그 당시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계실 때
그 조그만 자취방에 삼천포에서 올라간 그 덩치 큰 체육 선생님이 
그 방에서 함께 지내기도 했던 그런 전력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이구 재삼이는 내가 잘 알지. 아는데 재삼이한테 니 시를 한 번 보여줘야하지 않겠나
이렇게 말씀을 하셔서 
시 하고, 시를 계속 하고 싶다 하는 그런 사연의 편지를 써라. 저보고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제가 쓴, 개천예술제에서 상 받은 작품하고 앞으로도 계속 문학을 하고 싶다. 하는 이야기를
편지를 써서 강윤조 선생님께 드렸죠.
그러니까 강윤조 선생님이 제 편지에다 또 몇 마디 소개하는 말을 보태서 박재삼 시인께 부쳤어요.
그랬더니 얼마 뒤에, 아주 짧은 시간이었어요. 당장 답장이 왔어요.
박재삼 선생님이 원고지에 쓰신 글이었는데.
매우 많은 분량으로 그렇게 답장이 왔는데.
답장의 요지는, 글은 괜찮은데 문학을 계속 하려면 어떤 대단한 각오가 있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왜 그런고 하니까. 문학은 첫 째 돈하고 거리가 먼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문학에 전념하다 보면 가난할 수 밖에 없는데.
그것을 참고 견딜 수 있는 각오가 있다면 문학을 하라. 그렇게 편지에서 말씀을 하시는거예요.
결국은 하지 말라는 말씀이신데, 고향의 후배가 모처럼 문학하겠다고 편지를 올렸는데
하지마라. 그 얘기부터 먼저 하시는거에요.
그러면서 단단한 각오가 되어 있으면 하라. 이렇게 얘기를 하시는거죠.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해야 되나. 이렇게 하고 있다가 어영부영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지요.
그때는 또 대학가기 위해서 공부만 죽어라고 했습니다. 
안했던 공부를 일 년 동안에 다 했습니다.
그래가지고 우연히 학교를 갔는데 그것이 나중에 보니까 박재삼 선생님이 옛날에 다니던 학교였고
그렇게 인연이 된거죠.
그래서 대학에 가서 한 번 찾아 뵌 적이 있어요.
답십리 고개 골목 끝 집이었는데, 작은 집입니다.
그런데 그 집을 장만하기도 굉장히 힘드셨던 모양입니다.
그 힘든 것은 박재삼 선생님 첫 번째 수필집에 집 장만에 얽힌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쨌든 그 댁에 갔더니 아주 반갑게 맞아주시면서
그래도 손님이라고 그때 초등학교 다니던 조그만 딸 소영이를 시켜서
맥주를 사와가지고 저한테 먹으라고, 새카만 후밴데도 그렇게 대접을 해서 보내시더라구요.

그런 인연도 있고 그 뒤에 제가 대학에 고대문학회라고 문학회 들어서 활동을 할 때
대학에 조그만 문학 행사에 박재삼 선생님 선배니까 모셔가지고 문학 말씀을 듣자.
이렇게 해가지고, 조금 이름이 많이 알려졌죠. 여류시인 최승자 시인.
독문과에 다녔는데 저보다 두 해 위입니다.
제가 일학년이고 그 분 삼학년 때 같이 우리 문학회 행사에 모시자 해서
또 답십리 집에 방문을 했어요. 그래서 오시겠다 하더니 행사가 끝날 때까지 안와요.
안오더니 그 뒤에 뒤풀이 장소에 나타나셨어요. 어쨌든 참석은 하신거죠 우리 행사에.
오셔서 즐겁게 담소를 하시다 가셨는데, 뒤에 보니까 박재삼 선생님은 문학 강연같은건 안하시려고 하신다고.

선생님께서 말재주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남 앞에 나서기를 낯설어 하는 기벽이 있으시더라고요.
그것도 박재삼 수필집에 보면 한 귀퉁이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저런 인연도 있고 또 삼천포 올 때는 박재삼 선생님 개별 심부름도 좀 해드린 것도 있고
만날 때 마다 밥도 얻어 먹고 술도 얻어 먹고 은혜만 많이 입었는데
그 뒤에 술 한 번 변변히 사지도 못하고 그렇게 작고하시고.
그렇게 하고 말았지요.
박재삼 선생님하고 만나서 사실 뭐 문학 얘기를 나눈 적은 그렇게 없습니다.
그리고 또 문학이라고 하는 것이 누구의 가르침을 받아가지고 갑작스럽게 대성할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옆에서 박재삼 선생님을 뵙고 가까이 대하고 같이 얘기를 나누는 중에 
은연중에 문학은 저절로 닮아서 이루어져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고
저의 문학 세계도 박재삼 선생님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지 않나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출처표시, 상업적이용금지, 변경금지)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 저작권정책 참조 : http://www.sacheon.go.kr/intro/01613/03180.web


담당자
문화체육과 문화예술팀 055-831-2712
최종수정일
2021-08-10 09:24:40
만족도 조사 민원신청  시장에게 바란다  조직도  공지사항  공고/고시/시험 
페이지 수정요청열기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시나요?

평가: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