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곤명면지



곤명면지

7.장사바위   연향(蓮香) 마을앞 산(山) 중턱에 장사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으니 그 설화(說話)를 더듬어 보기로 한다.   아주 옛날 옛적에도 이 마을은 이웃끼리 서로 돕고 나누어 먹으며 인정미(人情味) 넘치는 평화로운 마을이었었다.   어느날 악령(惡靈)과 같은 8척(尺) 장신(長身)의 여(女)장사가 불쑥 나타나 마을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옥녀봉(玉女峰)의 신령(神靈)이다. 내일부터 나의 식량(食糧)을 받치되 매일(每日) 쌀 한말과 닭 세 마리씩 받쳐야 한다. 만일(萬一) 영(令)을 어기면 동네를 쑥밭으로 만들겠다」고 위협(威脅)하면서 자기 힘을 보란듯이 동구(洞口)앞 정자(亭子)나무를 마치 풀뿌리 뽑듯 기색(氣色)도 없이 쑥 뽑으니 동네사람들은 혀를 내두러면서 그에게 복종(服從)키로 하였다. 그날부터 그의 요구대로 쌀 한말 닭 세 마리를 받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시일(時日)이 오래가니 받칠 힘이 없어져 동네에서는 의론(議論) 끝에 고을 원님에게 하소연 하였다. 원님은 사연(事緣)을 듣고 라졸(羅卒) 수십명을 보내 그 요물을 잡아오도록 명령하였다. 그러나 라졸(羅卒) 수십명쯤은 이 여(女) 장사의 적수(敵手)가 될 수 없었다. 한번 손을 휘두를적마다 바람에 갈대 쓸어지듯 5~6명씩 나가 쓰러지고 하여 겨우 몇 명이 도망치듯 관아에 돌아와 사실(事實)을 원님께 고(告)하였다. 원님도 두려운 나머지 자신(自身)에게 화(禍)가 미칠까 싶어 아예 손을 끊고 말았다.   이런일이 있고나서부터 이 가짜 신령(神靈)의 횡포(橫暴)는 더욱 심(甚)하여 소․돼지 할 것 없이 가축(家畜)을 마구 잡아가니 동민(洞民)의 생활은 절망(絶望)에 빠져 존망(存亡)의 기로(岐路)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곤경에 있을때 마침 한 도사(道師)가 지나면서 하는 말이 「너희들은 왜 당산신(堂山神)을 잊었느냐.」고 하였다. 실(實)은 동네사람은 가짜 신령(神靈)의 공물(供物) 때문에 마을 수호신(守護神)인 당산신(堂山神)을 모시는 제사(祭祀)조차 잊은지 오래이다. 도사(道師)의 말을 듣고 선듯 깨달아 정성(精誠)을 다하여 당산신(堂山神)에게 기도(祈禱)를 드리기 시작(始作)하였다. 비는 데는 무쇠도 녹는다는 말이 있듯이 당산신(堂山神)은 동민(洞民)의 지성(至誠)에 감동(感動)하지 않을 수 없는지라 드디어 당산신(堂山神)은 여(女)장사를 출두(出頭)토록 명령(命令)하기에 이르렀다.   그러하나 여기에 굴복(屈伏)할 여(女)장사는 아니었다 오히려 당산신(堂山神)을 박살(撲殺)코저 큰 바위를 머리위까지 치켜들고 용맹(勇猛)스럽게 당산신(堂山神)에 덤볐다. 당산신(堂山神)은 당초(當初)에는 좋게 꾸짓어 개과천선(改過遷善)토록 하랴 하였으나 이 행동(行動)을 보고 말로서는 도저(到底)히 불가(不可)하다는 판단(判斷)이 섰다. 그래서 당산신(堂山神)은 일성호령(一聲號令)과 함께 주문(呪文)을 외우니 이 어찌된 일인가 날뛰던 그 여(女)장사는 어느새 바위를 머리에 얹은 채 화석(化石)이 되어 버렸다. 이런일이 있은후 마을 사람들은 옛처럼 다시 평화(平和)를 되찾고 알뜰 살뜰 잘 살게 되어 오래도록 당산신(堂山神)을 모시어 제사(祭祀)를 모시어 왔다한다. 지금 그 장사바위는 그 형용(形容)이 여자(女子)가 바위를 이고 있는 모양이 그대로 남아있다.   옛날에는 당산(堂山)이 마을마다 있었건만 지금은 그 흔적이 희미해지고 있는데 유일(唯一)하게 이 연향(蓮香)마을 만은 당산(堂山)이 현존(現存)하여 가정(家庭)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당산(堂山)에 가서 빌면 효험(効驗)을 본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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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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