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곤명면지



곤명면지

(1) 이영근(李永根)   본적 곤명면 금성리(金城里) 332번지   1894년 5월 11일생   합천인(陜川人)으로 호(號)가 송헌(松軒)이며 유사(儒士)로서 기절(氣節)이 강직(剛直)하였다.   일제(日帝)가 이 나라를 강점합병(强占合倂)하자 우국지념(憂國之念)에 불타 민족 주체의식(民族主體意識)을 동민(洞民)에게 고취(鼓吹)시켜 오던 중 기미(己未)년 에 3.1만세(萬歲)의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를 최범술(崔凡述)로부터 전수(傳受)됨에 이르러 향리동민(鄕里洞民)을 주도(主導)하여 1919년 4월 5일 동민(洞民) 200여명을 집합(集合)시켜 독립만세(獨立萬歲)를 고창(高唱)하고 옥녀봉(玉女峰) 만세(萬歲)도 지휘(指揮)하였다.   이영근(李永根)은 주모자(主謀者)로서 일경(日警)에 피체(被逮)되어 상투를 말(馬)채에 달아 끌려갔으며 모진 태형(笞刑)의 옥고(獄苦)를 치루고 풀려 났으나 장독(杖毒)으로 인(因)하여 신고(辛苦) 끝에 임술(壬戌) 1922년 향년(享年) 29세(歲)로 순사(殉死)하였다.   친제(親弟) 전 곤명면장 이명진(李明辰)이 그 장남(長男) 창수(昌秀)를 입양(入養)시켜 후사(後嗣)를 잇게 하고 있다.   유족(遺族) 창수(昌秀)와 태수(台秀)가 당시(當時)의 관련자료문(關聯資料文)을 찾고저 백방(百方)으로 노력(努力)하였으나 진주법원(晋州法院) 소실(燒失)로 근원(根源)을 못찾아 아쉬워하고 있다.   문헌(文獻) : 삼일운동사(三一運動史) 사천편모(泗川片貌)외 강홍이(姜洪伊) 증언(證言)   이씨족보기재문(李氏族譜記載文)   기절강직(氣節强直) 가담(加擔) 기미운동(己未運動)   피금일경(被禁日警) 인득병(因得病) 종불기(終不起)


담당자
문화체육과 문화예술팀 055-831-2714
최종수정일
2016-06-23 16:21:17
만족도 조사 민원신청  시장에게 바란다  조직도  공지사항  공고/고시/시험 
페이지 수정요청열기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시나요?

평가: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