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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면지

(8) 연강재 유계안서(練江齋 儒契案序)   세상(世上)에 드러난 집과 서늘한 정(亭)을 지어 크고 아름다움을 꾸밈이 적지 아니하되 그사람이 아니면 곧 헐리어 버림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바 많을 것이다.   곤산(昆山)의 금능(金陵) 서쪽 대강(大江) 옆에 광야(廣野)를 바라보고 익연(翼然=새의 두 날개를 편것 처럼 좌우로 쭉 뻗은 모양)한 자(者) 곧 연강정(練江亭)이다. 비록 기와를 이었으나 사치도 아니하고 겨우 3칸이다.   옛적에 연강정(練江亭) 문선생(文先生)의 강도(講道)하신 곳이다. 정(亭)이 헐어지면 곧 보수(補修)하여 이제 삼백여년(三白餘年)이 되었다.   남방(南方)의 선비들이 선생을 사모(思慕)하는 자(者) 서로가 이 정(亭)에 모여 말씀하기를 선생(先生)의 세대(世代)가 멀어서 우리들이 의희(依俙=분명치 않음) 방불(彷佛=거의 같음) 한 사이에 상앙(想仰)하는 자(者)는 이 정(亭)이 있음이라 수계(修契)를 하여 계사(契事)가 완성(完成)됨을 기다려 선생(先生)을 이 정(亭)에서 조두(俎豆)의 예(禮)로써 높이 받들어 후생(後生)으로 하여금 선생(先生)을 높이어 이정(亭)이 저 드러나 집과 서늘한 정(亭)에 비(比)할바 아님을 알게 할 것이다.   몇 사람이 앞서 인도(引導)함에 여럿이 동의(同議)하여 그 자리에서 단지결책(斷紙結冊)하여 명성(名姓)과 향관(鄕貫)을 실으니 이 사실을 뒤에 듣고 원참자(願參者)또한 많아 매년(每年)에 모임을 하여 수계(修契)를 하게 이르렀다.   어허 선생(先生)의 덕(德)이 오래토록 끊기지 아니하고 세대(世代)가 멀어도 사람들이 오히려 흠모(欽慕)함이 불어 날 것이니 계원(契員)이 누구라도 정성(精誠)을 다하지 않을 자(者) 없을 것이다.   가장 먼저 정성(精誠)을 쏟은 자(者)는 박헌교(朴憲敎) 이규용(李圭容)이다. 이제 그들은 구원(九原)의 사람이 되었다.   이어서 정성(精誠)을 쏟는자(者) 많아 계(契)가 점점 실머리가 잡히니 이남식(李南植) 최진선(崔鎭璿) 이계창(李繼昌) 정사(鄭泗) 그들이었다.   서문(序文)을 위촉(委囑)하거늘 가만히 생각하니 선생(先生)이 우리 고장으로부터 곤산(昆山)에 이거(移居)하니 내고향 후학(後學)으로써 흠모(欽慕)할뿐만 아니라 내 또 하남(河南)에 우거(寓居)하여 선생의 후손(後孫)가 하남(河南)에 처마가 맞닿고 살았으며 정(亭) 또한 거리(距離)가 멀지 않아 매양 정(亭)에 올라 배황(徘徨)하여 수백년후(數百年後)에 나서 추의(摳衣)의 발렬에 미치치 못함을 한탄(恨嘆)한지 오래 되었다. 그러므로 어찌 감히 청(請)을 사양하리오   내 첨현(僉賢)의 뜻을 보건데 이어서 조두(俎豆)하니 선생을 높이기에 지극하였다. 첨현(僉賢)은 각자(各自)가 수행칙궁(修行飭躬)하여 집집마다 소년(少年)으로 하여금 관감(觀感)할바 있어 선생(先生)이 도(徒)에 부끄럼이 없는 뒤에 조두(俎豆)함이 어찌 선생(先生)을 높이는데 지극(至極)함이 아니리요 모두가 그렇다 함으로 이로서 서(序)하니라   戊寅(1938) 夏 4月 28日 永嘉 權相淵삼가씀

연강재유계안서 세지위창헌량사이극기치려자불위불다비기인칙선훼이허인불지자역몰의곤산지금릉서반임대강망광야이익연자왈연강정수복이와이불치불려위간가자재삼재석연강재문선생강도지실야수훼수즙우자삼백유여년남방지사모선생자상여취회어정이모왈선생지세요의오제지소상앙어의희방불지간자지유차정재수일계이대계사완성존선생이조두지예어정사후생소배함지선생지위가존이차정비타창량헌사지비하지수인창지첨의긍지즉기석단지결책재기명성향관추문이원삼자역허지세일회이수계사어희선생지택구이불참광세이인유흠모여차계중지인수지불성이기최선치성자왈박헌경이규용금기구원계이성도자상다계점취서일이남식최진선이계창정사제인촉이병수지문절념선생자오향이이어곤여이향후학불단흠앙자별여우교거하남여선생예손지거어하자첨상접거정불심상원매등정배황자탄만생수백재지하이불급구의지열위한자루의기하감사여관첨현지의사이조두존선생위지의첨현각자수행칙궁사자가가리소년유소관감무괴위선생지도연후조두행언기불시존선생지지자호첨왈유시위서 세무인하사월이십팔일기미영가권상연근서 연강정수계시회원 을묘칠월 일 유학하두원 정추 문영숙 강인환 문병호 박상호 문재성 김종진 부사정규석 유학박헌교 강위영 문원호 류해붕 정언이택환 유학문규호 이규용 문철호 이규락 문영술 이남식 문욱동 의관강우형 유학문윤호 이정호 신병조 문영호 박우종 김달중 이병주 ●계원 927 명 ●계재 계답7두락 현금120만원 ●계회일 음4월 5일 ●유소 김성리 연강정 練江齋儒契案序 世之爲敞軒凉榭而極其侈麗者不爲不多非其人則旋毁而墟人不知者亦沒矣昆山之金陵西畔臨大江望廣野而翼然者曰練江亭雖覆以瓦而不侈不麗爲間架者纔三在昔練江齋文先生講道之室也隨毁隨葺于玆三百有餘年南方之士慕先生者相與聚會於亭而謀曰先生之世遙矣吾儕之所想仰於依俙彷彿之間者只有此亭在修一契而待契事完成尊先生以俎豆之禮於亭使后生少輩咸知先生之爲可尊而此亭非他敞凉軒榭之比何知數人倡之僉議肯之卽其席斷紙結冊載其名姓鄕貫追聞而願參者亦許之歲一會而修契事於戱先生之澤久而不斬曠世而人猶欽慕如此契中之人誰之不誠而其最先致誠者曰朴憲敬李圭容今己九原繼而誠到者尙多契漸就緖日李南植崔鎭璿李繼昌鄭泗諸人囑以幷首之文窃念先生自吾鄕以移於昆余以鄕后學不但欽仰自別余又僑居河南與先生裔孫之居於河者簷相接距亭不甚相遠每登亭徘徨自嘆晩生數百載之下而不及摳衣之列爲恨者累矣其何敢辭余觀僉賢之意似而俎豆尊先生爲至矣僉賢各自修行飭躬使自家家裡少年有所觀感無愧爲先生之徒然后俎豆行焉豈不是尊先生之至者乎僉曰唯是爲序 歲戊寅夏四月二十八日己未永嘉權相淵謹書 練江亭修契時會員 乙卯七月 日 幼學河斗源 鄭 錘 文永淑 姜仁煥 文秉鎬 朴相浩 文在性 金淙鎭 府使鄭圭錫 幼學朴憲敎 姜渭永 文源鎬 柳海鵬 正言李宅煥 幼學文圭鎬 李圭容 文澈鎬 李圭洛 文永述 李南植 文勗東 議官姜佑馨 幼學文倫鎬 李正鎬 愼炳朝 文寧鎬 朴祐鍾 金達中 李秉周 ●契 員 927 名 ●契 財 契畓7斗落 現金120萬원 ●稧會日 음4월 5日 ●儒所 金城里 練江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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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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