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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면지

第3장 천도교(天道敎)   동학(東學)을 개칭(改稱)한 종교(宗敎)이며 최제우(崔濟遇)가 교조(敎祖)로서 1860년 철종(哲宗)11년에 보국안민(輔國安民) 포덕천하(布德天下) 광제창생(廣濟蒼生) 제세구민(濟世救民)의 주의(主義)를 선포(宣布)하여 동학(東學)을 창시(創始) 하였다.   유불선(濡佛仙)의 장점(長點)을 집대성(集大成)하고 사민평등(四民平等) 을 제고(提高) 한 종교(宗敎)로서 수도주문(修道呪文)으로 지기금지(至氣今至)·원위대강(願爲大降) 시천주(侍天主) 조화정(造化定) 영세불망(永世不忘) 만사지(萬事知)라 하여 포교(布敎)에 힘쓰던 중 1863년 혹세무민(惑世誣民) 의 죄(罪)로 사형(死刑)에 처 하였다.   1905년(광무9년)에 손병희(孫秉熙)에 의하여 재건(再建)되어 인간주의(人間主義)의 인내천(人乃天) 천심즉인(天心卽人)의 사상(思想)을 교리(敎理)로 삼아 인권무시(人權無視) 의 집권체계(執權體制)에 반항의식(反抗意識)을 고취(鼓吹)하니 서민층(庶民層)의 호응(呼應)이 깊어 마침내 전봉준(全琫準)의 갑오동학란(甲午東學亂)이 일어 났고 그후 한일합방(韓日合邦)으로 인한 3.1독립만세(獨立萬歲)의 민족(民族) 자결운동(自決運動)의 주축(主軸)이 되었다.   우리 고장에 천도교(天道敎)가 전교(傳敎)된 것은 1891년 이지우(李志佑)(李永基祖父)의 입도(入道)가 시초(始初)이다.   일제(日帝)의 압박이 극심(極甚)하여 도산검수(刀山劍水)에 신음(呻吟)하면서도 교회(敎會)를 지속(持續)시킨 사람은 이정기(李正己) 이영기(李永基)이다.   전교실(傳敎室) 즉 교당(敎堂)은 신흥리(新興里) 고월(顧月)부락 이영기댁내(李永基宅內) 에 설치(設置)되었고 교도수(敎徒數)는 40명 내외로서 1960년대 까지 존속하다가 현재 면내(面內)에는 이기호(李基浩) 외 수명 뿐이다.   초대 전교사(傳敎師) 이정기(李正基)   (경남농촌진흥원 이유식 부)   2대 전교사(傳敎師) 이영기(李永基)(현재 부산 거주)   법사(法師) 이영기(李永基)   1985년 승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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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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