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정은부전(鄭殷富傳) 이 이야기는 전설(傳說)아닌 사실(事實)이라고 한다. 이조(李朝) 헌종(憲宗)때 정은부(鄭殷富)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진주(晋州) 땅 금산(琴山) 출생으로 수사(水使)의 관직(官職)을 역임(歷任)한 바 있었던 무용(武勇)이 뛰어나고 힘이 장사(壯士)로서 소문(所聞)난 분이다. 당시 곤명봉계(昆明鳳溪) 에는 원사(院舍)가 있었다. 원사(院舍)란 내왕관원(來往官員)의 숙소(宿所)이며 노약(老弱) 행인(行人)도 보살펴주는 관(官)에서 민간(民間)에게 의탁(依託) 경영(經營)케 하는 여관(旅舘)을 말한다. 봉계(鳳溪)원에 하루는 팔대장신(八大長身)의 빡빡깎은 중(僧)이 불쑥 나타나 원사(院舍) 관리인(管理人)을 축출(逐出)하고 이 원(院)을 점거(占據)하여 행인(行人)의 재물(財物) 약탈(掠奪)은 예사이고 부녀(婦女)의 희롱까지 서슴치 않는데 다가 나중에는 주민(住民)에게 까지 행패(行悖)가 가(加)하여저 심지어(甚至於) 농사꾼이 들에 나르는 함지밥까지 빼앗아 먹기도 하였다. 그러나 누구도 항거(抗拒)는 고사하고 얼씬도 못하였다. 이때 정(鄭) 수사(水使)가 이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주민(住民)으로부터 사연(事緣)을 듣고 이 횡포승(橫暴僧)을 처치(處置)하려고 마음 먹어 그 중(僧)을 찾아갔다. 이 중(僧)은 누구가 찾아와도 자리에서 일어나는 법이 없다. 정은부(鄭殷富)라 하여 다를리 없고 거드럼을 피우면서 누워 있었다. 정수사(鄭水使)는 중에게 공손(恭遜)히 인사(人事)하여 고금(古今) 영웅(英雄)에 비(比)하면서 중을 추켜 올리니 둘은 금시에 십년지기(十年知己)가 되듯 서로 친(親)하게 되었다. 정수사(鄭水使)는 중에게 날도 더운데 목욕(沐浴)하러 가자고 권(勸)해 둘은 오천(梧川)의 “먹안덤” 밑으로 갔다. 둘은 물에서 음담패설의 정담(情談)으로 중의 마음을 함뿍 좋게 하고 서로 등을 밀어주다가 때를 보아 정수사(鄭水使)가 손살같이 중의 양팔을 문질러 꺾고 등을 내리치니 아무리 힘센 중이지만 불의(不意)의 습격(襲擊)에 당(當)할 길이 없어 마침내 죽고 말았다. 마을사람 길손 할것 없이 정수사(鄭水使)에게 치하(致賀)하였다. 이후부터 원사(院舍)는 다시 정상(正常)이 되고 마을은 평온(平穩)을 되찾았다 한다. <晋州通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