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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면지

2. 서봉사지(栖鳳寺址)의 묘(墓)   다솔사의 암자인 서봉암(棲鳳菴)에서 오른편의 깊숙한 터에 신라(新羅)때에 창건(創建) 되었다는 서봉사(栖鳳寺)의 절터가 있다. 지금은 밭으로 일구어저 있고 밭 가운데 넓다란 주춧돌이 그대로 놓여져 있으며 부서진 해태의 석상(石像)과 밭두렁에 파묻힌 돌기둥 그리고 식량(食糧)을 도정(搗精)하던 호박 물레방아 등 여섯개가 현존(現存)하고 있음은 당시 절의 규모가 웅장(雄壯)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옛 대웅전(大雄殿) 자리라고 짐작 되는 곳에 무덤(墓)이 그대로 밭 가운데 있으니 이를 세칭(世稱) 권진사(權進士) 묘(墓)라 한다. 이 묘에 대한 설화(說話)가 전하고 다솔사 총무였던 박성태(朴成泰)에 의해 구전(口傳) 됨으로 여기에 적기로 한다. 연대(年代)는 미상(未祥)이나 아마 광해조(光海朝) 이후로 본다. 그때 부임한 곤양군수(昆陽郡守) 권모(權某)는 선친(先親) 권진사(權進士)의 묘지(墓地)를 명당(名堂)자리에 쓰면 출세하여 영달(榮達)할 것이라 생각하여 명망(名望) 있는 지사(地師)로 하여금 명지(名地)를 찾으려고 애써 오든 중 서봉사(栖鳳寺) 절터가 대지(大地) 임을 알게 되었다.   권 군수는 지방 관장(官長)에게 부여된 삼권(三權)의 막강한 힘과 당시의 배불(排佛)정책의 여세(餘勢)를 몰아 승려(僧侶)의 음모(陰謀) 있다고 구실(口實)로 이절을 불 태우게 하였다 한다. 권력(權力)과 영달(榮達)에 눈이 어두운 권 군수의 폭거(暴擧)로 이리하여 절은 폐허(廢虛)가 되고 폐허된 절터 위에 권 군수는 그의 아비 권 진사의 묘(墓)를 안장 했다한다. 이장후(移葬後) 오래 가지 않아 권 군수는 부귀영화의 꿈은 고사하고 인망가패(人亡家敗) 하였고 후손(後孫)마저 절손(絶孫) 되었는지 내내 성묘(省墓) 하는자 없었다 한다.   50여년전 어느 봄날 이 초라한 분묘(墳墓) 앞에는 80세 가량의 백발(白髮) 노파(老婆)가 슬픔에 잠겨 성묘(省墓)를 하더란다. 이 소문을 듣고 모여든 이웃 노인(老人)에게 혈육(血肉)이라곤 나 하나 뿐이어서 죽기전에 성묘(省墓)를 하려고 찾아 오게 되었다고 노파는 말 하더라 한다. 이후 이 무덤 앞에는 묘(墓)를 찾는 흔적 조차 오늘날까지 없다 하며 외손(外孫)되는 집안은 곤명(昆明)에 살았다는 설이 있기도 한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준 교훈(敎訓)은 자신(自身)의 분수를 넘어 천리(天理)를 거역(拒逆)하고 무한(無限)의 탐욕(貪慾)은 종말(終末)의 비극(悲劇)이 몰아 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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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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