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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면지

3. 최범술(崔凡述)   1904년 계묘(癸卯)생으로 서포면(西浦面) 율포리(栗浦里)에서 출생(出生)하였다.   1915년 개진(開進)학교 재학(在學)때 일인(日人) 교사(敎師) 기다무라(北村邦一)의 배척(排斥)의 주동자(主動者)로 지목(指目)되어 빈기홍(賓淇弘) 임성엽 등과 함께 퇴학(退學)을 당하였다.   사천(泗川) 편모지(片貌誌)에 의하면 이 일로 검거(檢擧)되어 진주(晋州) 헌병대(憲兵隊)에서 문초(問招)를 받고 있을때 최범술(崔凡述)에게 집에 전(傳)할 말을 물을적에 그는 「부모(父母)님께 독립운동(獨立運動)을 성공(成功)하지 못하고 뼈를 남기게 되니 불효막대(不孝莫大)함을 전(傳)해 달라」하였다. 하니 그때가 15세라 일본(日本) 헌병(憲兵)이 어이가 없어 석방(釋放)하였다는 일화(逸話)가 실려 있다.   1916년 다솔사(多率寺)에 입산(入山)하여 1917년 해인사(海印寺)의 지방(地方) 학림(學林)에 입학(入學)하였고, 이후 합천군지(陜川郡誌)에서 최범술(崔凡述)에 관(關)한 사항(事項)을 발췌(拔萃)하여 보면   1919년 3.1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를 박근섭(朴根燮) 최원형(崔洹亨)으로부터 전달(傳達) 받은 최범술(崔凡述)은 이를 해인사(海印寺) 지방 학림(學林) 학생에게 알리고 3만여매(三萬餘枚)를 인쇄(印刷)하여 강재호(姜在鎬) 김봉률(金奉律) 기상섭(奇尙燮)은 경주(慶州)와 통도사(通度寺)를 맡고 최범술(崔凡述) 송봉만(宋奉晩) 등 5인은 합천(陜川) 의령(宜寧) 진주(晋州) 사천(泗川) 하동(河東) 등지를 무대(舞台)로 하여 크게 활약(活躍) 하였다.   일경(日警)의 검거(檢擧) 선풍(旋風)이 일자 최범술(崔凡述) 등은 지하(地下)로 들어가고 강재호(姜在鎬) 송봉만(宋奉晩)등 10여인은 김좌진(金佐鎭) 등은 지청천(池靑天)의 신흥(新興) 군관학교(軍官學校)에 입교(入校)하여 독립군(獨立軍)에 가담(加擔) 항일(抗日) 무장(武裝) 투쟁(鬪爭)을 전개(展開) 하였다.   1930년 만자당(卍字黨)이 결성(結成)되자 최범술(崔凡述) 김범린(金法麟) 박근도(朴根度) 등 18인은 한용운(韓龍雲) 아래서 활약(活躍) 하였다. 이를 안 해인사(海印寺) 주지(住持) 변설호(卞雪湖)의 밀고(密告)로 최범술(崔凡述) 오제봉(吳濟峰) 등 30여인이 검거(檢擧) 투옥(投獄)되었고 일경(日警)의 악형(惡刑)은 드디어 이극경(李克鏡)을 일제(日帝) 장하(杖下)에 참사(慘死)를 보겠금 하였다.   출옥(出獄)후 최범술(崔凡述) 김범부(金凡夫) 김범린(金法麟) 등은 다솔사(多率寺)에서 불교강원(佛敎講院)을 세워 원생(院生)에게 민족주체(民族主體) 교육(敎育)에 힘썼다.   그후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 사건(事件)에 위 세사람은 연루(連累)되어 다시 투옥(投獄) 되었다.   이상이 합천군지(陜川郡誌)에서 추출(抽出)한 것이고 그 이외로는 1923년 일본(日本)에서 박렬(朴烈)을 정점(頂點)으로 하여 박흥곤(朴興坤) 육홍균(陸洪均) 등과 함께 선인사(鮮人社)를 결사(結社)한바 일관헌(日官憲)에서 대역사건(大逆事件)으로 관련(關聯)시켜 옥고(獄苦)를 치루게 되었다.   출옥(出獄) 후에도 경찰(警察)의 단기(短期) 구금(拘禁)은 3년간 계속(繼續)되었다.   박렬(朴烈) 지사기(志士記)에 최영환(崔永煥)의 이름은 최범술의 당시 칭명(稱名)이라 한다.   한용운(韓龍雲)이 결성(結成)한 만당(卍黨) 비밀결사(秘密結社)가 다솔사(多率寺)로 옮김은 최범술(崔凡述)이 다솔사(多率寺) 주지(住持) 취임(就任)이 계기(契機)가 된 것이고 당시 함께 일한 동지(同志)로는 김범부(金凡夫) 김범린(金法麟) 오제봉(吳濟峰) 문영빈(文永彬) 등과 민선(民選) 경남지사(慶南知事)였던 이기주(李基周) 참의원(參議員)으로 진주(晋州) 지방 예술제(藝術祭)의 선구자(先驅者)인 설창수(薛昌洙), 제헌의원(制憲議員) 강달수(姜達秀) 등도 동참(同參) 하였다 한다.   최범술(崔凡述)은 8.15해방 후 제헌국회의원(制憲國會議員)으로서 정계(政界)에도 두각(頭角)을 나타내었고 교육계(敎育界)에도 투신(投身)하였는데 광명학원(光明學院)을 설립(設立) 하였고 국민대학(國民大學) 학장(學長) 해인대학(海印大學) 학장(學長) 등을 역임(歷任)한 바 있다.   또한 다솔사(多率寺)에서 생산(生産)되는 작설차(雀舌茶)를 특유(特有)의 법제(法製)로서 그 향미(香味)는 국내(國內)에서 따를 수 없다 하였으며 한국다문화(韓國茶文化)의 시원지(始源地)로서 국제(國際) 교류(交流)로서 5월 25일이 「다(茶)의 날」로 제정(制定)된 것도 최범술(崔凡述)의 주창(主唱)에 의한 것이라 한다.   제자(弟子) 정원호(鄭元鎬)가 다선회(茶禪會)를 창립(創立)하여 제다비법(製茶秘法)을 전수(傳受) 받아 한(韓) 일(日) 중(中) 다문화(茶文化) 교류(交流)를 이루고 있다.   최범술(崔凡述)은 호(號)를 효당(曉堂)이라 하며 문학(文學)에도 박식(博識)하여 한국의 다도(韓國茶道) 사찰장경(寺刹藏經) 원효교학연구(元曉敎學硏究) 반야심경주해(般若心經註解)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 해동소(海東疏) 한용운(韓龍雲) 전집(全集) 등 많은 저서(著書)를 남기고 1979년 입적(入寂)하였다.   參考文獻 : 陜川郡誌, 韓龍雲全集 泗川片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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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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