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정원주(鄭元柱) 진양인(晋陽人)으로 금성(金城) 만세사건(萬歲事件)이 일어난 당시(當時) 금성서당(金城書堂)의 훈장(訓長)이다. 경술(庚戌)년(1910) 한일합방(韓日合邦)이 되자 항시(恒時) 학동(學童)에게 민족주체(民族主體) 교육(敎育)을 시켰으며 기미년(己未年 1919)의 금성리(金城里) 만세운동(萬歲運動)때는 배후(背後)의 역할(役割)이 컸다. 일경(日警)에 피검(被檢)되어 옥고(獄苦)를 치룬후 여독병인(餘毒病因)으로 신음(呻吟)하다가 수년후(數年後) 일제(日帝)를 저주(咀呪)하면서 영민(永眼) 하였다. 후예(後裔)는 절손(絶孫)되어 분묘(墳墓)의 소재(所在)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어 마음으로 위혼(慰魂)할 따름이다. 泗川의 片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