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정대수(鄭大壽) 정이함(鄭以諴) 부자(父子) 진양인(晋陽人) 정대수(鄭大壽)는 임진왜란(壬辰倭亂)이 발발(勃發)하자 곤양군수(昆陽郡守) 이광악(李光岳)과 함께 왜적(倭敵)에 대항(對抗)코저 널리 의병(義兵)을 거모(擧募)함에 참여(參與)하여 각처(各處)에 격문(激文)을 발(發)하고 이광악(李光岳)은 진주성(晋州城)으로 가고 정대수(鄭大壽)는 의병(義兵)을 이끌고 고성(固城)으로 가서 적(敵)의 예봉(銳鋒)을 꺽으려 하였다. 맏아들 정이함(鄭以諴)이 의병선봉장(義兵先鋒將)이 되어 용전분투(勇戰奮鬪) 하였으나 물 밀 듯 밀려오는 적군(敵軍)을 격퇴(擊退)하지 못하고 이함(以諴)은 장열(壯烈)한 호국(護國)의 신(神)으로 산화(散華)하였다. 정대수(鄭大壽)는 노후(老後)에 하동(河東) 금오산(金鰲山) 밑에 옮겨와 후학(後學)을 가르침에 있어 교훈(敎訓)으로 정성(精誠)껏 어버이를 섬기고 덕(德)으로써 남과 사귈 것을 신조(信條)로 하였다 한다. 호(號)가 오봉(鰲峰)이였고 출생지(出生地)는 금성(金城里)의 인근(隣近) 인마동(馬洞)이다. 후손(後孫)으로 진주의 정인석(鄭仁錫) 부산의 정윤석(鄭允錫) 정병석(鄭丙錫) 정희갑(鄭禧甲) 등이다. 참조 : 이은상작(李殷相作)의 오봉실기(鰲峰實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