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오사재 만세사건(五思齋萬歲事件) 오사재(五思齋)는 삼정리(三亭里)에 있는 강씨 문중(姜氏門中)에서 세운 학당(學堂)이다. 기미년(己未年 1919) 4월 중순 당시 학당(學堂) 훈장(訓長) 정복와(鄭復窩)가 선도(先導)하여 수학생(修學生) 강기향(姜琪馨) 강재희(姜在熙) 황희열(黃喜烈) 김만수(金萬洙) 박종수(朴宗修) 등이 주축(主軸)이 되어 30여명이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부락민을 규합(叫合)하여 옥종(玉宗)으로 행진중(行進中) 헌병(憲兵) 보조대(補助隊)에 의하여 제지(制止) 당하고 정복와(鄭復寓) 강기향(姜琪馨) 강재희(姜在熙) 황희열(黃喜烈)은 구인(拘引)되어 많은 태형(笞刑)을 받았으며 이로 인하여 학당(學堂)은 폐쇄(廢鏁)되었다. 강기향(姜琪馨)은 태독(笞毒)으로 심음(呻吟)타가 작고(作故)하였고 김만수(金萬洙)는 은신(隱身)중 볕을 못보고 세상(世上)을 떴다. 유가족(遺家族)에는 강기향(姜琪馨)의 손(孫)에 신웅(信雄) 신균(信均)과 질(姪)에 전 곤양향교의 전교(典校) 달희(達熙)가 있으며 강재희(姜在熙)는 아들 신대(信大)와 서울시경(市警)에 신덕(信德)이 있다. 김만수(金萬洙)는 아들 원숙(源淑)과 종제(從弟) 우종(雨鍾)이 있다. 泗川의 片貌誌에서 拔萃하고 또 姜洪伊의 提供한 資料에 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