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곤명면지



곤명면지

4. 조충인 처(趙忠仁 妻)   밀양박씨(密陽朴氏)   자(子) 조경규(趙景奎)   열부효자정려비(烈婦孝子旌閭碑)   위치:작팔(作八)   무릇 인간(人間)을 만물(萬物)에 견주어 가장 고귀(高貴)하다고 하는 연유는 인윤(人倫)이 있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니 효(孝)와 열(烈)은 온갖 행동(行動)의 근원(根源)이 되고 만(萬)가지 착한 일의 으뜸인 것이다.   영남 사천(泗川) 고을 작팔(作八) 마을의 선비 조용율(趙鏞律) 은 대소헌(大笑軒) 十一(代)후손이다. 그의 조부(祖父) 충인(忠仁)의 배위(配位) 밀양박씨(密陽朴氏)는 사도(仕道)의 따님인데 어려서 규중(閨中) 처녀(處女)로 자랄때부터 온갖 정성(精誠)을 다하여 섬겼으므로 세상에 떨친 훌륭한 이름이 자못 두드러진 바가 있었고 차차 장성(長成)함에 따라 조씨(趙氏) 가문(家門)에 시집간 후에도 시부모(媤父母)섬기기를 정성과 효도(孝道)를 극진하게 하였으며 친척간에는 단란하고 화목(和睦)함이 후세(後世) 사람의 본보기가 되기에 족(足)하였다.

  불행(不幸)하게도 남편이 어렸을 때부터 병(病)을 우연히 얻어 여러해 병석(病席)에서 신고(辛苦)하매 온갖 방법(方法)으로 의약(醫藥)을 구하여 치료(治療)에 힘썼으나 효험(効驗)을 보지 못하고 임종(臨終) 에 이르러서는 넙적다리 살을 떼어 가지고 다려서 남편에게 드리니 겨우 5일 동안 소생하였으나 마침내 운명(殞命)하게 되자 그때 바로 정절(貞節)을 지키기로 마음 먹고 순절(殉節)하려 하였으나 마침 혈육(血肉)을 이을 유복자(遺腹子)를 뱃속에 잉태(孕胎)중이어서 종사(宗祀)를 받들어 모실 핏줄이 끊기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빈장(殯葬)의 예식(禮式)과 제향(祭享) 범절이 옛날의 예절(禮節)에 하나도 유감(遺憾)없이 잘 마치고 삼년상(三年喪)을 치루는 동안 머리에 빗질하지 않고 얼굴을 씻지 아니 하였으며 어육(魚肉)을 전폐(全廢)하여 입에 대지 않으니 이와같은 행실(行實)은 예로부터 매우 드문 일이다.   부인이 아들을 낳으니 경규(景奎)라 이름 지었고 가정교육이 곧고 올바르매 아들도 또한 홀어머니의 교훈(敎訓)을 받들어 정성을 다하여 순종(順從)하며 효도(孝道)가 극진(極盡)하여 어버이 마음을 하기를 한가지도 어김이 없었으니 이르기를 양지(養志)라고 한다. 어찌 가정교육을 받음이 없이 될 일이겠는가?   사람들이 태교(胎敎)라 이르면서 “영지(靈芝)버섯은 본디 물 맛이 단(甘) 샘(泉)에서 돋아 낳므로 물 흐르는 근원(根源)이 있기에 맛이 좋은 것이다.”라고 칭찬을 마지 아니하였다.   극진하게 어머니 봉양(奉養)한 일을 하나 하나 들어서 말하기 힘이 드나 모친상(母親喪)을 당하였을 때 상장(喪葬)의 예절(禮節)이 옛날 예법(禮法)을 한결같이 준수하여 읍혈(泣血)하기 3년에 이르렀으니 생전(生前)의 효도(孝道)와 사후(死後)의 예법(禮法)이 이와같이 극진하였다. 열행(烈行)이나 효도(孝道)가 다 이 어머니가 있었기에 이 아들이 있다는 평판이 널리 퍼지면서 만인(萬人)의 화제(話題)에 오르내리게 되자 고을 선비들이 글발을 관아(官衙)에 품달(稟達)하니 모자(母子) 모두를 표창하는 교지(敎旨)가 내렸으니 때는 헌종(憲宗) 14년 무신(戊申=1848)년의 일이다.   하루는 용율(鏞律)이 그 포창(褒彰)의 글발을 나에게 가지고 와서 울면서 말하기를 “ 이 일을 미룰 수 없는 터에 가문(家門)이 미약하고 힘이 모자라 이제까지 미처 겨를을 내지 못하였으나 바야흐로 비석(碑石)을 세워 꽃다운 이름을 후세(後世)에 전(傳)하고자 하여 효도(孝道)를 기리고 그 착한 일을 들어내는 선생(先生)의 문안(文案)을 원(願)합니다.” 하기에 내가 사양 하였으나 듣지 아니 하므로 만일(萬一)이 난처하여 명문(銘文)을 다음과 같이 쓴다.   사천 고을 서(西)쪽인데 곤양(昆陽)의 북쪽   묻힌 옥(玉)들 캐어내어 갈고 다듬어   조씨가문(趙氏家門) 삼강오상(三綱五常) 빛 나는 오륜(五倫)   천추만세(千秋萬歲) 후세(後世)사람 본보기 되네   어머니의 굳은 열행(烈行) 아들의 효도(孝道)   모자(母子)간에 서로 서로 본분(本分) 다 했네   이런 저런 사연들을 돌에 새기니   푸른 이끼 비석(碑石)에는 범접 않으리   공자탄생 2479년 무진(1868) 3월 3일   임천 조 한승 삼가지음   대를 이은 소자 용율, 읍혈 삼가씀

비 문 내 용 부인교물위최귀자이기유오륜이효열위백행지원만선지수야경남사천작팔리사인조용율즉대소 헌십일대손야기조고휘충인배밀양박씨사도여유유규문소수사부모능갈기성령예빈저의급장우 귀어조문사구고극진성효처종족화목족가위후인가칙야불행부우영질루년신음조도백방불견기 효말경할고전진소완오일이경조붕성지통즉욕순절이기시혈유복중특념종사무후미수성인빈장 제절극준고예일무유감삼수지내불소불세전폐어육여차탁이지행긍고우유부인생자경규교육유 방역승순자훈시봉편자극성극효열친위주일무소위가위양지야기비가정소수호인칭태교영지예 천고유진원감지봉양불가매거이급친몰상장일준고예읍혈삼년생사지이효사송지이예효자지도 어사진의약열약효유시모유시자금명파전만구회구동보유상품관보영모자구몽포창지교시헌종 십오년무신야일용율포기상사래여이읍왈시역불가여차완야이문잔력폐상금미황방욕건비수전 방명원오자찬양지효여사불획기난상만일명왈사서곤북채옥마식일문강상천추가칙어열어효각 진기직우이각석창태불식 공자탄강이천사백칠십구년 무진삼월상사日 임천조한승근찬 사손용율읍혈근서 碑 文 內 容 夫人較物爲最貴者以其有五倫而孝烈爲百行之源萬善之首也慶南泗川作八里士人趙鏞律卽大笑 軒十一代孫也其祖考諱忠仁配密陽朴氏仕道女幼有閨門所受事父母能竭其誠令譽頻著矣及壯于 歸於趙門事舅姑極盡誠孝處宗族和睦足可爲後人柯則也不幸夫偶嬰疾累年呻吟調度百方不見其 效末境割股煎進甦完五日而竟遭崩城之痛卽欲殉節而其時血遺腹中特念宗祀無后未遂成仁殯葬 祭節克遵古禮一無遺憾三燧之內不梳不洗全廢魚肉如此卓異之行亘古穻有夫人生子景奎敎育有 方亦承順慈訓侍奉偏慈極誠極孝悅親爲主一無所違可謂養志也豈非家庭所受乎人稱胎敎靈芝醴 泉固有眞源甘旨奉養不可枚擧而及親沒喪葬一遵古禮泣血三年生事之以孝死送之以禮孝子之道 於斯盡矣若烈若孝有是母有是子今名播傳萬口膾灸洞報儒狀禀官報營母子俱蒙褒彰之敎時憲宗 十五年戊申也日鏞律抱其狀辭來余而泣曰是役不可如此緩也而門殘力弊尙今未遑方欲建碑壽傳 芳名願吾子讚揚之孝余辭不獲己難像萬一銘曰泗西昆北採玉磨飾一門綱常千秋柯則於烈於孝各 盡其職于以刻石蒼苔不食 孔子誕降二千四百七十九年 戊辰三月上巳日 林川趙漢丞謹撰 嗣孫鏞律泣血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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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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