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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면지

(4) 조개석(曺介石) 과 조관석(曺寬石)   조개석(曺介石)은 보명(譜名) 이 재석(在碩)으로 1896년생(癸巳生)이며 본촌리(本村里) 출신이고 창녕인(昌寧人)이다.   남 달리 완력(腕力)이 대단하여 조장군(曺將軍)이라는 별명(別名)까지 따랐다.   금성(金城)리에서 일어난 3.1만세 시위(示威)에 선봉(先烽)에 섰음으로 이영근(李永根) 문향근(文馨根) 정원주(鄭元柱) 등과 함께 사천(泗川) 헌병대(憲兵隊)에 체포(逮捕)되어 신문(訊問)을 당함에 체격(體格)이 건장(健壯)함을 보고 사건의 주모자(主謀者)를 말하라 하며 고문(拷問)을 하게 이르렀다 어찌나 장형(杖刑)이 혹심(酷甚) 하였던지 옆에 놓인 접시를 깨물었더니 접시가 잇발에 부서지고 다시 책상(冊床)머리를 물으니 책상 모서리가 떨어졌다 한다.   이러한 모진 형벌(刑罰)에서도 주모자(主謀者)를 고백(告白)하지 않아 끝내 주모자(主謀者)를 들추지 못하고 10여일간 구금(拘禁)되었다가 석방(釋放)되었다.   석방후 얼마 안가 장독(杖毒)으로 전(全) 치아(齒牙)가 낙치(落齒)되고 건장(健壯)한 체격(體格)은 쇠약(衰弱) 일로(一路) 접어들어 조국광복(祖國光復)을 맞았으나 지병(持病)으로 알아주지 않는 세정(世情)을 탓하면서 한(恨)많은 세상(世上)을 떴으니 애석(哀惜)하기 그지 없는 일이다.   이 사실(事實)은 문창식이 전언(傳言)함이라 하며 장남 조정덕(曺正德)은 진주(晋州)에서 합동중기(合同重機)를 경영(經營)하고 있다.   조관석(曺寬石)은 조개석(曺介石)의 아우이며 1900년생(庚子生)이다.   형(兄)과 함께 금성(金城)만세 시위에 가담(加擔) 하였으나 관헌(官憲)에 체포(逮浦)되지 않고 은신(隱身)하고 있었다. 당시 헌병(憲兵) 보조원(補助員) 이모(李某)가 동족(同族)이면서 너무나 악독(惡毒)하게 가담자(加擔者) 적발(摘發)에 온갖 수단(手段)과 방법(方法)을 다함으로 조관석(曺寬石)은 의분(義墳)을 참다 못하여 사생(死生)을 결심(決心) 때를 기다리던중 어느날 야음(夜陰)에 이모(李某)를 만남을 기화(奇貨)로 수로(水路) 구렁에 혼미불성(昏迷不省)토록 때려 눕혔다.   이런 일이 생기자 헌병대(憲兵隊)에서는 범인 조관석(曺寬石) 색출(索出)에 전력(全力)을 경주(傾注)하여 날로 동민(洞民)에게 위협(威脅)이 가(加)해 짐으로 조관석(曺寬石)은 거리(居里) 이규필(李圭弼)의 도움 받아 일본으로 도피(逃避)하여 자유(自由)를 잃은채 은신(隱身) 생활하다가 이역(異域) 적국(敵國) 땅에서 작고(作故)하였다.   유족(遺族)에는 장남 점덕(點德)이 부산에 살고 있다.   泗川의 片貌와 傳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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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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